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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유럽,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사람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난다.

by 아보카도

친구 추천으로 오스트리아를 가게 되었지만 이번 여행으로 인해 나는 오스트리아를 내가 가 본 최고의 유럽 국가로 꼽게 되었다. 물론, 구글맵 리뷰 곳곳에 있었던 '인종 차별 심함'에 부합하게도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지는 않았지만 리뷰에서 말한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기에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합스부르크 왕실이 있었던 나라라고 생각하면 그 정도 우쭐함 쯤에야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우월감과 열등감은 한 끗 차이고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국 사람이나 동남아 사람들한테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 않나. 반대로는 또 백인한테는 열등감 혹은 사대주의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나. 적어도 파리 지하철에서 당했던 목졸림은 당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의 우쭐함과 영수증을 던지거나 내 주문을 읊어대는 웨이터의 비아냥거림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었다. 카페 자허에서는 손님을 안내해주던 여자분이 '아임 낱 어 웨이터~' 하며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고상하게 팔짱을 끼고 가기도 했지만 그건 웨이터라고 착각한 내 잘못 같기도 하다. Gasthaus Poschl이나 Cafe Central에서도 여러 종업원들 중 한 종업원이 한 사람을 전담해서 맡았고 영수증이나 계산도 오더를 받은 당사자가 끝까지 책임지는 듯했다.



레스토랑의 일부 사람들로 오스트리아인들 전체를 이상하다고 평가하기에는 내가 폰 배터리가 없어서 허덕이자 웨이터를 불러서 충전 좀 도와달라고 해 주신 할머니도 계셨고 지하철에서 자리가 비어 있길래 앉으려다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온 부부가 있길래 스리슬쩍 비켰더니 이리 와서 앉으라며 밝게 웃어준 조앤 케이 롤링 닮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있었다. 훈데르트 바서 집을 밤늦게 찾아 헤매다가 트램을 반대 방향으로 타서 발을 동동 구르자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신 아주머니도 계셨고 두룸을 하나 시켰는데 버스가 올 때까지 재차 확인해 준 아저씨도 있었다. 니콜라스 홀트 닮아서 나도 모르게 시선이 쏠렸던 트램에서 본 훈남이 내가 쥐고 있던 물병을 보며 친구랑 독어를 쓰다가 그녀가 맥주가 아닌 물병을 쥐고 있다며 킥킥대서 잠깐 심쿵했고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영업이 끝난 베이커리 사장님이 가판대에 진열된 10개의 빵을 종류별로 담아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고 21kg에 육박하는 케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릴 때 도와주겠다며 나섰던 좋은 분들도 있었다. ALT&NEW 레코드샵에서 만난 주인아저씨는 비포 선라이즈 보고 찾아왔냐면서 곡들을 직접 들어보라고 헤드폰을 건네주셨고 에코백을 사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LP판 하나랑 CD를 넣어주시는가 하면 벨베데레 궁전에서는 표를 건네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고맙습니다.' 라며 귀엽게 말하던 여자분도 계셨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된다. 이상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는 법.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주는 온기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온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된다. 오스트리아인들 뿐만 아니라, 이번 여행에서는 나와 동갑인 한국인 부부들과 함께 지루한 연착을 함께 견뎌냈고 루마니아 가족들 덕분에 판도로프 아웃렛에서 비엔나까지 안전한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길래 찍어주면서 대화를 나눴던 스페니쉬 비행사 역시 내게 맛있는 로컬 레스토랑을 소개해 주었고 적적한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쇤부른 궁전에서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던 멕시칸 가족이 내 스페인어가 꽤 나쁘지 않다며 칭찬해 줬고 운터 베르크 설산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온 가족이 '부엔 비아헤'를 빌어줬고 케이블카를 기다리면서 봤던 파키스탄 거대 패밀리 중 스머프처럼 생긴 남자 꼬마가 진짜 너무 귀여워서 계속 쳐다보니까 페넬로페 크루즈 닮은 엄마가 빙긋 웃어주었고 내 뒤에 서 있던 미국인 가족의 두 딸이 케이블카 앞으로 쭉 달려가서 스리슬쩍 비켜주니 예쁜 미국인이 고맙다고 했다. 레코드샵에서 내가 셀카를 찍는 게 안쓰러웠는지 비엔나에 살고 있다는 비쩍 마른 헝가리인이 비포 선라이즈가 자신의 인생 영화라며 포즈까지 제안해주며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주었다. 셀카봉을 들고 갔지만 셀카봉보다는 지나가는 친절한 행인들의 손을 빌려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내 이름을 말하자, 단번에 한국인임을 알아봐 준 캐나다인도 있었고 독일에서 교환학생 중이라는 일본인과의 대화도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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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내 옆에 앉은 광저우 출신 중국인이 테더링을 해 줘서 중국에서도 기꺼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고 우루무치 공항에서 와이파이를 뚫어준 승무원 덕분에 여권을 인식해야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광저우 공항과 달리, 손쉽게 와이파이를 쓸 수 있었다. 사실 중국에서는 영어가 심각하게 안 통해서 '파파고'를 통해서 영어로 말한 후에 번역된 것을 보여주는 편이 더 빨랐는데 우루무치 공항에서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하실 줄 아는 아저씨를 만난 덕분에 우리는 중국인과 손쉽게 소통할 수 있었다. 중국에서는 중국어를 잘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얼싼쓰, 니츨뽠마, 워아이니 정도의 중국어만 구사하는 나로서는 중국어가 외계어로 들렸다. 물론 중국의 우루무치 호텔 로비의 조폭 같아 보이는 아저씨와 불친절한 로비의 언니들도 있었지만 광저우에서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따스해서 지역의 특성이 다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실제로 광저우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고 공항도 인천공항만큼이나 잘 되어 있어서 우루무치의 항공사 직원들이 딱딱하고 까다로웠다면 광저우의 경우 너무나도 젠틀했다. 나는 유독 이번 여행에 중국에서 여권 검사를 두 번이나 격리되어서 오래 당했는데 너무 그 이유가 궁금해서 두 번째 검사 때는 "왜 제가 이렇게 검사를 당하죠?" 하고 겁 없이 경찰한테 물어봤는데 그 사람도 모르겠다며 상사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그때 나와 함께 검사받던 홍콩인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여자분이었는데 귀여운 아기를 데리고 광저우에 계신 엄마네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홍콩-중국 두 나라 관계를 생각하면 자기는 이렇게 검사받는 게 이해 가는데 내가 여권 검사를 오래 받는 건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같이 고개를 갸우뚱거려줬다. 홍콩 여자분 아기가 인형만큼이나 귀여워서 무뚝뚝한 중국 공안을 웃게 하길래 내가 갖고 있던 빵을 먹을래? 하면서 건넸는데 단호하게 거절했다. 독 든 것도 아닌데 왜 거절한담. 그러고 혼자 빵을 먹었는데 그 공안은 또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지! 흥이야. 나도 그 보스가 무섭게 생겨서 차마 못 물어봤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였을까. 여권이 2022년이면 만료되는데 그 때 다시 새 여권을 만들면 이런 일은 없겠지?


이번 여행을 통해 비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던 내가 이상적인 부부를 보면서 결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옆에 앉은 미국인 혹은 호주인으로 예상되는 남자가 중국인 혹은 베트남인으로 예상되는 아내가 기내식에 손도 못 대고 칭얼대는 아기를 챙기고 있는데 무심하게 밥을 꿀꺽꿀꺽 삼켜대는 모습을 보면서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그래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아기를 케어 잘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을 보면서 한국과는 좀 다른 모습에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광저우로 가는 비행 내내 내 옆에 앉아 있었던 미국인이 아이가 그렇게 울어대도 무신경하게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했다. 육아는 공동 육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 적어도 아내를 위해 밥을 한 숟갈 떠 주든가 아니면 아내가 밥 먹을 동안만이라도 아이를 봐주며 아이의 울음이 그칠 수 있게 도와주든가. 정말 내 일이 아니지만 너무 그 아내가 불쌍했다. 예쁜 아기를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지만 비행 내내 악을 쓰며 울어대는 아기를 어쩔 줄 몰라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아주머니를 보면서 행복한 줄 알라며 나는 네가 제일 부럽다고 했던 육아휴직을 낸 내 친구가 떠올랐다. 공항으로 얼른 돌아가서 일하고 싶다며 직장보다 육아는 더 지옥이라고 죽겠다고 푸념했다. 나와 통화하는 와중에 문득 연애를 하면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을 느끼고 싶다며 여행지에서 썸씽이 없었냐고 채근해대는 친구의 말에 나는 무심하게 맞춰가는 게 얼마나 귀찮은 줄 아냐고 대꾸하고 말았다.


"좋은 사람이니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 만난 누군가가 내게 해 준 이 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여행지에서는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난 나는 이번 여행지에서도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개중에서는 깊게 대화를 나눈 사람들도 꽤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게 이 말을 해 줘서 너무 좋았다. 짧은 시간에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알아봐 준 사람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에게 이런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정말 좋았다. 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허수경 작가의 장편소설 <모래 도시>의 내가 좋아하는 구절을 언급하며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사람들 편을 마치고자 한다.


난, 이 지상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들 거야.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 저녁식사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 만큼만, 그리고, 연필을 깎고, 천천히 천천히 배운 것을 소리 내서 읽으면서 적을 거야. 따뜻한, 그 기에 의지해서. 따뜻한 거에는 빛이 나거든. 빛이 정말 나거든. 천천히 천천히,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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