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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오스트리아에 가면 안 되는 이유?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1시 영업 올 스탑

by 아보카도


Feliz Navidad! Merry Christmas!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있어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들이 많았다. 내가 크리스천이어서가 아니라 한 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다른 한 번은 크리스마스에 연애를 시작했었다. 멕시코에 있을 때는 친구네 가족이랑 사랑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고 사랑의 기운이 뿜 뿜 솟아날 것만 같았다. 재작년 크리스마스에는 뭐 했나 하고 달력을 넘겨보았는데 가족과 함께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우루무치에서 눈과 함께 했다. 원래의 일정대로였다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안녕 한국, 따스한 크리스마스이브였어." 하며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인천공항을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 다녔을 텐데 연착 때문에 영하 18도에 육박하는 우루무치에서 눈과 함께 했다.


"강제 화이트 크리스마스네. 메리 크리스마스야."


전우치도 아니고 우루무치, 내 너 이름 영원히 기억하리


나는 안달이 나 죽겠는데 눈으로 뒤덮인 사진을 보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독일 여행을 꽤 길게 했어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이번 여행에서 오스트리아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세 군데 둘러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비엔나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판도로프 아웃렛의 영업이 칼같이 1시에 끝나는 것을 보면서 크리스마스이브나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보내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는 이들에게 절대 여행 일정에 크리스마스를 넣지 말 것을 강권한다. 우리나라에서 설날과 추석이 큰 의미를 지니듯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어마 무시하게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은 부지기수며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오스트리아의 경우, 1시에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단, 아시아 식료품 가게와 아시아 음식점들은 한결같이 영업을 하더라. 그때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유럽은 확실히 선진국이야."

"한국이 이럴 땐 참 좋아."


12월 24일 비엔나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했던 나는 마지막 날 판도르프 아웃렛 일정을 9시 버스, 1시 버스로 끊어놨다. 그 전날 잘츠부르크에서 돌아와서 피곤했던 탓인지 8시에 눈을 떴던 나는 부랴부랴 머리를 감고 오페라 하우스 앞으로 뛰어갔다. 10시 전후로 도착해서는 두 시간 쇼핑하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소통해 가며 사다 보니 시간이 벌써 12시 반이더라고? 그때 생각했지. 나는 1시 티켓을 끊었지만 9시에 버스 탑승할 때도 내 티켓을 면밀히 확인 안 했으니 2시 셔틀버스 타야겠다고. 그러고는 유유히 걸어 다니다가 사람이 많이 없어 보이길래 Tax Refund 가 가능한 고객서비스센터에 갔더니 택스 리펀 받으려면 공항 가서 받으라고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생각했지. 아, 점심시간이어서 얘네도 쉬나 보군. 그러고 걸어 다니는데 상점마다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고 심지어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간 거지? 생각이 들더라고. 걷다 보니 카페 자허가 보이길래 커피 한잔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가려는데 쏘리, 매 댐. 하면서 크리스마스이브라서 1시에 끝나고 자기네는 간다는 거야. 그때까지 생각했지. 쿨한 사람들이군. 그러고 나서 노르드 씨를 들어가려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더라고. 분명히 안에 사람이 있는데 문을 굳건히 닫아놨더라고. 여기도 1시까지 영업 종료래. 세상에 사람이 나올 때 틈타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버거킹 앞에 갔어. 그런데 젠틀한 종업원이 나의 꼼수를 알아차리고 말하더라고. 자기 보스가 1시 이후로는 철저하게 손님을 받지 말라고 했대.


와, 멋있는데?


나는 짜증이 나지 않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나라라면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철저하게 시간을 지키는 보스라면 버거킹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할지가 예상이 가더라고. 퇴근시간에 딱 맞춰서 집에 간다고 칼퇴 요정이니 뭐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필요가 없지 않겠어? 사장님을 만나서 나 좀 써 달라고 말하고 싶었어. 사실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을 마시고 싶어서 물만 사면 된다고 말을 했는데 그마저도 칼같이 거절하는 것을 보면서 '구인 광고'가 붙어있는지를 두리번거리게 되더라고. 그러고 나서 가판대에 먹음직스러운 빵을 가득 진열해 놓은 언니가 있길래 커피 하나만 부탁한다고 했더니 커피머신을 정리 중이라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스마일을 짓더니 빵은 먹을 수 있대. 그래서 자허 토르테같이 생긴 빵 하나를 달라고 하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냥 주겠대. 그러더니 또 뭐가 먹고 싶냐더니 거기 있는 빵을 하나씩 싸 주면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더라고. 오잉. 이런 천사가?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단꿈에 빠져 있었지. 너무 행복했어. 빵순이인 내게 이런 행운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면서 기도까지 할 뻔했어. 빵 먹으면서 2시 셔틀버스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류장에 갔더니 외국인들이 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게 아니겠어. 1시 셔틀이 마지막이었대! 분명 내가 예약할 때는 선택지에 2시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 2시를 선택했다면 선택 불가라고 떠서 시나리오를 짜고 갔을 텐데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더라고. 이럴 땐 한국인이 너무 간절했는데 한국인은 역시나 없었어. 그래서 두리번거렸더니 중국인 가족이 있어서 너네 나랑 같은 입장이면 우리 우버 불러서 같이 가자! 이랬더니 우버 기사들도 일을 올 스탑 했다는 거야!! 세상에! 오 마이 갓! 그때 멘붕이 왔어. 비행기가 6시에서 9시로 연착이 되었으니 망정이니 아니었다면 나는 울고 말았을 거야. 그래도 울고 싶은 심정이었어. 어떻게 돌아가지?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야 하나? 아웃렛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수많은 차들을 보면서 차 안의 운전사 인상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어. 관상은 과학이거든. 왠지 인상이 착한 비엔나로 가는 외국인이라면 나 하나 정도는 태워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두리번거렸는데 차마 다가가질 못하겠더라고.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가판대 천사 언니를 떠올렸어! 그 언니 집이 어딜까? 하면서 돌아갔는데 이미 셔터 내린 후더라고. 그러다가 돌아다니고 있는 내 또래 무리에게 말을 걸었지. 슬로바키아 사람이더라고. 자기네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걱정이 얼굴에서 보이질 않더라. 긍정왕들이군? 하면서 다시 걷다가 대가족을 만났어. 아빠, 엄마, 아이 세 명의 대가족! 엄마가 헤일리 베넷을 닮았더라고? 진짜 예뻐서 나중에 너네 엄마 배우인 줄 알았다고 꼬마에게 말해줬더니 엄마랑 자매 사이라는 소리도 듣는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하하 호호하며 나오는 가족에게 하소연을 시작했지.


"나 오늘 비행기가 뜨는데 돌아갈 방법이 없어. 혹시 비엔나로 가는 거야? 우버도 영업이 끝났고 셔틀도 이제 없다는데 나 어떡하지?"


그런데 비엔나 시내로 간다는 거야! 그러면서 옵쿼스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태워주겠대. 루마니아에서 한 달 휴가로 여행을 왔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 한 달 여행을 이렇게 느긋하게 다닐 수 있다니 헬조선에서 태어나지 않은 너희들이 축복받은 거야.라고 한국을 디스 하지는 않았지만 꼬마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지. 그러니 쏘쿨하게 이러더라고.


"크리스마스잖아. 너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고 크리스마스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주려고 이것저것 건넸는데 헤일리 베넷 와이프를 둔 엄. 근. 진. 해 보이는 아빠가 이러지 말라고 한사코 거절하면서 내 선물을 받으려는 아이에게 엄. 근. 진. 하게 화를 냈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렇게 무서운 아빠도 어쨌든 내게는 참 상냥했어. 차 안에 내가 타고 있어서 전자담배는 피울까 말까 고민하는 눈치를 보긴 했지만 화나면 상당히 무서울 것 같았어. 아버지가 과묵하셨는데 그래도 내게 루마니아가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고 애국심에 자국 홍보할 때는 귀가 솔깃했어.


"너희들 덕분에 내 다음 여행지는 루마니아가 될 것 같아. 너무 고마워."


진심 반, 농담 반이었지만 루마니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검색해 보고 이 나라를 언젠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비행기 표를 끊을 때는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보내는 절호의 찬스를 갖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는데 1시에 칼같이 모든 영업이 끝나고 마트마저도 셔터가 내린 것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여행 중에 만난 미국인 남매 애들이 크리스마스이브랑 크리스마스에 뭘 할지 모르겠다고 식당 문 다 닫을 것 같단 말이 뇌리를 스쳤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환상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야. 안 그러면 나처럼 대 멘붕에 빠지게 될 것이니까.

요한 스트라우스 만세! 꼭 가서 시저샐러드, 굴라쉬 꼭 먹고 화이트 와인은 꼭 마시되 커피는 노노노노노!


덧, 연착이 되는 바람에 시간을 여유롭게 갖고 공항에 갔는데 연착이 미안하다며 요한 슈트라우스 식당에서 30유로 정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7시 30분 무렵에 그 식당에 갔는데 줄이 장난 아니어서 포기할까 하다가 할 일도 없는데 뭐라도 먹자 생각했지. 8시가 되어서야 착석할 수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화이트 와인을 네 잔이나 시키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따라 시켜봤는데 달짝지근해서 너무 행복했어. 여기서 먹은 굴라쉬랑 시저 샐러드는 오스트리아에서 먹은 음식 중에 제일 맛있기도 했어. 로컬 식당에서 먹은 굴라쉬나 슈니첼이 그렇게 맛있진 않았거든. 이 생각은 비단 나뿐 아니라 한국인들도 동의하더라고. 처음에 30유로 바우처를 준단 말을 들었을 땐 에이뭐 공항 안에 식당이 다 거기서 거기지 했는데 설마 줄이 길었던 것은 맛집이어서였을까? 요한 슈트라우스 강추입니다. 아, 물론 인종차별 있습니다. 그런데 웃어넘기세요. 음식이 일품이거든요.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2020년의 사랑이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예견하며,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마켓 글루바인은 비엔나보다 잘츠부르크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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