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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비엔나 공연! 여기 어때?

무지크페라인과 재즈 랜드, 그리고 뮤지컬

by 아보카도


"왈츠 한 곡 들려줄게. 그냥 떠오른 얘기야."


출국 전에 귀에 닳도록 들었던 음악은 Julie Delpy가 부른 A Waltz For A Night 다. 에단호크를 만난 줄리 델피가 되어서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 "몇 개월 후에 우리 여기서 다시 보자" 는 개뿔! 돈데에스따스 에단호크!?!?! 왈츠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비포 시리즈 두 번째 비포선셋에서 제시와 셀린이 9년 만에 만나고 나서, 셀린네 집에 가서 셀린이 제시를 바라보며 부르는 노래다. 제시는 결혼을 한 상태고, 셀린에게는 남자 친구가 있는데 두 사람은 결국 비포 미드나잇에서 부부가 되어 아웅다웅하게 된다. 가수의 미성만큼이나 담담한 어조를 좋아하는 나는 이 노래를 몹시 좋아한다. 오지은과 이자람, 이랑, 김목인 느낌이 줄리 델피 한테서 났달까. "Let Me Sing You A Waltz"로 운을 떼며 9년 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부르는 줄리 델피의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언제쯤 에단 호크를 만나는 줄리 델피가 될까?


빈 하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혹은 빈 소년 합창단을 떠올리지만 오케스트라나 합창단 못지않게 유명한 것은 왈츠다. 왈츠는 독일어로 '파도치듯 떠오르고 내려간다'는 뜻으로 비엔나 쿠어 살롱에 가면 요한 슈트라우스, 모차르트, 왈츠 등의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쿠어 살롱은 슈니첼 맛집을 찾아가다가 발견했는데 내가 클래식 덕후였다면, 여기서도 공연을 봤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는 클래식 덕후가 아니어서 패스.


출국 전에는 줄리 델피 목소리와 함께 했다면 입국 후에는 Judy Garland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 빠져 있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테마곡이기도 하며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서 유일하게 알아들었던 음악이었다. 다채로운 볼거리가 있는 비엔나에서 나는 두 편의 공연을 봤다. 첫째 날에 무지크페라인에서 본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과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두 편이었다. 두 공연 다 한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 놓고 갔는데 전자의 경우, 무지크페라인 홈페이지에 직접 가입해서 예약했으며 뮤지컬의 경우, www. culturall.com에 들어가서 선결제했다. 원래 쇤부른 궁전에서 한다는 연주를 보려고 했으나 오스트리아에서 교환학생 했다고 한 분이 꼭 무지크 페라인에서 공연을 보라고 하셔서 무지크페라인을 택했다.


무지크페라인 2층 맨 앞 열에서 공연을 봤는데 맞은 편 사람을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각양각색의 악기들이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서 흐트러짐 없이 화음을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첼로 연주자가 협연을 하는데 장난치듯 기교를 부리는데 천재적인 첼리스트처럼 보였다. 눈썹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지휘자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었고 심벌즈 연주자와 하프 연주자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나 첼리스트 못지않게 그들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강력한 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밍과 강약 조절을 해 가며 연주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까. 오스트리아에 도착한 지 4시간도 채 되지 않아 본 공연이라 그런지 정신없이 멍하게 연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 번째 날 봤던 공연은 오즈의 마법사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헨젤과 그레텔, 오즈의 마법사 두 공연을 많이 한다고 했다. 오즈의 마법사 공연이 너무 좋아서 잘츠부르크에서 비엔나로 빨리 돌아가서 헨젤과 그레텔을 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빠듯하게 어디론가 가는 게 싫었던 나는 헨젤과 그레텔은 패스했다. 분명히 영어자막이 어딘가에 나온다고 들었는데 영어자막은 무슨 내내 독일어로 쏼라쏼라 했다. 기대에 부풀어서 두근두근거렸던 내 심장은 공연이 시작되고 10분 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섣부른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는 진리를 되새겼다. 기대를 안 해서 더 좋았던 뮤지컬


못 알아듣는 이 공연을 계속 봐야 할까? Jazz Land 공연장에 미리 가서 차라리 맥주나 마실까?


오락가락하는 이 마음이 진정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뮤지컬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이 노래 때문이었다. 예쁜 배우가 청아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부르는데 묵은 근심이 다 쓸려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즈의 마법사 내용도 제대로 검색을 해 보고 가지 않았다. 어릴 때 읽었던 기억뿐인데 그 기억도 제목을 기억하고 있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인터미션 시간에 오즈의 마법사 내용을 검색하느라 바빴다. 독일어라고는 구. 텐. 탁. 당케 쉰. 정도에 불과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이 비엔나에서 본 공연 중에 제일 좋았다. 나는 뮤지컬보다는 연극을 좋아해서 뮤지컬에 대해 깊이있게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 봤던 뮤지컬 공연들과 비교해 봐도 무대 자체가 엄청 크지 않아도 무대를 다각도로 센스 있게 활용한다고 생각했다. 무대의 회전판과 무대장치들이 기가 막혔다. 특히 오즈의 마법사에서 절정 부분을 차지하는 오즈의 마법사가 사기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지점의 연출에서 박수 칠 뻔했다. 요새는 인터렉션이 유행이라서 공연에서 영상을 활용하는 것이 부지기수지만 초록색 조명과 음향, 배우의 표정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서 실감 났다. 그 어떤 공연보다도 영상을 세련되게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감독이나 무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비엔나에 와서 며칠간 공연들만 보고 가도 큰 수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가끔 뮤지컬을 보다가 보면 음정이 불안해서 걱정이 될 때가 있는데 일단 배우들이 노래를 탁월하게 잘했으며 강아지 연기를 마리오네트 연기하듯 강아지 인형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배우를 보면서 존경스러웠다. 솔직히 처음에 월월 할 때는 피식 웃음이 났는데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공연을 보면서 몰입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진짜 강아지인 줄 착각할 뻔했다. 뮤지컬 잘알못인 나는 커튼콜 때, 열렬하게 박수를 치느라 Jazz Land 공연장에 늦고 말았다.

영화 <High Fidelity>의 잭블랙을 연상케 했던 연주자들, 라이언고슬링 닮은 사람도 발견했다.


비엔나의 라라 랜드? 스탠딩은 노노 노노노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클럽이라고 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대학로 도어즈가 떠올랐다. 공연이 9시부터 시작이라고 들었는데 9시 반 무렵 도착했던 나는 앉을 수가 없었다. 로컬들이 많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진짜 로컬들뿐이더라. 사장님이 공연을 보려면 18유로를 내라고 하시길래 '곧 앉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품고 난간에 기대어 공연을 봤다. 뮤지컬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탓인지 기대를 많이 했던 재즈 랜드 공연은 생각보다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웃긴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오스트리아 여행 중에 두 번의 정전을 겪었는데 한 번은 이 공연장, 한 번은 파스타집에서였다. 그런데 내가 딱 입구 정면에 서 있었던 탓에 불이 꺼지니까 사람들이 다 뒤를 돌아봤고 불이 다시 들어왔을 때, 나는 내가 불을 끈 줄 알고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손사래를 쳤지. 제가 그런 거 아니에요!! 노노노노옵!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세상에 스위치도 없었는데 나는 내가 잘못 누른 줄 알고 얼마나 식겁했던지. 라이언 고슬링 닮은 사람이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것을 보고 뿌듯했다. 누군가를 웃겼구나. 정전으로 인해 공연이 중단된 와중에도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사장님은 음반 홍보를 했다. 공연을 대략 40분 정도 봤는데 자리가 빠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다리가 아팠던 나는 헐레벌떡 공연장을 나왔다. 재즈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몸을 흔들거나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단골손님들은 끊임없이 들어왔고 서로 다정하게 인사를 하는 게 정말 정겨워 보이더라. 재즈를 잘 알지 못해도 재즈 특유의 끈적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찾아가길! 혹시 모르지 않나. 라라 랜드의 주인공이 될는지도?


덧1, 잘츠부르크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라벨 콘서트도 볼 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급하게 일정을 짰던 나는 당일 콘서트를 검색해봤지만 올 매진이었다. 잘츠부르크에 이틀 정도 머문다면 모차르트 기운을 느끼면서 공연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덧2, 입국 후, Kath Bloom의 Come Here 과 Lou Christie의 Trapeze 를 들으면서 다음 여행에서 에단 호크를 만나길 간절히 바랐다. Kath Bloom의 Come Here는 Alt&New 레코드샵 가서 직접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으니 꼭 들으시길! 사장님이 천사시니 정말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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