단골 카페 대신 단골 편의점, 꿩 대신 닭?
서울에서 혼자 자취할 때, 나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방에 혼자 들어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때로는 친구 집에 놀러 갔고 때로는 친구를 집으로 불렀다. 그래서 서울에서 통학하는 친구가 시험 기간에 우리 집에서 자는 게 너무나도 좋았고 엄마, 아빠, 동생이 서울에 와서 우리 집 냉장고를 맛있는 것들로 채워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잔소리를 해 주는 것도 좋았다. 북적거림이 느껴지는 집 같은 집 느낌이랄까.
혼자인 게 싫어서 내가 자주 갔던 곳은 종로의 24시간 카페였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대출이야 많이 했지만 그렇다고 열람실에서 앉아서 공부한 적은 거의 손꼽을 정도였다. 사실 열람실은 너무 답답해서 공부도 잘 안 되고 열람실은 물론,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던 학생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마주치는 썸남이 신경 쓰이는 공간(?)이었다. 가끔 생얼로 회사를 나가는 나는 학창 시절에는 지금보다 화장을 못했으면서도 시험 기간에도 화장은 하고 다녔고 자취방 근처 치맥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도 화장을 하고 마셨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열람실보다는 카페에서 주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 카페에서 한 것도 돌이켜 보면 거의 없다.
노래 들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 이런저런 글을 끄적이며 가끔 시험에 나올 법한 것들을 벼락치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달까. 종각 쪽 카페를 무진장 많이 갔던 나는 그래서 종로의 어느 한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 회사가 구체적인 회사였다기보다 종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종로에는 서울 극장도 있고 인사동도 있고 광화문도 있고 청계천도 있고 종각 지하에는 영풍문고도 있다. 아참, 한동안 일했던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계시지만 외국인도 있어서 가끔 길 가르쳐주는 재미도 있다. 종로는 비가 와도 우울하지 않으며 눈이 오면 아름답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자타공인 종로 러버인 나는 새벽 무렵 내가 종로의 한 카페에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행복에 겨워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지방의 이 곳에는 24시간 카페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이 도시의 구석에 있어서기도 하지만 차가 없는 나로서는 24시간 카페를 찾아서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그렇다고 24시간 카페가 그립다는 이유로 택시를 타고 시내까지 나가기에는 너무 무서우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동네 친구와 함께 우리는 종종 편의점에 간다. 두어 번째 들렀던 편의점에서 아주머니가 당일 유통기한인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주셔서 고마운 마음에 다른 편의점에 갈 수도 있는데 우리는 늘 그곳에 간다. 물론 혹시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지만 우리가 하는 토로와 한탄은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걱정일 테니까.
이 편의점은 와이파이 비번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곳이며 편의점 음식을 맛있게 먹는 법까지 상세히 붙여놓은 곳이다. 꼭 해 먹어 보려고 찍어두었지만 귀찮아서 해 먹지 않았다. 요즘 편의점에서는 베이커리식으로 빵도 팔고 있어서 가끔 끌리는 빵을 먹기도 하고,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핫하다는 입에서 톡톡 터지는 젤리도 사 먹어 보고 그 달의 신상 제품은 무조건 골라서 먹어본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내 호기심을 충족시켜 나가며 불안한 미래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것도 술 없이! 술을 마실 줄 알지만 얼굴이 벌게지는 게 싫어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나는 술 없이도 쉽게 솔직해지는 사람이라서 술 없이 그렇게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다 보면 새벽 두 시는 훌쩍 넘긴다.
새벽 두 시가 되어도 잠은 오질 않지만 괜한 푸념을 늘어놓다 보면 현타라는 것이 와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게 된다. 결론은 우리 힘내요! 우린 잘 될 수 있어! 하는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뉘앙스로 끝이 난다. 비지엠이 깔려 있는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시켜놓고 이야기하면 달랐을까. 아마 같겠지. 그런데 왜 여기서 대화를 하고 있으면 종로의 느낌이 나지 않는단 말인가. 오히려 그땐 더 어렸고 더 불투명했는데 그때는 마냥 행복했다. 이유 없이. 오 년 사이에 나 폭삭 늙어버린 걸까. 마음이 늙었을까. 아직 나는 창창하고 어린것 같은데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을까. 피아노거리의 떡튀순이 무진장 그립다. 외국인 친구가 건넸던 장미 한 송이도 그립고 실연당해서 커핀그루나루 한 구석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어린 시절의 나도 그립고 금강제화 근처에서 타던 마을버스도 그립고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던 때도 그립고 다 그립다. 용기 내서 편의점에서 글을 써 볼까. 차마 그러지 못하겠다. 카페에서는 다들 커피 한 잔 시키고 세 시간 동안 노트북 잘만 보던데 편의점은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인데도 왜 그럴 수 없을까. 내가 최초로 해 볼까 라고 하기엔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없다. 우리 동네에도 24시간 카페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단골손님 될 텐데 동네 주민이 이 글을 볼 리 없겠지만 만들어 주세요. 충성 고객이 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