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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싸이월드의 추억 속으로

2020년의 내가 2010년의 너에게

by 아보카도

요즘의 나는 인풋이 없어서 아웃풋도 없지만 감성도 어느샌가 말라비틀어졌다. 누군가가 감정이 건조해지는 연습을 해 보라고 조언을 하길래 무덤덤해지기 연습을 시전 하는 중이라 그럴까. 아냐 난 아메바라서 다시금 감성이 충전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외쳐보면서 과거의 갬성 충만했던 싸이월드를 찾아가 보았다. 정말 쓸데없는 글들을 곳곳에 써 두었구나. 일찌감치 비공개 전환을 해 버린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나만의 SWAG이 있었다. 그때의 글은 서툴렀지만 묘사는 적나라했고 생각이 많은 건 여전했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에 지금보다는 더 주저함이 없었다. 타임슬립을 해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너를 만난다면 그때의 너는 나를 보고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리고 난 너에게 이 말을 건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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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복잡해서 모순적인데 자아 성찰하는 건 여전하구나. 생각을 줄여."


그러면 너는 답하겠지.


"생각을 어떻게 줄이죠?"


그러면 나는 되묻겠지.


"글쎄.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니?"


그러면 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묻겠지.


"누구시죠?"


그러면 나는 말하겠지.


"사랑한다. 아주 많이."


그러면 너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으며 답하겠지.


"사... 사..... 사랑이요?"


불그스름해진 너의 두 뺨을 보며 나는 중얼거리겠지.


"그래. 이 바보야."


그러면 너는 난해한 꿈을 꿨다고 싸이월드에 주절주절 쓰겠지. 지금은 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이 글들을 보면서 너의 SWAG이 새삼 그리워졌다. 지금의 내게는 그 어떤 SWAG도 없거든. 글들이 서투르고 삐뚤빼뚤해도 그때는 SWAG이 있었어. 지금의 내게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SWAG조차도 없거든.


1.

볼펜이 오선지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줄선에 열을 이루어 불장난을 치기도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도에서 옥타브 도까지, 음악으로 말하고 기호로 말하기도 한다. 바코드나 초록색과 흰색이 반씩 이루는 가격표가 물신주의를 상징한다면, 물신주의의 보고에서 만들어진 검은색 잉크의 볼펜은 자유롭게 내 생각을 옮긴다. 단일화된 그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삐뚤삐뚤하고 각양각색인 글자 나부랭이들을 조각한다. 그것이 하나의 그림일 수도 있고 조각품일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출판사와 공장을 통해 나무들(자연)을 부수어야만 한다. 나무들은 숨 줄을 잃고 죽음과 동시에 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손때에 의해 하얀 속살을 변색시켜 갈 것이다. 갈변하는 사과처럼. 맷돌에 밥을 부으면 누우런 누룽지가 탄생하는 것처럼. 그러나 색깔은 변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겉모습은 치장해도 본질은 움직이지 않고 生의 상태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나’와 ‘타자’ 간의 소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의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나’란 사람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

원색, 블랙커피, 인간. 이 모든 것의 공통은 오리지널이라는 것이다. 오리지널의 반대편에서 상존하는 것은 소위 짜가라 불리는 모조품이다. 난 원색을 참 좋아하지만 블랙커피를 매우 싫어한다. 개인의 기호는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음악의 본류인 재즈나 블루스보다 주류인 대중음악보다 인디를 즐겨 듣지만 주류의 중심에 서 있는 동방신기를 매우 사랑한다. 그렇다면 난 일관성 없는 사람인가. 문화의 다양성은 고려되고 이념의 다양성은 줏대라는 단어에 의해 재단되어야 하는가. 사람에게 강조되는 덕목 중 하나가 일관성이긴 하지만 일관성 있는 사람은 드물다. 드물기에 그것이 하나의 덕목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양면 색종이처럼, 야누스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다양성과 공존이란 말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무언가를 인정하는 것 역시 주삿바늘에 찔리는 것만큼 아픈 일일지도 모른다.


3.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위협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뭉툭한 모서리를 발로 툭 치면 내 얇은 신경선은 즉각 반응한다. 푸르스름한 멍이 내 엄지발가락을 잠식할 때까지 신발 모서리는 나를 푹푹 찌른다. 이때부터 신발은 나의 신변을 위협한다. 나를 옭아매는 덫이 되는 것이다. 난 지금 초록색 지하철 바닥을 응시하고 있다. 얼룩진 거무스름한 발자국 외에도 수천만의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있을 이 곳.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첫 차가 끊기기 전 청소부 아주머니의 머리 빠진 걸레에 의해 잠시나마 지워지겠지. 빤닥빤닥해지겠지. 난 내 샌들을 꾸욱 누르고 있다. 내 채취만은 남기고 싶어서. 친구가 눈알에서 벗겨버린 너덜거리는 소프트 렌즈가 되기 싫어서. 십 분의 일만큼이라도 단단한 하드렌즈가 되고 싶어서. 발을 샌들의 굴레에서 벗긴다. 발이 숨 쉰다. 내가 숨 쉰다. 휴하고.


4.

시곗바늘이 11시 44분을 가리키고 있을 때 고개 돌리는 당신 4를 혐오하는 엘리베이터 같은 당신 미신타파를 주장하며 신문 운세를 기웃거리는 당신 당신 모순덩어리


지구를 들 수 있다면 들 텐데 지게가 있으니까 시소가 있으니까 지구를 받을 수 있다면 받을 텐데 쓰레받기가 있으니까 납작 접시가 있으니까 두 팔이 있으니까 들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당신 당신 모순덩어리


5.

아침에 달짝지근한 인절미 한 봉지를 먹었다. 불그스름한 사과를 과도로 깎았다. 한 입 두 입 베어 먹고 뼈다귀만 남았다. 씁쓰름한 갈색국물을 마셨다. 아 탄성을 자아낸다. 기분 좋은 음악을 듣다가 시계를 보니 나가야 할 시간. 버스를 코앞에서 놓쳤다. 갑자기 무료해진다. 당장이고 영화관에 뛰어들어가 조조영화를 보고 싶다. 기차를 타고 북쪽 끝으로 내달리고 싶다. 초콜릿 다섯 봉지를 사서 순식간에 비우고 싶다. 내레이션 언니의 음성이 들린다. 이제 병원이다. 왜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많은 거야. 맞은편에 버거킹이 보인다. 사보텐 파리바게뜨 갓 구워낸 크루아상을 파는 빵집,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 오는 여자, 갓 달인 블랙커피를 손에 쥐고 가는 여자, 오늘은 왠지 거리가 한산하다. 따뜻한 율무차가 먹고 싶다. 동전이 없다. 결국 편의점에 들렀다. 안녕하세요 지에스 이십오시입니다. 로봇처럼 자동적인 그녀. 그녀와 의사소통하고 싶었다. 내 앞에 사람은 내가 얼마 전에 먹었던 햄치즈 샌드위치와 칸타타를 샀다. 반갑다. 난 뽀로로 스티커가 있는 초코 롤을 사려다 고구마 치즈케이크를 집어 든다. 아맛있다. 무료함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난 참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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