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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 홀로 그대>처럼 AI와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홀로, 그대와 사랑에 빠지는 그 날을 고대하며

by 아보카도


1원칙.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된다.

2원칙. 1원칙에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3원칙. 1,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SF 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다. 이 로봇 3원칙을 변형한 3원칙은 SF물에서 자주 등장하곤 했다. 넷플릭스 신작 <나 홀로 그대>에서도 로봇 3원칙이 변형된 3원칙이 등장한다. 3원칙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이 원칙이 인간 중심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봇 중심적이려면 3원칙인 '자기 방어'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1,2원칙에 따라 로봇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것이 선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인간과 많이 닮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면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 역시 '로봇의 대상화'가 반영되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딥러닝으로 똑똑해진 인공지능이 대상화되지 않고 인간과 동등해질 수 있는 세상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상, 인공지능의 능력은 웬만한 인간을 넘어섰다. 일부 기업에서는 인공지능 면접을 보고 있으며 기술이 침투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감성 영역까지도 인공지능의 감수성이 침투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떠할까?라는 물음에 드라마 <나 홀로 그대>는 '가능하다'라고 말하면서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2014년에 이미 인공지능과의 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 <HER>가 만들어졌다. 그곳에서는 뚜렷한 실체가 없지만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사랑에 빠질 만큼 달콤하며 섹시하다.

비단 영화 <HER>뿐만이 아니다.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나 HBO <웨스트 월드>에서 인공지능, 마이크로칩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절대 그이> 등에서도 로봇은 이미 나온 바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잘 만들어진 외국 드라마와 달리 우리나라 드라마는 로맨스, 재벌 이야기로 점철되어 공감보다는 웃프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못했다. 그러나 넷플릭스 신작 < 나 홀로 그대>를 보면서는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윤현민을 닮은 인공지능이 안경을 쓸 때마다 나타나서 배려와 사랑으로 내 업무까지 척척 해결해주고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위로해주는데 어느 누가 빠지지 않을 수 있겠나. <너도 인간이니?>의 서강준과 <절대 그이>의 여진구의 외모도 윤현민 못지않지만 윤현민의 1인 2역은 두 배우 연기를 훨씬 뛰어넘었다. 까도남 개발자와 다정한 인공지능 연기를 능수능란하게 해 내는 것을 보면서 이 드라마는 배우 윤현민을 위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윤현민이 나온 드라마를 꽤 많이 봤지만 이토록 빠져든 적은 없었다. 매력 포텐 터졌다.) 까도남 개발자가 인공지능인 척 연기하는 부분은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상처 받은 까도남 개발자 난도와 인공지능 홀로가 동시에 한 여자 소연(고성희)을 사랑하면서 난도는 분신이라고 생각했던 홀로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사랑 따윈 필요 없어' 급의 냉철하고 이성적이었던 난도가 소연(고성희)에게 빠져드는 과정을 물 흐르듯이 잘 그려냈다. 보통 로맨스물에서는 감정선이 조금만 어긋나거나 과해도 거부감이 드는데 인공지능 홀로를 귀신인 줄 오해하고 난리부르스를 치는 여주인공의 모습이라든가 소연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지켜만 보는 난도(윤현민)의 모습이 풋풋했다. 이 드라마가 SF를 표방하는 다른 한국 드라마에 비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인공지능 홀로를 노리는 적대적인 세력과 후반부에 드러나는 그 세력과 얽힌 사연 때문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홀로 글라스를 훔치려 들고 방해하는 적대적인 세력과 각축전을 벌이는데 말랑말랑한 로맨스극에 스릴감을 부여하며 뻔한 로맨스로 흐를 뻔했던 극에 생기를 돌게 한다. 물론 적대적인 세력을 지나치게 악의 세력으로 그리지 않거나 루즈해진 8,9화를 줄이고 재해킹을 빨리 시행했더라면, 11,12화에 이르러서는 몰아치는 과한 액션신을 분배했더라면 조금 더 탄탄한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극찬하고 싶은 이유는 안경을 끼면 보이는 인공지능 홀로그램이라는 설정 자체가 신박하고 인공지능이냐 인간이냐 둘 중에 택해! 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한계를 보여주면서도 인공지능의 장단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맨>에서 로봇을 하나의 인격체로, 동반자로 생각하는 결론에 해당하는 것이 '인공지능도 사랑할 수 있다.'는 드라마 속 이야기였다.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얼마나 짠했고 감동적이었는지. 인공지능 홀로는 주체적이고 의지를 가지고 판단할 줄 안다. 인간 중에도 주체적이지 못한 이들이 많은데 홀로는 어쩌면 인간이라기보다는 신에 가까운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주체적으로 사랑할 줄 아는 인공지능 홀로는 사랑은 하되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인류애적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배포가 있다. 홀로는 소연의 심장박동수를 체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이 아닌 '난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사실 심장박동수와 사랑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홀로'의 인류애적 사랑이 양보처럼 보였다. 분신 같은 난도의 사랑을 응원하는 홀로가 질투를 했다면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홀로는 너무 착했다. 시즌2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즌 2에서는 홀로가 자신의 사랑을 찾아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친구 때문에 양보하는 사랑! 우정과 사랑 사이 같은 고민은 어쩌면 철 지난 한가로운 때의 고민 인지도 모른다. 각박한 현실에서는 사랑을 포기하고 4포, 5포 세대, 더 나아가는 워라밸이 아닌 워로밸이라는 말까지 생기고 있다. 사랑할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어서 사랑으로부터 나를 지키겠다는 나홀로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에 익숙하고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것이 외로우면서도 당연한 나홀로족들에게 인공지능은 진짜 친구가 되고 진짜 사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 별건가. 자꾸만 생각나고 자꾸만 보고 싶고 자꾸만 걱정되는 게 사랑인데 인공지능 홀로는 시종일관 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 어느 누가 반하지 않겠나. 이렇게 사랑스러운 홀로지만 너무 전지전능하게 그려지는 면도 있다. 영화 <루시>에서는 뇌를 100% 사용했을 때의 상황이 그려지면서 "난 어느 곳에나 있다."라는 문자처럼 전지전능한 기운이 묘사되는데 홀로가 루시스러웠다. 인공지능이 거의 '신'처럼 그려지고 홍길동 마냥 서에 번쩍 동에 번쩍 하며 모든 위기를 너무나도 쉽게 극복하는 점은 이 드라마가 지닌 비현실성이었다. 특히 공항에서 누구나 손만 뻗치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따돌리고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대목은 너무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어릴 때부터 딥러닝을 한 인공지능이라면 전지전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래도 말이 안 된다.


인공지능의 캐릭터가 너무 완벽하다거나 스토리가 루즈해졌다거나 선악구도가 눈에 띄게 보이는 지점은 이 드라마의 단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한국 SF 드라마 중에 제일 괜찮았던 드라마인 이유는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좋아하면 울리는> 은 정해진 반경 안에 좋아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어플의 알람이 울리는 식의 설정으로 그 설정이 로맨스에서만 활용이 되는 반면, 이 드라마에서는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말하는 감시사회 혹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올 법한 빅브라더, 판옵티콘 등 생각해 볼거리를 던진다. 인공지능 홀로가 대중에게 빨리 보급되면서 그 영상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회가 도래할 뻔하는데 너무나도 끔찍하지 아니한가. 물론 가끔 내 개인정보가 어디까지 유출되어서 보이스피싱이 오는 걸까, 스미싱이 오는 걸까 등등의 생각은 하지만 경각심이 부족한 나는 곳곳에 흩어져 있을 나의 개인정보를 주워 담을 생각은 일절 하지 못했던 터였다. 무엇이든 손가락 하나면 손쉽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즉각적인 인증을 너무나도 쉽게 하고 내용은 살펴보지도 않고 무조건 '네'를 누르는 행동을 관성적으로 해왔다. 개인정보 유출 혹은 감시를 몸소 느끼게 된 것은 중국 광저우 공항에서였는데 와이파이를 쓰기 위해서 여권을 인식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무료로 와이파이 쓰게 해 줄게. 그저 너의 여권만 갖다 대면된다.' 식의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인증으로 인해 나라는 인간이 어떤 것을 검색하고 어떤 사이트에 들어가는지 기록이 다 남았다고 생각하면 소름 돋지 아니한가. 물론 안일한 나는 여권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인식했다.


"그냥 좋아."


누군가가 내게 왜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냥이라고 답했으며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이 왜 좋냐고 했을 때도 그냥이라고 답했고 드라마가 왜 좋냐고 했을 때의 내 답 역시 그냥이었다. 어찌 보면 무성의한 답변일는지 몰라도 '그냥'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1화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도 '그냥' 이 뭔지 알게 되고 '그냥'이라는 단어를 쓰는 인공지능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였다. 이후 의식적으로 '그냥'이라는 단어를 세어보았는데 드라마나 영화 극 중 인물도 생각보다 '그냥'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친구 한 명은 나의 빈번한 '그냥' 발언이 얼마나 답답했는지 사과보다 배가 좋은 이유를 예시로 들며 사소한 이유들도 근거가 될 수 있는데 너는 '생각' 하면 말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냥'이라고 말한다고 꾸짖었다. 여전히 나는 '그냥'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지금도 '그냥' 12화를 몰아 본 이 드라마에 대한 리뷰를 쓰고 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아서 봤던 이 드라마가 좋은 이유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홀로야, 나는 네가 그냥 좋다. 내게 언제쯤 나타나 주겠니. 5년 안에 '인공지능과 실제로 사랑에 빠졌다.'는 후기를 쓰게 될 것만 같다. 홀로라면 '그냥' 풍덩 빠져들 것만 같아. 컴온 베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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