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사람의 공통점이 뭘까.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를 테지만 위대한 예술가 네 분의 고향은 통영이다. 충무에서 태어나 충무김밥을 먹고 집 앞 시장에서 엄마랑 장을 보면서 정육점보다는 생선 앞을 기웃거리던 나의 고향 역시 통영이다. 지금이야 통영이 유명하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피랑, 서피랑은 없었고 사람이 즐비한 달아 공원은 가끔 아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는 곳이었고 남망산 공원과 충렬사에서는 백일장과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렸다. 어릴 때, 소풍을 유치환 선생님의 '깃발'과 김춘수 선생님의 '꽃' 이 새겨진 곳으로 갔던 기억 덕분인지 언어영역 지문에서 두 시를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익숙한 시를 분석적으로 해석하며 답을 내야만 하는 차가운 시험지 안에서 온기가 느껴졌달까. 유명한 예술가들 덕분인지 통영은 지금 너무나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린다던데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늑해서 살기 좋은 소도시라는 생각은 든다.
카페 모차르트는 유명한 카페 중 하나, 모차르트가 새겨진 초콜릿이 지역 명물
개인적으로 여행할 때,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를 선호하는 여행을 해 왔다. 대도시는 살기에는 좋지만 여행을 하면서 쉬었다 가기에는 소도시가 낫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여행 계획을 짤 때 소도시의 후보에 올랐던 곳이 세 군데가 있었다.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첼 암 제.
사흘 정도를 비엔나에서 보내고 나면 슬쩍 다른 도시가 궁금해질 것만 같아서 사흘 숙박 이후에 다음 날 아침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잘츠부르크는 비엔나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되는데 할슈타트는 잘츠부르크까지 간 다음, 또다시 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타는 등 복잡했으며 첼 암 제의 경우 잘츠부르크에서 다시 기차를 타기만 되었다. 복잡한 게 싫었던 나는 일단 잘츠부르크를 가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할슈타트에서 최근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인지 할슈타트를 너무 가고 싶었는데도 할슈타트와 비슷하다는 첼 암 제에 더 눈길이 갔다. 첼 암 제와 할슈타트 둘 중 하나를 당일치기로 갔다 올지 말지는 고민했지만 잘츠부르크행을 확정 지었던 이유는 '모차르트'의 고향이 잘츠부르크였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생가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만 맥도날드 간판도 나름 유명하다.
사실 클래식을 잘 아는 것도 아니며 클래식을 인디음악만큼이나 즐겨 듣는 사람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인 '모차르트'가 태어난 고향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실제로 잘츠부르크에 가면 모차르트 생가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다들 찍길래 나도 찍었는데 사실 찍고 나서 왜 찍었을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모차르트의 생가에 들어가 보면 모차르트의 유년시절부터 아버지와의 관계 등 다양한 스토리가 진열되어 있다. QR코드로 가이드도 한국어로 볼 수 있는데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설명은 대충 봤다. 인간미가 없었다. 적어도 헤밍웨이 생가를 갔을 때는 '노인과 바다' 같은 명작이 이렇게 대단한 곳에서 탄생했겠구나 하면서 '리스펙 리스펙' 거렸지만 모차르트 집에 갔을 때는 이 곳은 개발된 박물관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으로 잘 조성해놨지만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기운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대충 볼 수 있었던 것은 모차르트 생가가 잘츠부르크 카드에서 무료로 갈 수 있는 곳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마카르트 다리에서는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런데 솔직히 자물쇠가많은 다리가 예뻐보이지 않았다.
"잘츠부르크 카드는 24시간이든 48시간이든 꼭 할 것."
백이면 백 이런 후기가 있어서 한국에서 미리 구매하고 갔다. 잘츠부르크 카드는 잘츠부르크 역에 도착해서 인포메이션 센터를 가면 바우처를 확인하고 카드로 교환해준다. 예쁘게 생긴 카든데 뒤에 개시 시간과 이름을 적어야만 한다. 원래 아침 7시 40분 기차를 타려고 했지만 늦게 일어나서 8시 40분 기차를 타서 11시가 넘어서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던 나는 이 카드를 언제 개시할지 고민했다. 오후 1시에 개시하면 다음 날 오후 1시까지 정직하게 24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카드여서 카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미라벨 정원은 카드의 시간이 끝나고 나서 찾아가도 된다. 대중교통은 전부 다 무료는 아니고 해당되지 않는 노선도 있으니 잘 체크해야 한다. 다음 날 아침 트램에서 잘츠부르크 카드 검사 확인을 당했거든. 비엔나에서는 24시간 교통권을 썼지만 검사를 당했던 적이 없는데 잘츠부르크의 경우, 불시에 검문을 당하기 쉽다. 후기를 보고 갔던 터라 아무렇지 않게 카드를 건넸고 시간을 체크하더니 다시 돌려주더라고. 그런데 일반 시민이 오히려 돈을 안 내고 타서 검사관이랑 실랑이를 하더라고. 할머니셨거든. 투닥거리다가 검사관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는 것 같았다. 검사관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지 않다. 검사복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처럼 옷을 입은 채로 여러 명이 함께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해서는 일단 비가 오길래 숙소로 향했고 짐을 풀고는 일정을 짰다.
첼 암 제로 바로 갔다 올까? 운터 스베 르크에 갔다 올까?
두 가지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하필 게스트하우스 데스크에서 일하시는 분이 한국분이었고 "한국분이세요?" 하며 단번에 한국인임을 알아보셨다. 그러더니 지금 날씨가 안 좋아서 첼 암 제나 할슈타트를 가도 좋은 풍광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차라리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라고 추천했다. 비엔나 크리스마스 마켓도 아직 가지 않았던 터였던 내게 크리스마스 마켓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쉬움이 컸다. 카페에 앉아서 첼 암 제 호수를 보고 싶었거든. 첼 암 제 여행기를 너무 재미있게 소개한 브이로그를 보면서 첼 암 제에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롱 패딩 없이는 오들오들 떨 것만 같은 날씨 때문에 첼 암 제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추워 죽는 줄 알았던 운터스베르크. 날씨 좋을 때 가세요 꼭이요
할 수 없지, 그럼 운터 스베 르크를 가 볼까?
우유니 사막에서도 그렇고, 타이베이 여행을 할 때도 그렇고 여행 중에 날씨 운이 안 좋을 때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한 시간 정도를 고민한 후, 25번 버스를 타고 운터 스베 르크를 가기로 했다. 운터 스베 르크에 가서 케이블카만 타도 잘츠부르크 카드를 제대로 사용한 것이라는 후기에 끌렸다. 그리고 내내 날씨가 흐린 상황이라면 비가 잠깐이라도 그친 지금, 운터 스베 르크를 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25번 버스를 타고 운터 스베 르크에 갔고 그곳에서 설산과 마주했다. 정말 무계획으로 잘츠부르크에 롱 패딩을 장착하고 갔던 나는 롱 패딩 안에 코트, 코트 안에 롱치마를 입었고 발목까지 오는 부츠를 신은 채 설산 앞에 섰다. 십자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에는 내 의상이 받쳐주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고지에 올랐을 때는 눈이 꽤 내리고 있었고 안전망도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부츠가 미끄러지면 아찔한 상황까지 마주해야 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트래킹을 좋아하는 나는 저 십자가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한 나머지 부츠를 벗고 걸어가 볼까 하는 미친 생각을 0.1초 정도 하다가 아니야. 추운데 저까지만 가자 하고 부츠가 용인할 수 있는 지역까지 걸어갔다. 스키나 썰매를 타도 될 정도로 경사가 진 곳도 있었다. 날씨만 좋으면 뷰가 최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에 계획의 중요성을 처음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터 스베 르크가 좋았던 것은 케이블카를 타면서 느꼈던 아찔함 때문이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보고타에서도 케이블카를 타면서 겁이 나지 않았던 나는 1,776M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를 10분 정도 타면서 조금은 무섭다고 생각했다. 다 왔나 싶었는데 슈웅 하더니 쭈욱 올라가더라고. 끊기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깐 하면서 덜덜거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운터 스베 르크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계라고 하니 날씨가 좋을 때는 알프스의 풍광, 독일의 모습 모두를 두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 만나서 신났다 신났어! 케이블카 기다리면서 파키스탄 꼬마가 예뻐서 졸졸 따라다녔다.
수박 겉핥기로 눈더미에서 뒹굴다가 내려와서는 앞서 언급한 모차르트 생가에 갔다. 그 날 얼마나 추웠던지 지나가던 행인이 롱 패딩 어디서 샀냐고 여기서 샀냐고 묻더라. 한국 롱 패딩 만세. 걷다가 유명하다는 카페를 눈도장 찍어 두고 나서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던 마 카르트 다리를 걸어보았다. 마 카르트 다리에는 우리나라 남산타워처럼 다리 난간에 자물쇠가 곳곳에 걸려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때문인지 퐁네프 다리에서는 '와아' 하며 탄성을 내질렀는데 마 카르트 다리와 나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없어서 감흥이 없었다. 걷고 또 걸었다. 이 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하고 무작정 걷다 보니 대성당 근처의 크리스마스 마켓에 도착했다. 월요일에는 묀히스베르크 전망대를 올라갈 수 없다길래 부랴부랴 그곳으로 향했고 구글맵의 잘못된 안내로 헉헉대다가 야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묀히 스베 르크에서 보는 잘츠의 풍경이 잘츠부르크 성에서 보는 것보다 낫다길래 기대했는데 엄청난 감흥을 받지 못했다. 다음 날, 잘츠부르크 성에 가서는 엄청난 감흥을 받았다. 잘츠부르크 성 역시 잘츠부르크 카드만 있으면 푸니쿨라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따라 하기 좋아하는 나는 앞서 가는 독일인 부부를 졸졸 따라가면서 등산에 버금가는 가파른 오르막을 헉헉 대며 올라갔다. 그렇게 힘겹게 올라갔던 나는 내려갈 때는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갔다.
묀히스베르크 야경보다는 잘츠부르크 야경이 더 좋을 것 같다.
묀히스베르크 전망대보다는 잘츠부르크 성에 갈 것
전망대와 성 모두 잘츠부르크 카드만 있으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니 둘 다 가 볼 여력이 되지 않는다면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갈 것을 권한다. 내부에 박물관도 있는데 가파른 곳에 있다 보니 중요한 요새로 쓰였던 탓에 박물관 내부는 용산의 전쟁기념관 느낌이 난다. 관심사가 아니어서 나는 걸으면서 대충 봤고 오히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잘츠부르크가 정말 예뻐서 감탄했다. 다소 흐리긴 했지만 비도 오지 않아서 마을이 아기자기해서 예뻐 보였다. 이게 소도시의 매력이지! 하면서 잘츠 강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쁘지 아니한가. 어쩜 이렇게 이쁘담.
잘츠부르크 카드를 사서 이용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짧게 잘츠를 보려고 한다면, 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서 잘츠부르크 시내를 보고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사실 모차르트 생가도 쏘쏘고 추천받은 레지던스 미술관도 생각보다 엄청난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다 패스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헬부른 궁전의 경우, 겨울에는 열지 않기 때문에 잘츠부르크 카드의 혜택이 여름에 비해서는 적다. 다만, 잘츠부르크 카드가 있으면 헬부른 궁전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가서 호수를 거닐다 보면 동물원 앞에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카드의 혜택 중 하나가 동물원도 갈 수 있는 것이니 동물원에 갈 시간이 있는 사람은 여력이 된다면 가도 될 것이다. 헬부른 궁전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비엔나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잘츠부르크 중심가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보다 더 좋았다. 꼭 사 먹어보라고 들었던 달달한 카스터드 빵과 글루바인, 샌드위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헬부른 궁전 호수에는 뉴에이지가 나온다. 크리스마스 마켓 최고. 수도원 맥주보다는 글루바인 드세요.
덧, 잘츠부르크 수도원 맥주는 생각보다 별로다. 글루바인 세 잔 정도를 마시고 가서 그런지 맥주가 맛있지 않았다. 떫었달까. 사람들이 많아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다른 곳에 가는 게 나을 것이다. 비수기라 그런지 한국인도 거의 없고 외국인들이 다수라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워서 생각보다 그 공간에 오래 있지 않았다. 음식들이 푸드코트식으로 되어 있어서 원하는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면 되는데 음식들이 터무니없이 짰다. 잘츠부르크 수도원 맥주가 맛있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차라리 크리스마스 마켓을 거닐면서 글루바인을 마시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눈도 즐겁고 분위기도 즐거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