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간직해 온 나의 꿈 이외에 내가 동경했던 대상은 '외교관'이었다. 간지 그 자체였다. 영어는 기본으로 하고 제2외국어도 잘하고 외국 출장도 잦고 3년을 주기로 외국생활도 할 수 있고. 실제로 외교관으로 일하고 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고역이고 한국이 그립다고 했지만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더 다이내믹한 삶을 살 것만 같았다. 지루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여행기를 쓰는 '여행작가'는 사실 별로 부럽지 않다. 자유로워서 부럽지만 '여행' 이 일이 되면 남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여행지에서 몰두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할까. 뿐만 아니라, 책이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출판사도 팔리는 책을 원할 텐데? 외교관이 되면 한국에서는 광화문에서 일할 수 있을 테고 한국에서의 삶이 지루해질 때 쯔음 외국에 나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마냥 부럽기만 하지만 실제 현실은 야근의 연속에 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병가를 쓴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너무 멋지고 부럽지만 내가 외교관이 되기에는 역량이 미달이라서 감히 외교관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거 보면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다 비슷한가 싶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힌다.
장강명 작가의 책 중에는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 있다. 제목 자체가 헬조선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을까 싶다. 오죽했으면 유명한 작가의 책 제목이 '한국이 싫어서'이며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거푸 탈락 통보를 받고 너무 지쳐서 '탈조선'을 진지하게 꿈꿨던 적이 있다. 교환학생 때의 행복했던 기억만을 떠올리며 봉급은 적어도 멕시코에서 생활하면 삶이 더 윤택할 것만 같았다. 실제로 어릴 적 친구 한 명은 필리핀의 한 호텔에 취직해서 살고 있는데 나는 그 친구의 용기가 너무나도 부럽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너와 나의 미래가 이렇게 갈릴 것이라고 그 때는 누가 생각했으랴. 나는 윤택할 것만 같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겁쟁이니까.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직 조선에 미련이 남아서일까. 백수일 때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도피하는 것만 같아서였다. 지금 자발적으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일을 찾아서 떠나게 되면 도피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다 도피라고 하지 않을까. 내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내 생각보다 타인의 시선이 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다. 내가 그렇게 잃을 게 많은 상황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
"너는 외국 생활도 오래 안 했는데 가끔 보면 마인드가 참 외국인스러워."
태국에서 10년 살았다던 한 선배는 나를 신기해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조금 독특한 사람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관심을 가지며 주의깊게 보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어릴 적 엄마의 독서 강요 덕분(?)인 것 같기도 하다. 어려운 책은 또 읽기 싫어해서 상대적으로 쉬운 소설을 많이 읽었던 나는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마치 내 일인것처럼 웃고 울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성향이 있는데 문제는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때도 부단히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굳이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경험도 없지만 주인공이 이해가 갔고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으면서도 나는 그 감정들이 다 이해가 갔다. '그럴 수도 있지' 는 소설 속 인물들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회가 규정하는 기준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그럴 수도 있지' 가 아니라 틀리다고 판단을 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으면서 정작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틀림'으로 규정해버린다. 그래서 '외모상' 도 규격화되어있고 조직원의 '인재상' 도 '창의성'을 내세우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예스맨'이다. 예의를 지키는 문화가 좋을 때도 있지만 결국 이 '예의'가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예의'라기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장유유서 문화랄까. 우리나라는 유독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문화가 곳곳에 자리 잡혀 있기도 하고 어쩌면 이 문화는 '다양성'의 공존과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의 도중 누군가가 끊임없이 질문을 하면 이상하게 바라보지만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왜 우리나라는 그럴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유신독재 비롯 독재가 있어서 그런가 했지만 독일의 역사에도 히틀러가 있는데 독일의 분위기는 안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독일에서는 프랑스나 영국에 비해 경직된 분위기가 느껴진다. '쥬 뗌므'와 '구! 텐! 탁!' 느낌이 좀 다르지 않나. 나의 엉뚱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역사는 또 무시할 수 없는 부분 같다. 물론 멕시코는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지만 그 나라에서도 수업 시간의 풍경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 발을 올리고 수업을 듣거나 의자를 젖히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었고 교수님의 말을 자르고 질문을 하는 학생도 있었고 팔짱을 끼기도 했다. 우리나라였다면 '예의 없는 놈!' 하고 들었을 일이겠지만 그 자유분방함이 어찌나 좋던지. 나는 습관적으로 교실에 들어서면서 교수님한테 목례를 했는데 교수님은 그 부분을 신기해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아무렇지 않게 올라 하면서 교수님을 친구 대하듯이 했는데 나는 그 문화가 한동안 적응이 안되었고 끝까지 목례를 했다. 이래서 내가 탈조선할 수 없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선배 말대로 외국인스러운 면이 있는 신기한 조선인에 불과하다. 오호 애재라. 우리나라도 이제 '탈' 예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인정하면 경직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외국인의 눈에는 경직이 나의 관점처럼 신기해 보일 수도 있다.
'아리아' 에게 노래 틀어달라고 여러 번 말하다가 아리아가 노래 제목을 못 알아들어서 아리아가 알아들을 때까지 또박또박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웃기지만 나는 왜 '아리아'가 내 말을 알아듣길 바랐을까. '아리아'는 인격체가 아닌데도 '아리아'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답이 나왔다. 내가 탈조선을 할 수 없는 이유는 탈조선을 하면 인정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백수 때 했던 고민과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어떤 목적을 갖고 있지 않은 채 외국으로 무작정 나가면 사실상 한국이 싫어서 도피하는 꼴 밖에 더 될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조선인이라니 너무나도 슬프다. '인정 욕구'가 뭘까. 라캉은 결국 나의 욕망 역시 타자화된 욕망이고 불가능한 것을 욕망한다고 했는데 그 모든 욕망의 근본 원인이 '인정 욕구'라면 '인정 욕구'를 놓아버리면 되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으며 성취감을 맛보며 살아온 조선인인 내가 어떻게 탈 성취형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참으로 갑갑하지만 이것이 나라서 나는 나를 조금 더 사랑해주어야겠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조선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인간은 애니어그램에 의하면 3번 성취형 인간이라고 했다. 물론 애니어그램 조사 결과, 나는 성취형이 아니었다. 나는 우리 과 정원 80명 중에서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인 4번, 낭만적 개성주의자였다. 물론 나의 날개는 3번 성취형이었다. 그때 우리 수업의 80% 정도가 3번 성취형이었던 기억이 있다. 어찌 보면 너무 슬픈 현실 아닌가. 애니어그램에는 총 9가지 유형이 있는데 대다수가 3번 성취형이라니 어쩌면 모두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 헬조선을 비판하고 탈조선을 외치지만 결국은 헬조선에 순응해 살아가는 보릿자루 같은 인간들이다. 보릿자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외국에서 원하는 탈조선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기술자들이여, 얼른 탈조선하시길.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쓸데없는 상상과 고민을 하고 있을 우리 존재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