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늘 바뀌어왔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좋은 영화가 많고 그 영화들 중에 내 인생 영화를 하나만 고르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인생 영화라 하면 거창한 영화를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꼭 거창하고 작품성있고 대중성있고의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영화가 내 인생 영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 아닌가. 떨림의 감정을 처음 알게 해 준 영화는 '냉정과 열정 사이'였지만 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블루 염색까지 따라 했던 영화는 '이터널 선샤인'이었다. 공대생 남자 친구 영향을 받아서 SF 영화만 주야장천 봤을 때는 '바이센테니얼맨'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언젠가는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아트나인에서 '로렌스 애니웨이' 보고 온 몸에 전율이 일었을 때는 자비에 돌란 같이 감각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저런 영화들이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좋아서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는 '미시즈 다웃파이어'였다. 남을 웃기는 재주는 없지만 잘 웃을 수 있는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로빈 윌리엄스한테 한동안 빠져 있었다. 스릴이 있기도 해서 언더커버 장르를 좋아하는 나는 로빈 윌리엄스의 여장에 킥킥댔고 제삼자적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스토리 때문에 이 영화를 인생영화로 꼽아왔다. '미시즈 다웃파이어'는 지금 다시 봐도 너무나도 매력적인 영화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서 엉엉 울어댔던 것은 어린 필구의 시점에서 싱글맘인 엄마를 생각하는 게 너무 기특해서였다. 필구가 종렬과 같이 밥 먹으면서 아빠라는 것을 눈치채고 엉엉 울 때 나는 필구가 된 것처럼 서럽게 울었는데 이렇게 순수한 아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모의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 역시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의 명연기보다 두 사람의 아들로 나온 아이의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영화 10편 중 한 편이라길래 보게 되었는데 만점을 주었고 그리하여 나만의 올해 영화 결산 어워드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로그 라인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도, 카메라의 구도도 너무나도 세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가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 엔딩에는 저릿해서 울었다. 스칼렛 요한슨이 쓴 아담 드라이버의 좋은 점을 아들 헨리와 아빠 아담 드라이버가 읽으면서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고 뒤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저릿할 수가 있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지루했지만 마지막에 꼬마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이게 인생이지! 크루즈엔 이렇게 맛있는 게 없잖아!' 할 때 뭉클해서 엉엉 울었던 때가 떠올랐다. 어른이 되면 인생을 복잡하게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때로는 어른보다도 더 성숙하다. 전기장판을 데우고 귤을 하나둘 까 먹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인생은 크루즈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이스크림 맛같이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기도 하니까. '결혼 이야기'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변호사를 통해 이혼소송을 하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다. 영화 '조커'를 보면서 호아킨 피닉스는 등으로도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담 드라이버야 말로 온몸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 영화 '패터슨' 보다는 한층 더 깊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노아 바움백을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프란시스 하'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정과 사랑이란 무엇이며 둘 다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한 사람일수록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고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배려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흑백톤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하얀 리본'을 보다가 졸았고 '프란시스 하'를 보면서도 조금은 지루해했던 이유가 흑백톤 때문이었다. 몇 년 후, 노아 바움백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았다.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와도 결이 비슷했고 새내기 시절에 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내게도 '브룩' 같이 멋지고 폼나서 동경했던 사람이 있었다.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보다가 말았고 노아 바움백과 나의 세 번째 조우는 '결혼 이야기'였다.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이동진 평론가님께서 토이스토리 3을 보고 이렇게 평하셨다면 이 평은 '결혼 이야기'의 평에도 해당될 이야기일 것이다.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고 사랑이 익숙해지면 자연스레 권태는 찾아오고 그 권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헤어지게 된다. 그러나 결혼은 권태가 찾아왔다고 해서 관계를 중단할 수 있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옛날과는 달리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이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영화는 이혼소송을 하게 되면서 각자 변호사를 선임하고 변호사를 사이에 두고 한때는 사랑했던 이들이 서로를 술 중독이니 무심한 아빠니 하면서 공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만난 지 2초 만에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설렘 대신에 무심함이 그 자리를 파고들면서 대화에도 단절이 찾아오고 눈물을 글썽이며 각자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분명 처음에는 상대의 장점만 보였을 텐데 상대의 장점보다 단점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순간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두 사람이 싸울 때는 홍상수 영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에서 정재영과 김민희가 대사를 주고받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만큼 연기가 정말 현실적이었고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가지다. 누군 그게 자격지심의 문제이고, 초라함의 문제이고, 어쩔 수 없는 운명의 문제이고, 사랑이 모자라서 문제이고, 너무나 사랑해서 문제이고, 성격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어떤 것도 헤어지는데 결정적이고 적합한 이유들은 될 수 없다. 모두 지금의 나처럼 '각자의 한계' 일 뿐.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은 분명 아직 서로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지만 결국 각자의 한계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이별할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관찰자가 바라보고 있고 그 때의 아이의 반응이 영화 안에 담긴다. 크레센도처럼 두 사람의 갈등이 심화되다가 수미상관식으로 이별이 그려지는데 관계의 종말이 아이의 천진난만한 시선으로그려지는 게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었다면 그들의 '이혼 이야기'는 양육권을 둔 피곤한 감정 다툼이 아니라 쿨한 바이바이었을는지도 모른다. 한때 사랑했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두 사람은 했을 테지만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너면서 관계가 봉합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이 영화는 비단 부부 문제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너무나도 귀하고 대단한 영화라서 감히 내 인생영화 바구니에 고이고이 모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