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순이다. 대학생 때 자취할 때부터 편순이었던 나는 그때는 미니스톱 예찬론자였다. 쪽문 쪽 탕수육 집 근처에 있던 미니스톱에 자주 들렀던 나는 미니스톱 바나나 초코칩 아이스크림을 제일 좋아했다. 미니스톱 아르바이트생은 주로 중국인 유학생이었는데 그녀 혹은 그는 늘 눈빛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편의점에 종종 들르곤 했다. 그리고는 그 달의 신상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집어 들곤 했다. 회사원인 지금의 나 역시 편의점에 매일 세 번은 들른다. 정작 삼시 세 끼는 제 때 꼬박 챙겨 먹지 않으면서 출근 전에 한 번, 저녁 시간에 한 번, 퇴근하면서 한 번. 이렇게 정기적으로 편의점에 간다.
김애란 작가님의 단편집, <달려라 아비> 중에는 '나는 편의점에 간다.'라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에서 바코드에 대한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동안 편의점에 갈 때마다 바코드를 찍는 기기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표현이 정말 좋았다. 사실 편의점 단편보다는 '영원한 화자'라는 단편소설을 무지 좋아한다. 김애란 작가님이 <두근두근 내 인생>으로 유명해지시기 전에 책이 닳도록(조금 과장해서) 많이 읽었던 소설이 <영원한 화자>라는 소설이었다. 어쩜 이렇게 나와 똑같은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작가님의 생각에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슴이 벅찼다. 신기함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아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 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1분 1초, 그 순간까지도 수십 가지 생각을 하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없는 문제나 물음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편으로는 단순해서 '너는 가끔 보면 참 아메바같아.'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나지만 기분이 별로다가도 편의점에 들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편안해진다. 김애란 작가님 말씀대로 일상을 구매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자주 가는 동네 마트와 달리 물건 순환율도 빠르고 편의점에서 나오는 신상들을 통해 이 시대 트렌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센스 있는 MD들이 센스 있는 물건들을 만들어내 놓는 것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신상 킬러라서 과자를 싫어하는 친구도 요새 편의점에 핫한 게 뭐냐고 내게 물어보곤 해서 나는 핫한 스낵 몇 가지를 추천해주곤 한다. 그런데 사실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제일 감명을 받는 순간은 신상 과자가 맛있을 때가 아니다. 가끔 발견하는 보물 같은 노래들에 예상치 못한 감동을 받곤 한다. 최근 발견한 곡들은 다음과 같다.
폴 킴의 New Day, 헨리의 Fall In Luv, 김나영과 MJ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첫 번째 곡은 친구랑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다가 너무 좋아서 편의점 아저씨한테 가서 너무 죄송한데 곡 리스트 좀 볼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그런데 편의점에서도 랜덤으로 재생하고 있어서 곡을 알 수 없어서 '랄라라라라라'로 검색해봐도 안 나와서 폴 킴 노래를 아는 노래 빼고 다 들어보고는 찾아내서 뿌듯해했다. 두 번째 곡은 아이돌이 부른 곡일 것만 같아서 잠깐 멈춰 서서 들리는 가사를 네이버에 검색했는데 '니 옆에 있어'를 '니 앞에 있어'로 잘못 들어서 '두근두근'으로 내내 곡을 검색하다가 겨우 찾아낸 곡이었다. 세 번째 곡은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라는 후렴구 덕에 쉽게 곡명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실 내가 멜론을 쓰고 있거나 네이버 어플만 깔아 뒀으면 음악 검색만 하면 편할 일이지만 나는 네이버 어플을 깔지 않았고 멜론을 쓰다가 플로로 갈아타서 그 기능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이렇게 노래를 찾아내고 그 노래만 주야장천 듣는 행복이 주는 기쁨도 꽤 크다.
스푼 라디오에서 제일 인기 있는 방송 중 하나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하는 방송이라고 들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 본 적은 없지만 해 보고 싶었던 이유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다. 야간에 아르바이트를 해 본 언니 말로는 별의별 진상도 있지만 가끔 1+1 중 하나를 아무 말 없이 스리슬쩍 내밀고 가는 마음이 따뜻한 손님도 있다고 했다. 새벽에 게스트 하우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새벽 세시에 들어온 험상궂게 생긴 손님이 아무 말 없이 포카리스웨트를 스리슬쩍 내밀었을 때의 감동과 유사한 따뜻함 아닐까. 백수 시절에 후드를 집업하고 자주 갔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은 책을 펴 둔 채 휴대폰을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는데 그때 내 표정도 동화돼서 키득거렸던 적이 있다. 편리를 파는 24시간 편의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인간의 온기를 느끼며 위로를 받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키오스크가 생기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면 편의점에서 주고받는 온기도 없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