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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미술관 투어, 오디오 가이드는 필수 or 선택?

오디오 가이드는 필수가 아닌 선택, 클림트 팬이 말하는 빈 미술관 투어

by 아보카도



학생 때, 미술사의 사조 외우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던 나지만 미술 작품 보는 건 좋아해서 전시회를 종종 다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프리다 칼로다. 멕시코 사람 이어서이기도 하고, 그녀가 가진 트라우마가 미술로 표현되는 방식도 좋고 기괴한 느낌도 좋아서 프리다 칼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나라 화가 천경자 님의 그림에서 프리다 칼로의 느낌이 나지만 프리다 칼로에게서는 걸 크러시와 그녀만의 개성이 느껴져서 존경한다. 나는 개성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인데 프리다 칼로 못지않게 좋아하는 화가는 구스타프 클림트다. 키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닳을 때까지 폰 케이스로 썼었다. 벨베데레 궁전의 상궁에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걸려 있다. 키스 이외에도 다양한 그림이 있고 에곤 실레의 그림도 전시되어 있는데 제일 강렬한 것은 역시 키스다. 키스 그림이 너무 좋아서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는데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실제로 가까이서 보면 색깔보다 연필 자국이나 선들이 더욱 뚜렷하게 보이고 화려한 문양과 자수가 섬세해서 와하는 감탄사를 늘어놓지 않을 수가 없다. 클림트와 에곤 실레 그림을 더 보고 싶어서 레오폴드 미술관까지 찾아갔는데 그곳에도 물론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벨베데레 궁전에서 본 클림트의 <키스>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뮤지엄 콰르티에 라고 불리는 미술관 박물관 집결지


나는 자연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 레오폴드 미술관 마스터 티켓을 20유로에 끊었다. 미술작품을 통해 얻는 감흥을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금요일에, 레오폴드 미술관은 토요일에 갔다. 쇤부른 궁전에 간 날 오후에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갔고 벨베데레 궁전에 간 날 오후에 레오폴드 미술관을 갔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서도 고대 유물에는 관심이 없어서 미술 작품 앞에서 3시간가량의 시간을 보냈다. 고대 유물이 전시된 곳은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든다. 미술 작품이 전시된 공간에 비해 사람이 많이 없기도 하고 조명들이 유물들을 돋보이게 설치되어 있어서 멈칫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고고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나와 다르게 경이로움을 느낄는지도 모르겠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은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기도 하는데 가 보면 그 이유는 알게 된다. 정말 미술관 안이 예쁘고 편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곳곳에 소파를 비치해 두었으며 고풍스럽게 전시된 미술 작품들을 보다 보면 마음까지 정화되는 듯하다. 나의 경우,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과 레오폴드를 묶어서 판매하는 마스터 티켓을 구입했는데 둘 다 가 본 클림트 팬의 입장에서 레오폴드 미술관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레오폴드 미술관 자체가 감각적이기는 하나 그곳에서 보는 작품들보다는 벨베데레 궁전을 구경하다가 상궁에서 밖의 뷰를 보거나 쇤부른 궁전을 나와서 글로리에 테로 올라가서 비엔나 시내를 바라보면서 더 많은 탄성을 지르게 될 터이니 레오폴드 미술관은 시간 많은 사람 아니라면 클림트나 에곤 실레 팬이어도 패스할 것을 권한다.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을 연상케 하는 쇤부른 궁전, 벨베데레 궁전

쇤부른 궁전의 그랜드 투어의 경우, 생각보다 빨리 끝나고 합스부르크 왕실의 이야기를 가끔은 음악까지 나오면서 설명해주는데 오디오 가이드 내용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글로리에 테에서 바라봤던 쇤부른 궁전의 모습이다. 심지어 한국어로 들었는데도 합스부르크 왕실은 세계사에서도 대단한 가문이었군, 왕의 아내는 무척이나 따분했겠군. 얼마나 힘들었으면 궁실에 있지 않고 여행을 다녔담. 하는 생각 정도를 하게 된다. 쇤부른 궁전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중국 문양으로 온통 도배된 공간이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도 클림트 그림과 에곤 실레 그림 코코 슈카 그림을 한국어로 친절하게 들을 수 있는데 에곤 실레가 아내 이전에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클림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압도되는데 에곤 실레의 그림을 보면 연민이 든다. 반 고흐가 그린 자화상에서 느껴지는 투박함과는 또 다른 결의 짓눌림이 느껴져서 연민이 들었다. 에곤 실레와 코코 슈카가 클림트의 키스를 흉내 낸 그림도 있는데 원작을 따라올 수는 없는 듯하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보고는 감흥을 얻지 못했지만 보테로의 뚱뚱한 모나리자 그림을 보고는 귀엽다며 원작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클림트의 <키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위대한 그림 같다.


화이트톤의 감각적인 레오폴드 미술관에는 에곤실레, 클림트 그림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미술사의 획을 그은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볼 수 있다.


클림트의 <키스> 그림이 그만큼 강렬해서일 수도 있지만 막상 레오폴드를 가 보면 오스카 코코 슈카 그림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고 오스트리아 전체 더 나아가 독일 현대 미술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서 클림트와 에곤 실레 팬은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도 일본인지 중국인지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버전은 있지만 우리나라 버전은 없어서 영어로 들어야 한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쇤부른 궁전, 레오폴드 미술관, 잘츠 부르크의 레지던트 회화관 모두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사실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갑자기 뇌에 주입되면서 그때그때 그 오디오를 따라가기에 바쁘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도 듣지 않는 것보다는 듣는 게 낫겠지만 지식으로 작품을 분석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낌으로 작품을 보는 게 더 행복한 일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던 곳보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너무 좋았던 곳은 잘츠부르크의 무목 현대 미술관이었다. 프랑스로 따지면 퐁피두 느낌이고 영국으로 따지면 테이트 모던 느낌이 나는 이 곳을 간 이유는 묀히스베르크 전망대 때문이었다.


무목 미술관의 기묘한 전시 그리고 야경


구글맵을 몹시나 맹신했던 나는 구글맵 때문에 뺑뺑 둘러가서 등산을 하다시피 했는데 구글 맵의 다른 리뷰를 보면 있듯이 묀히산 현대 미술관의 입구를 찾아서 엘리베이터만 타면 야경을 땀 흘리지 않고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그 리뷰를 읽고 찾아갔는데도 구글에 속았다. 묀히스베르크 전망대가 월요일에는 휴무라고 해서 야경을 담기 위해 부랴부랴 일요일 6시가 되기 전에 이 곳에 가야 했다. 야경은 정말 예뻤고 숨을 고른 후에 잘츠부르크 카드로 묀히산 현대 미술관을 구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난해한 작품들 투성이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나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오디오 가이드 없이 난해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게 정말 행복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그렇게 힘들게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하나 들었던 것보다 묀히산 현대 미술관을 몇 번 돌면서 난해한 그림들과 마주 하는 게 더 즐거웠다. 물론 내가 선호하는 그림이 난해하고 독특한 그림 이어 서일 수도 있겠지만 무목 미술관에서 받은 경이로움이 야경을 보면서 받은 경이로움보다 더 컸다.


벨베데레에서는 그림에 가까이 가면 삐삐 소리가 나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클림트의 <키스> 다음으로 좋았던 그림은 역시나 벨베데레 궁전에서 본 유디트였다. 클림트의 유디트 그림이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나오기도 하고 클림트의 그림은 섬세해서 정말 좋다.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것보다 차라리 영화 <우먼 인 골드>를 한 번 보고 가는 게 클림트를 조금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오디오 가이드 없이 마음으로 미술관 투어를 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사실 또 한국어로 지원이 된다고 하면 오디오 가이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않겠냐며 생각할 수 있는데 오디오 가이드 없이 클림트 그림을 10분 동안 바라보는 게 더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클림트 그림은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바스러질 것만 같은 두 남녀의 모습과 찰나의 찬란함을 화려하게 표현한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질 것이다. 동공이 확대되었다가 축소되고 홍채가 열렸다 닫혔다 뭐랄까 이 느낌은 형용할 수가 없는 느낌이다. 클림트가 살아 있다면 반할 것 같다.


클림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클림트 관련 굿즈들을 사고 싶을 텐데 굿즈는 벨베데레가 제일 좋았다. 클림트 그림이 새겨진 손거울이나 파우치가 정말 예뻐서 충동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에코백은 그냥 그랬고 오히려 레오폴드의 에코백이 예뻤다. 레오폴드의 굿즈들은 그냥 그렇지만 벨베데레에서는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알라뷰, 떼끼에로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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