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과 '사회구조의 문제'를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표현해 내는 영화가 있다는 사실에 영화를 보는 순간순간 온몸에 소름 돋았다. '지하철 냄새'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고 가족 VS 가족 대결구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을 보면서 봉준호 감독님은 천재라고 생각했다. 세련된 풍자가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을 보면서 기생충을 뛰어넘을 마스터피스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던 영화 : 조커
조조영화로 봤는데 사람이 몇 없는 극장이기도 했지만 극장에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도 환상적이고 연기도 환상적이지만 영화 보는 내내 불편해서 다크 한 감정에 더 이상 빠지고 싶지가 않았다. 엄청 통쾌하지도 않았고 엄청 저릿하지도 않았다. 어두운 블랙홀 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서 힘들었다.
오열한 영화 : 먼 훗날 우리
언젠가 겪어 본 얘기 같아서 몰입해서 울었지만 지금은 괜찮다. 카타르시스의 힘은 위대하다. 그 감정에 빠지기 싫어서 다시 보기를 시도할 것 같지는 않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에 미련을 가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영화 대사처럼 'I MISS YOU'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워하든 놓치든 이미 끝나버린 이야기라는 점이 너무나도 허탈하지만 끝난 것은 끝난 것이다. '순정'에 허덕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어느 드라마 대사에는 동의하나, '순정'에 허덕이기에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은 타이밍이다.
곱씹고 싶은 영화 : 결혼 이야기
주연 배우의 연기가 너무 좋고 '애증'의 감정을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잘 표현한 영화라서 좋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든다는 것은 아직 상대에 대한 감정이 있다는 것인데 이 영화는 '싫음' 이 아닌 세월이 만들어낸 '미움'의 감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혼 소송 와중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드문드문 엿보여서 너무 안타까웠지만 봉합이 되기는 어려운 위태위태한 관계까지 그 와중에 영화 안에서 표현돼서 놀라웠다. 엔딩은 올해 본 엔딩 중 최고였다.
개인적인 이유로 재회한 영화 : 비포 미드나잇
비포 미드나잇을 극장에서 본 건 2013년 무렵이었다. 그때 자주 가던 극장에서 한낮에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실망했다. 현실적인 비포 미드나잇보다는 환상적인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했던 나는 비포선셋에서 끝났어야 할 영화라고 평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현실적인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포 선라이즈-비포 선셋-비포 미드나잇만큼 MSG 없는 로맨스 영화가 있을까. '냉정과 열정 사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영화라면 비포 시리즈의 이야기는 이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겪었을 현실적인 러브스토리다.
따뜻했던 드라마 : 동백꽃 필 무렵
단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어서 좋았다. '편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드라마였고 등장인물들이 인간적이었고 따뜻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에 웃었던 시간들보다 울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 다음 회가 기다려져서 일주일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너무 좋아서 구룡포까지 갔는데 구룡포도 정말 좋더라. 필구도 동백이도 동백이의 엄마도 향미도 안쓰러워서 같이 울어주고 싶었다. 막장적인 요소 없이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드라마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히어로 안 좋아하는 내가 열광한 히어로 드라마 : 더 보이즈 시즌1
마블 시리즈보다는 DC 시리즈를 좋아하고 판타지보다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나온 신선한 이야기에 냉큼 정주행 했다. 자극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부패한 슈퍼히어로들의 이야기라서 기존의 히어로물과는 달리 신선했다.
장르물 안 좋아하는 내가 몰입했던 드라마 : 맨헌트 : 유나바머
실화를 기반으로 해서인지 탄탄했고 '법언 어학'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데도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쫀득쫀득할 수 있다니 천재 수학자+폭탄 테러리스트의 결합만으로도 매력적인 캐릭터인 셈인데 그 캐릭터가 가진 어린 시절의 복잡한 배경 이야기들이 하나 둘 펼쳐지면서 연민까지 들게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드라마
주인공이 죽어도 전개되는 드라마 : 보디가드
남주-여주의 케미가 좋아서 고위직 정치인과 경호원의 섹시 멜로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주인공이 빨리 없어져서 에이 아니겠지 어딘가에 살아있겠지 했는데 진짜 없어지는 드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있고 6화까지 쫄깃쫄깃해서 신박했던 드라마. 지금 보고 있는 킬링 이브만큼이나 기존의 드라마와 달리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 자기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를 곳곳에 배치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던 드라마.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청춘물, 학원 드라마 : 첫사랑은 처음이라서
교복 입은 풋풋한 학생들이 나오는 고등학생 청춘물, 캠퍼스 물 다 좋아하는 나는 '청춘시대' 만큼 깊이는 없지만 풋풋한 감정을 여과 없이 표현한 이 드라마를 보면서 스무 살의 나를 떠올렸다.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서 캠퍼스를 거닐고 싶다고 생각했고 풋풋하게 다시 사랑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할 수 있는,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이 드라마에 오롯이 담겨있다. 삼각관계, 사랑과 우정 사이 등 뻔한 요소들이 있고 뻔한 결말이 예상되는데도 캐릭터들이 투닥거리고 오해하고 자신의 진짜 감정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캐릭터도 미쳤고 연출도 미친 드라마 : 킬링 이브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 스파이물 좋아하는 나는 시즌1의 에피1을 보고 소름이 돋아서 그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에피4까지 정주행했다. 두 사람의 케미에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했고 조디 코머의 의상에 눈이 즐겁고 산드라 오의 섹시한 영어발음에 환장하겠다. 말로만 듣던 이 미친 드라마를 2019년 12월 31일에 영접하고 행복해 죽는 줄 알았다. 아직 시즌2가 남았으니 아껴보려고 한다. 조디 코머가 너무 예쁜데 얼굴 근육을 쓰는 연기와 오묘한 눈빛 연기를 펼치는데 간담이 서늘해지고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