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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물의 최고봉, 리틀 드러머 걸

말해 뭐해? 백문이 불여일견, 6화 정주행 하게 될 것!

by 아보카도


"국정원 요원하면 대박 잘할 것 같아."

"스파이 하면 딱일 것 같은데?"


귀가 지나치게 밝아서 가끔은 '소머즈냐' 하는 소리를 듣는 내게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살아오면서 귀가 밝아서 좋았던 일보다는 좋지 않았던 일이 많아서 나의 이런 위대한 재능을 썩히는 게 종종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스파이나 요원했으면 잘했을 텐데 지금 다시 스파이를 할 수 있는 직업으로의 전향을 고민해 볼까?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나는 스파이물을 정말 좋아한다. 언더커버 자체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각축전이 벌어지는 국제 정세에서 강대국이 스파이 요원을 발탁해서 복수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슬아슬한 순간을 넘기는 이야기가 손에 땀을 쥐게 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최근에 반했던 '킬링 이브' 역시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 둘이 대치하는 이야기라서 매력을 느꼈는데 '킬링 이브' 못지않게 감탄을 하며 봤던 드라마는 '리틀 드러머 걸'이었다. 이 위대한 작품은 BBC에서 방영되었으며 미국 AMC에서도 방영되었다. 내가 본 것은 방영본이 아닌 감독판이었다. 그래서 방영본에서는 삭제되었던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이나 베드신 등을 여과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수위가 높지는 않으나 개인적으로 6화에서의 배드신은 충격적이긴 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상태에서 프로 스파이가 아닌데 가능한가. 너무 사랑해서 그 조차도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리틀 드러머 걸'의 존재 자체는 2018년부터 알고 있었지만 1화만 봤을 때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정주행을 포기했다. 1,2화의 지루함을 참으면 6화까지 단숨에 정주행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리뷰는 적중했고 1화의 지루함을 참았더니 그 이후는 쑥쑥 쑥 하루 만에 정주행 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야 워낙 유명하고 이스라엘인 혹은 유대인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대인 중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다. 실제로 이스라엘인들과 멕시코 팔렌케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들은 여행 중에도 히브리어로 의식을 거행했으며 이스라엘 교육이 여타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어서 이렇다 할 말은 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어떠한 관점에서 봐도 민감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불꽃놀이인 줄 알고 신기해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있지 아니한가.


테러로 인해 무고한 시민이 사살되는 일은 적어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국적, 사상을 불문하고 폭격이나 테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쪽의 폭격이 또 다른 쪽의 폭격을 낳고 그 폭격이 또 다른 테러를 낳고 테러는 반복되고 결국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무고한 시민만 죽어나는 이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이는 비단 그 시민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죽음이 가족 혹은 주변인에게 미치는 여파는 상상 그 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틀 드러머 걸' 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플로렌스 퓨가 스파이 제의를 받게 되고 멘토 격인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민이 아닌 이스라엘 측 스파이로 고군분투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여타 스파이 드라마, 영화와 달리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찰리(플로렌스 퓨)가 맡은 역할이 무명배우라는 것이다. '연기'가 일상인 배우가 가디(알렉산더 스카스가드로)부터 교육을 받는데 가디 역시 팔레스타인 측 거물인 미셀을 흉내 낸다. 가디는 찰리가 미셀에 대해서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게 트레이닝을 시키는데 꽤 많은 부분이 교차편집으로 표현된다.



리틀 드러머 걸이 먼저 나온 작품이지만 플로렌스 퓨는 미드 소마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어서 매혹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인 '르네 젤위거' 느낌도 나고 '미드 소마'의 사이코틱한 느낌과는 조금 다르게 인간적인 느낌도 든다. 리틀 드러머 걸에서 플로렌스 퓨는 제일 본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 있어 '사랑' 이 너무나도 중요한 가치였던 찰리는 운명적인 사랑인 척 구는 가디의 시크한 덫에 걸려서 결국 스파이가 되는데 냉혈한 같았던 가디도 찰리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 하면서도 요원으로서의 임무를 냉철하게 수행한다. 두 사람의 관계의 시작은 찰리의 저돌적인 도발로 시작되고 상처로 점철되어 휴양지에 있던 찰리는 휴양지에서도 가디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모든 관계의 주도권은 찰리가 쥐고 있다. 어찌 보면 가디의 상황 자체가 적극적일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상처를 준 여자에게 염치가 있다면 다가갈 수 없었겠지. 어찌 보면 찰리가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면에서 진취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굳이 그 위험한 사랑에 뛰어들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 뭐 심장이 뛴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리틀 드러머 걸의 원작은 책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이 원작인데 아직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다. 존 르 카레는 실제로 요원으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그의 소설들은 이전에도 영화화, 드라마화된 바 있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모스트 원티드 맨>, <나이트 매니저> 등이 있다. <모스트 원티드 맨>의 경우, 리틀 드러머 걸을 보기 전에 내가 최고로 뽑는 스파이 물이었다. 사실 스파이물에 총성이 많이 들리기 마련인데 이 영화에서는 총성이 들리지 않고 너무나도 담백하며 스산하다. 007 시리즈에 열광하는 사람이 보면 실망할 수 있지만 디테일과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카리스마를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보길 바란다. 엔딩 역시 압권이며 현실적이어서 같이 허망해하며 탄식을 늘어놓을는지도 모르겠다. <리틀 드러머 걸>의 경우 스산한 감정보다는 찰리가 들킬 뻔한 순간을 탁월한 연기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릴감을 느끼고 미묘한 두 남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너무 차가워서 매력이 1도 없다고 생각했던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로에게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1화 볼 때는 매력 없어 읭 했는데 6화에 이르러서는 알렉산더 스카스가드로의 필모를 살펴보면서 '빅 리틀 라이즈'를 봐야겠다고 결심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극찬했던 '킬링 이브' 도 8화를 온전히 정주행 하지 않고 끊어서 봤던 내가 '리틀 드러머 걸'을 정주행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엔딩의 '클리프행어'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다음 화를 계속 볼 수밖에 없었고 찰리가 레바논에 들어갔을 때는 어떻게 저 상황이 바뀌게 될지가 너무 궁금해서 몰입할 수밖에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의연하게 위기를 타개해내는지를 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스파이물에서 기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스릴감 이외에도 처연함과 연민이 든다. 미셀의 삶과 동생을 잃은 칼릴과 파트 메가 얼마나 불쌍한가. 스파이물에서 주인공의 생사가 위태로운 만큼 조연들의 생사는 쉽게 '사'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고한 시민 중의 하나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까. 칼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죽기 전에 찰리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 어서였다.


"그럼 아무 신념도 없이 이러는 거라고요?"


그렇다. 찰리(플로렌스 퓨)는 아무 신념 없이 스파이로 열일했다. 시오니스트도 아니고 유대인도 아닌데 그녀는 이스라엘 측 입장에서 너무나도 큰 공을 세우게 된다. 어쩌면 그녀에게 신념은 '사랑' 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성향 혹은 이념 혹은 종교가 신념이겠지만 그녀의 인생을 지배한 것은 '사랑'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심장을 따라서 가디를 향한 마음 하나로 위험한 잠입을 다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손수 만든 팔찌가 그녀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이미 신변이 들통난 그녀의 삶이 무탈할 리 없지만 어쩌면 그녀는 성공한 인생 인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보다도 본능적으로, 심장이 뛰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스파이물에서 내가 제일 사랑했던 인물인 영화 '스파이'의 멜리사 맥카시만큼이나 매력적인 인물 같다. 영화 '스파이'는 여태껏 언급했던 스파이 영화들과는 다르게 배꼽 잡고 웃을 수 있는 영환데 멜리사 맥카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2가 나와주길 바랬으나 속편은 나오지 않았다.


등장인물들만큼 매력적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의상과 배경이었다. 특히 찰리가 캠핑카에서 접선 제의를 받고 변호사와 접선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운 장면에서 나온 배경은 가히 예술적이었고 마이클 섀넌과 알렉산데르 스카르스고르드가 대치할 때 구도나 호텔의 배경이 감각적이어서 감탄하면서 봤다. 뿐만 아니라 1화에서의 미셸의 애인 의상이 그리 현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았다. 의상과 구도에서 인물의 감정 상태를 표현해내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다. 원색이 이렇게 촌스럽지 않고 세련될 수 있다니! 음악 역시 감정 상태를 적재적소에 대변해주는데 감정이 고조되게 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말해 뭐하겠습니까. 직접 보시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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