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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

5년 전 유물 발굴, 2014년 취준생의 대학 수업 과제3

by 아보카도

물론 내게도 달라진 점이 있었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내 생각이 언제나 옳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취업 준비를 할 4학년 2학기에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갔던 나는 수학 후, 3개월 동안 혼자 남미 여행을 하면서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현지인을 접할 기회도 많았고 다양한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과 동행을 할 기회도 많았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힘들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좁은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그 이전의 편협한 시각들을 깰 정도로 신선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저 지나가는 여행객인 나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푸는 착한 사람들도 많았다. 여행을 하면서 즐기고는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취업에 대한 걱정 지수도 높아지고 있었다. 한국인 여행자 중에는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여행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지옥에서 벗어나서 좋다며 행복해했다. 나라면 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안정적인 삶과 보장을 모두 다 떨치고 온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여행에 대해 자신의 삶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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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티카카 트래킹 도중 찍은 사진


여행자 중에는 취업에 실패해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취업을 할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 대해 말하며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때, 독일인 친구가 내게 지금처럼 살고 싶은 대로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굳이 취업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나 역시 이미 경쟁이 치열한 한국사회에 이미 속해 있는 것이라며 내게 그 굴레를 떨쳐버리라고도 말했다. 그토록 내가 있던 장소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택했던 여행이었는데 나는 여행을 하면서조차 그 틀에 얽매여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회가 지닌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행 이후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한창 취업준비를 해야 할 시점에 여행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생애 다시는 못 할 남미 여행을 하면서 기뻐하는 한편, SNS를 통해 올라오는 취업성공 소식들에 주눅이 들었다.


그 독일인 친구의 말을 곰곰이 되뇌며, 혼자 여행을 하면서 생각들을 정리한 결과, 주눅이 들지 않는 방법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수만 가지라면 난 그중 하나일 뿐일 것이라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스텔에서 다양한 여행자와 마주치면서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빠져나와 여행 중인 이스라엘인 무리도 보았고 프랑스에서의 인종차별 때문에 남미로 이민을 간 튀니지 여인도 보았다. 수많은 여행자들 중 내가 제일 평범해 보였다. 나는 아직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대학생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도해 보지 않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은 나다운 태도가 아니었다. 나는 무모하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겁 없는 아이가 아니던가.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끝낼 시기가 왔다는 이유 때문에 나 스스로를 취업이라는 굴레에 묶고 부정적인 생각을 한다면 내 정신건강에만 해로울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이는 훌륭하고 지혜롭되, 올바르지 못한 이는 무지하고 못된 것으로 판명된다고 했다.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라는 진리를 깨닫기 전의 내가 올바르지 못한 이였다면 그것을 깨닫고 한결 홀가분해진 나는 올바른 이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훌륭해서도 지혜로워서도 아니었다. 다만 타인과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내가 앞으로 다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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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티카카 트래킹 도중 찍은 사진


“난 나 자신에 대해 확신하고 모든 것에 확신해. 당신보다 더. 나는 이전에도 옳고 여전히 옳고, 언제나 옳아. 난 이런 식으로 살았어.”라고 외쳤던 <이방인>의 뫼르소만큼이나 지금 나의 확신은 굳건하다. 대학교 5학년생이 되었고 아직 졸업을 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이 있었고 이제는 그 꿈에 대한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 강자의 편익이라는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에 대해 올바름이 편익이 되는 것이라는 점은 인정하나 그게 강자의 편익일 수 없다는 반론을 폈다. 올바름은 강자, 약자 모두의 편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살아가되 타인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름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 다른 올바름이 역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올바름은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너와 나는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간에 존중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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