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겐 너무나 난해한 당신, 영화 <미드 소마>

역겹고 토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강! 추!

by 아보카도


2019년, 영화관에 상영 중일 때 제일 보고 싶었던 영화는 '미드 소마'와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이었다. '미드 소마'의 경우, 감독의 전작인 '유전'이 워낙 핫해서였고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의 경우 존경해 마지않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영화는 보았지만 아직 두 번째 영화는 보지 못했다. '미드 소마'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왓 차 플레이로 영화를 재생한 것은 버스 안에서였는데 처음부터 오묘한 분위기와 독가스 자살 부분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설마 꿈인가 했다. 그런데 꿈이 아니었고 이후 영화가 전개되면서도 여러 번 이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은근 니 취향은 대중적이야."


한때 내 고민은 너무나도 독특한 것을 좋아하고 마이너 한 내가 대중적인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너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으니 다른 루트를 고민해 보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독특함에서 결국 차별화되는 콘텐츠가 나오는 것이라고 걱정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의 말 모두 일리가 있었고 나의 욕심은 두 가지를 모두 다 가질 순 없나 하는 것이었다. 그 욕심과 마이너, 메이저 모두를 보려고 노력했던 탓인지 편협했던 내 취향이 점점 변해서 중간으로 중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원래부터 중간이었는데 독특한 것만을 찾아 헤맸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하이퍼텍 나다나 시네큐브, 인디스페이스, 서울 아트시네마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서였을까. 어찌 보면 환경 탓도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창작욕에는 다양한 욕구들이 있지만 그중 인정 욕구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다수의 인정을 바라기보다는 자신 있게 자신만의 색깔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굳은 심지 하나로 무소의 뿔처럼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 얼마나 멋진가. 그런데 미드 소마는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극찬했지만 솔직히 진짜 1도 멋진지 모르겠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어스'나 '갯 아웃'을 보고는 감탄했다. 소재와 전개 방식 자체가 신박했는데 미드 소마의 경우 믿음과 광기에 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는 '사바하'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사바하'가 줬던 무서움은 '혹시 꿈에 그 장면이 나타나서 나를 오들오들 떨게 하면 어떡하지?' 하는 류의 무서움이라면 미드 소마가 내게 준 역겨움과 공포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송곳니'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과 유사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도 알겠고 발상도 잔인할 정도로 놀라운데 찝찝해서 토할 뻔했다.' 고 송곳니를 평하며 박한 점수를 줬던 나는 감독의 후속작 '랍스터'를 보면서는 극찬했고 '킬링 디어'를 보고는 또 난해함에 허우적대다가 '더 페이버릿'을 보고 다시 극찬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진 않지만 그의 영화에는 그만의 색이 늘 보이고 발상 자체가 너무나도 놀랍고 신선하다. 적어도 송곳니를 보면서는 '가부장제'에 대한 감독의 시선 혹은 플라톤의 동굴 이야기 등이 떠올랐다면 '미드 소마'를 보면서는 비평에서 보았던 '남근주의'에 대한 일침이라든가 '연대의 필요성' 등의 메타포를 읽어낼 수 있기는 하나 나열에 불과했다. 메타포가 딱 맞아떨어져서 무릎을 탁 치게 되려면 딱딱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래 사귄 남녀가 서로에 대한 감정의 정도가 다른 상황에서 남자가 외도를 하고 그게 화가 나고 미운 감정이 광기 어린 축제에서 복수로 발현되며 결국 남자는 불에 타 죽고 여자는 살게 되는 이야기인데 복수가 그다지 통쾌하지 않고 찝찝하다. 광기어린 믿음 자체에 설득력과 당위성이 필요 없기 때문일까.


심미안이 없어서, 혹은 내 이해력이 딸려서일 수 있겠지만 절벽에서 자살하는 장면이라든가 망치로 얼굴을 두드리는 장면이라든가 음식물에서 기이한 무언가가 나온다든가 하는 장면에서는 여러 번 STOP을 눌렀고 내가 극장에 있었더라면 뛰쳐나가고 말았을 것만 같다. 내가 이영화를 높게 사는 점은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다크 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데 이 영화는 백야를 배경으로 하면서 광기와 울부짖음 등에서 비롯되는 공포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낸다는 것이다. 미드 소마는 실제로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여름날, 밤새도록 먹고 즐기는 스웨덴의 가장 큰 축젠데 영화는 그 축제를 조금 더 과장해서 그려내고 있다. 1년을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누듯이 호르가 마을에서는 18세까지 봄, 36세까지 여름, 54세까지 가을, 72세까지 겨울로 여기는데 그 이후에는 자살행위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의 맹점은 미국인 친구들을 제물로 삼아서 축제로 데려간 인물 역시 어머니, 아버지를 이 행위로 잃게 되어서 결국 자신이 자발적으로 제물이 되기를 택하는 부분인데 그 결정 자체가 설득력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이 생기거나 이상한 의식행위를 고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나. 믿음과 광기에 대해 풀어내기에는 이 캐릭터가 적격이었으나 이 캐릭터에게서는 시종일관 광기가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설득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등장인물들과 인물관계도가 매력적이지 않아서였다. 감정이 없으면서도 연민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남자 주인공의 우유부단한 면도 매력이 없었고 그 친구들과 여자 주인공의 관계 역시도 가식적이고 피상적이어서 너무 건조했다. 그렇게 팍팍한 이들이 미드 소마 축제에 가서 제물이 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광기 어린 울부짖음은 인상적이다. 소름이 돋고 무섭기까지 하다. 무언가를 광적으로 믿어본 적이 없어서인지 더 이해가 안 갔던 걸까.



임산부 혹은 심신 미약인 사람은 절대 보지 말 것


이런 평을 보고는 고민했다. 봐도 괜찮을까. 공포영화 혹은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한 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링' 도 눈을 감았다 떴다 귀를 막았다 열었다 난리부르스를 쳐가며 안 봤던 나로서는 호불호가 강하다는 이 영화의 진입장벽을 뚫기가 어려웠다. 역겨움의 감정이 들 때마다 끊어서 보느라고 사흘에 걸쳐서 봤고 다 보고 나서도 너무 찝찝했다. 전작인 '유전' 이 떡밥을 훅 던져놓고 떡밥을 회수해서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미드 소마'를 보고 실망했다고 했다. 사실 미드 소마의 경우, 떡밥을 뿌릴 것도 없다. 누가 범인이지? 누가 이런 음모를 꾸미는 걸까? 어떻게 탈출하게 되지? 이런 영화가 아니다. 마지막에 너무 담담하게 불에 타 죽고 광기 어린 울부짖음과 미소를 짓는 여자 주인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영화는 미쳤구나.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떡하면 좋지?


한편으로는 역겹고 토할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가지는 힘이 어마무시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광기어린 감정이 이해가 안 가서 리뷰들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나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을 보며 안도했다. 그리고 내 취향은 생각보다 대중적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예술의 도시, 비엔나 공연! 여기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