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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기존 수사물과 다른 이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by 아보카도



12화 혹은 16화 드라마 정주행도 거뜬히 하는 내가 겨우 8화에 불과했던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겨우 정주행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음이 아파서였다. 1화를 봤는데 너무 우울해서 그다음 편을 선뜻 보고 싶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강간을 당했는데 경찰로부터 허위 진술했음을 의심받고 급기야 자신의 증언을 번복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게 소름 끼쳤다. 극 중 대사처럼 절도당한 자와 사기당한 자들은 피해 사실에 대해 의심받지 않지만 성폭력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독 피해자를 의심하고 추궁하냐는 말이다. 이 세상에 자기편이 아무도 없이 홀로 살아온 여자 주인공은 많은 위탁모, 위탁부를 겪으면서 상처를 입은 인물이다. 위탁모 한 명이 여자 주인공을 궁지에 몰고 관심을 받기 위해 허위 진술했을는지도 모른다는 말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아무리 인간이 생각하는 게 천차만별이라지만 어찌 저런 막돼먹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마 위탁모는 자신이 결백하며 그 아이를 도우기 위해서, 그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위탁모나 위탁부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착한 사람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좁은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으니 정말 무섭다.


피해자의 심정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영역이다.

1화 내용이 피해자가 강간범, 경찰들, 친구들 모두에게서 상처를 입는 내용이었던 반면 마지막 8화에서는 범인이 색출되고 여자 주인공이 형사에게 전화하는 대목이 있다. 범죄자가 벌 받는 것보다 당신이 이 사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이라는 말을 하는데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한편으로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당사자는 2008년에 강간을 당했는데 허위 사실 유포죄로 시로부터 고발까지 당하고 2011년에 두 형사가 공조 수사로 2008년의 강간이 허위사실이 아니었음을 우연히 증명하게 되는 게 기가 막힌 사실 아닌가. 범인이 신분증이 있는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으면 당사자의 강간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겠는가. 두 형사가 없었더라면 여자 주인공은 평생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했을 것이고 강간으로 입은 신체적 상처마저 회복하지 못한 채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평생을 구렁텅이 속에서 살아갔을 것이다. 선의도 선의지만 두 형사의 사명감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던 사람을 살렸다고 생각했다.

메릿 위버 말투와 목소리, 톤 듣고 반했다.


사건을 풀어가는 두 형사는 여자다. 영화 <유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토니 콜렛과 <결혼 이야기>에 나온 줄도 몰랐던 메릿 위버. 토니 콜렛이 걸 크러시 쩌는 대장부형이라면 메릿 위버는 외유내강형이었다. 토니 콜렛의 '네가 나 재수 없게 보는 거 알아. 상관없어.' 식의 배 째라 마인드도 본받고 싶었지만 메릿 위버의 '부드럽게 말하면서 허를 찌르는 대화' 스타일도 배우고 싶었다. 3화 이후부터 드라마에 몰입해서 보게 된 것은 메릿 위버가 보여준 부드러운 카리스마 덕분이었다. 사실 토니 콜렛 류의 인간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알면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인간형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사회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토니 콜렛이 멋있어 보였던 순간도 있었다. 증인이 거의 확정되고 체포만 남았을 때 토니 콜렛은 자신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 사건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체포는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이 사람 멋있네. 허세 하나 없고 담백해.'라고 생각했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두 캐릭터의 매력 때문인지 이 드라마는 수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수사물 덕후가 아닌 관계로 여타 수사물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수사물을 잘 보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가 너무나도 잔인하고 과격한 장면이 많이 나와서였는데 이 드라마는 그런 면에서 절제되어 있다. 물론 범인의 범행을 떠올릴 때의 장면들은 묘사되지만 여타 수사물이 과격하게 묘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여성 감독, 여성 작가가 만든 드라마라 그런지 피해자의 진술부터 피해자의 관점까지 그들의 관점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메릿 위버 앓이를 한동안 할 듯하다. 외유내강형 인간 너무 멋있다.


여자 경찰의 40%가 자기 애들을 학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 그 40%는 일자리를 잃겠지만 실제로 플로리다 남자 경찰의 40%가 가정학대범임에도 30%나 일자리를 지킨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다. 경찰 내부자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면서도 역공격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서 조심하는 이들의 모습 또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다. 두 형사의 남편이 일에 골몰한 두 형사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남편들이 요리를 해서 내 오는 장면들은 연출의 의도적인 배치라고 생각했다. 기존의 형사물이었다면 남녀 롤은 바뀐 채 나왔을 터였다. 물론 여자 형사가 나오는 수사물도 많지만 불편할 정도로 여자 형사는 대장부, 혹은 중성적인 여자, 걸 크러시, 터프한 여자로 그려진다. 메릿 위버가 빛나 보이는 이유도 차분하고 침착하게 수사를 이끌어가는 현실적인 여성 캐릭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남자 형사들이 허위진술로 치부하고 한 여자가 강간당한 사건을 빨리 종결하는 바람에 2008년에 잡힐 수 있었던 범인은 2011년에 이르러서야 잡혔고 피해자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말았다.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서 진술했던 것처럼 그 사건으로 인해 한 인간의 삶이 망가졌다. 누군가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는 사건일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2008년의 남자 형사들은 그러지 못했다. 과연 자신의 딸이나 아내가 강간을 당했어도 그렇게 수사를 쉽게 종결했을까. 두 여자 형사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발 벗고 나선 끝에 범인을 색출한 것처럼 이 사회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대할 때,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자신이 피해 입은 것처럼 상대를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아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영원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본다. 소수의 빛나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기적이 드라마화됨으로써 다수의 흐릿한 사람들은 각성을 하게 되었으니 결론적으로 실화 기반의 드라마를 아름답게 만든 제작진에 경이의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제작진의 선의와 사명감 덕분 아니겠나. 세상엔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많다.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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