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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금사빠의 운명 타령

어느 별에서 왔니, 내 맘 가질러 왔니

by 아보카도

나도 태어날 때부터 금사빠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 겁났던 시절이 더 길었다. 청소년기의 풋풋한 사랑과 짝사랑을 제외하고 나면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유롭게 사랑할 수 있었던 20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나는 사랑이 쉽지 않았다. 사랑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고 내게 사랑은 각종 로맨틱 코미디와 로맨스 영화로 인해 대단한 무언가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래서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싶었다. 사실 '운명'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엄청난 것이 아닐 수 있지만 그때는 운명적인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종종 같이 밥을 먹는 동기는 동성친구 같았고 수업 시간에 같이 떠들며 팀플을 하는 상대에게서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낯익은 사람' 이 아닌 '낯선 사람' 들 틈에서 내 운명을 찾아 헤맸다. 왠지 길거리에서 운명을 마주칠 것만 같고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내 운명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고 첫눈에 반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드라마와 영화가 내 인생을 망치고 말았다. 사실 그런 경험은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미칠 정도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요즘 같은 세상에 첫눈에 쉽게 반할까.


요목조목 따져서 생각해보면 '유브 갓 메일'과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는 '우연' 이 남발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용식이도 동백이를 '우연히' 보고 반하지 않았나.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우연'이 잦으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연'이 잦은 영화나 드라마도 이제 식상하다고 오히려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린 '500일의 서머' 나 '가장 보통의 연애' 나 '연애의 온도'에 오히려 열광하지 않나.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2의 '주열매'에 몰입해서 나도 어찌나 울어댔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 은 어찌할 수 없는 끌림의 계기가 된다. 이성이 감성보다 발달한 친구와 대화를 해 보면, 나는 외계인 같다. 팍팍한 현실에서 샤랄라 한 환상을 찾고 싶어서였을까 나는 의미부여를 '꿈보다 해몽' 급으로 해댔는데 이성적인 친구는 나의 '의미부여'에 혀를 내둘렀다. '우연'은 별 게 아니라고 했다. 진짜 '우연' 은 별 게 아닐까. 왜 하필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과 자주 마주친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어디선가 '우연' 같은 '운명' 이 나타나면 나는 또 팔짝팔짝 뛰면서 설렐 것 같다.


20대 초반에 나는 이 세상 모든 근심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 마냥 진지했다. 이런 내게 금사빠적 성향이 있을 거라고는 그때 생각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때 몰래 흠모했던 수학학원의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같은 청바지에 흰 티셔츠만 입어도 늠름해 보이는 남자를 한때 찾아 헤맸는데 쉽지 않았다. 한때 나의 고민은 다들 쉽게 사랑하고 쉽게 연애를 하는데 왜 나만 어려운 것일까 하는 것이었다. 과에서도 1,2호가 순식간에 터져 나오고 수업시간에 팀플 하다가도 잘만 연애를 시작하고 동아리의 누군가는 몇 개월 찔끔 A를 만나고 나서 환승해서 B를 또 찔끔 만나고 그러다가 다시 C를 만나던데 나는 왜 때문에 주변에서 소개팅을 시켜줘도 쉽지 않을까 하는 의문.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운명'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그때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고 가볍게 시작해봤더라면 상대도 내 '운명' 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종종 한다. 아무리 잘 맞을 것 같아도 막상 뚜껑 열어보면 오 마이 갓! 하면서 달아나고 싶어 지는 사람도 있듯이 두근두근거리지 않아도 말이 잘 통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취향이 달라도 맞춰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놈의 운명이 뭐라고 나는 손끝이 닿기 전에도 운명이 아니라고 섣불리 판단하곤 했다.



그런데 그 운명 만나보니까 별거 아니더라.(별 거긴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하지 않단 말) 운명인 이유는 내가 의미부여를 많이 하고 그 의미부여에 따라 구축된 이미지가 보통사람인 그 사람의 외피에 덧씌워져서였다. 그러고 나니 그 이후에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를 몰래 흠모하고 두근거려하며 설레는 것과 누군가와 함께 사랑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사람을 겪기 전에 했던 기대나 환상과 실제의 모습이 너무나도 달랐을 경우, 실망을 하게 되는데 그런 경험이 여러 번 쌓이면서 점점 상대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상대에 대한 실망뿐만 아니라, 내 바닥을 보고 내 한계를 깨달으며 나란 인간 역시 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 이 뭔가 하는 탄식을 늘어놓게 된다. 더 나아가 현실적인 생각들을 하며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시간 낭비, 감정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사람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에 연애와 사랑의 결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사람은 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법이라서 그 비슷했던 유형들을 떠올리면서 나만의 기준에 입각해서 상대를 섣불리 판단하게 된다.


너무나도 슬픈 일 같다. 그렇게 운명 타령을 하다가 막상 운명이 나타났을 때도 그 운명의 데스티니와 사랑의 피날레를 이루지도 못했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서 주변에서 다 놓은 '운명'의 고삐를 놓을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 실체도 없는 운명이라는 존재를 놓아주고 이제 현실과 마주해야 하나. 주변에서 다들 현실적인 생각들을 하길래 나 또한 철든 친구들을 따라 해야 할 것 같아서 운명을 만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금사빠적인 성향을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고치는 게 쉽지 않다. '냉정과 열정 사이' ost 'What A Coincidence'는 한동안 내 컬러링이었는데 지금은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운명의 데스티니!' 하며 감탄하기보다는 '음악과 이태리가 다 살렸군' 하며 냉소를 보낸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운명에 허덕이던 금사빠를 탈 금사빠로 바꿔놓을 수 있을까. 사람 쉽게 안 변하는데?




'우연'과 '운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기보다는 자신이 만들어 가기 나름 아닌가.(라고 쓰면서 그래도 지구 어딘가에 나와 딱 맞는 운명이 있지 않나 하는 이 철없는 생각을 하는 나란 인간!)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를 좋아해서 그 장르 쪽 영화를 정말 많이 봤는데 노년의 사랑을 다룬 영화 속 캐릭터들도 면밀히 살펴보면 2030의 로코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이 귀엽다. 영화 '호프 스프링스'와 '위크엔드 인 파리'를 보면서 관계에서의 새로움이란 만들어가기 나름이라고 생각했으며 아무리 떽떽거려도 누군가가 그 옆자리에서 묵묵히 지키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달에 여자친구가 세 번이나 바뀌었던, 갑자기 생각나는 카사노바 기질을 가졌던 그분의 띵언이 있다. 자기한테는 연애만큼 쉬운 게 없다고 했다.


'다 맞춰가면 되는 거지.'


말이 쉽지 맞춰가는 게 너무나도 피로한 일 같다고 생각하며 '금사빠'는 피로한 일을 감수할 만한 사랑을 목놓아 부른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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