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마더, 마드레, 마미, 귀중한 그 희생정신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이란 영화가 있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대표작으로 20대 초반에 이 영화를 접했던 나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평을 적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그때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 위대한 일이라서 감히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이 생각은 여전하다. 유년시절 읽었던 <가시고기>라는 책은 부성애를 다루고 있고 슬픈 내용이었음에도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여전히 희생정신으로 해석되곤 한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모성애는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생각한다. 존경해 마지않는 핫한 힙스터 영화감독, 자비에 돌란 역시 동성애와 모성애를 자신의 영화 주 테마로 사용했고 데뷔작부터 칸 영화제에서 2등 상 탄 마미 역시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 우리 엄마를 마미로 저장해놨다. 하도 흉흉한 세상이라서 극악무도한 일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희생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던 내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기 때문에 주부인 엄마를 둔 친구들의 엄마가 두 눈에 불을 켜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에 비하면 엄마의 잔소리와 간섭 정도는 덜했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도 동생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겼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의 인생은 직장과 자녀교육 두 파트로 나뉜 삶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빚이 있었다. 엄마가 강요한 적도 없고 온전히 내 욕심이었지만 잘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 내 인생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서 엄마라는 사람의 결정과 결단 혹은 조언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다수 자녀들은 어머니에게 혹은 엄마에게 이런 빚을 지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부모들은 가지지 말아야지 하면서 보상심리를 가지고 자녀교육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실은 보상심리라는 이기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게 두려워서 자녀라는 존재를 갖기가 두렵기도 하다.
자기 혼자 알아서 잘 컸다는 아이들의 이야기 또한 심심찮게 접하곤 한다. 진짜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혼자 알아서 잘 크는 아이는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어른 같은 애어른류의 아이는 100% 중 몇 % 나 될까. 설령 있다 손 치더라도 그 아이가 자립심을 가지고 클 수 있게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시키거나 환경을 조성해 준 부모 덕분이겠지. 아이를 그렇게 키우기 위해 부모는 시간을 들이며 희생했을 것이고 그 시간 동안 온전히 나란 존재를 포기하고 아이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웠겠지. 나는 이런 현실이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엄마라는 사람도 한때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을 텐데 핏줄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엄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물론 일방적으로 자녀 입장에서 나의 생각이지 엄마 입장에서는 무사히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수 있고 뿌듯할 수 있다. 아직도 철없는 딸 때문에 물가에 내놓은 아이라 생각하고 늘 노심초사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엄마께 묻고 싶다. 당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똑같은 인생을 다시 사시겠냐고. 물론 타임슬립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순간의 선택으로 자식이 없어지면 울며불며 자식을 다시 되찾으려고 난리를 치는 장면들을 많이 본다. 우리 사회의 정서상 자식을 되찾으려 하지 않고 주인공이 내 인생이 중요해라는 대사를 던졌다면 사이코패스라는 둥 모성애도 없다는 둥 욕 댓글 러시가 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놈의 자식이 뭐길래.
그래서 나는 종종 다짐한다. 손주를 안겨주면서 제2의 나를 엄마에게 보여주기보다는 하루하루 나아지는 자식이 되겠노라고. 너 같은 거 낳아봐야 알지 라는 말을 어릴 때 종종 들었던 것 같은데 나 같은 애가 나를 짜증 나게 한다고 생각하면 진절머리 나서 생각하기도 싫으니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엄마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어느 순간 종종 하는 거 보면 나 점점 철이 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