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지만 말발 좋고 머리 좋은 사람들 틈에서 내 포지션은 나서지 않고 관전하는 쪽이었다. 물론 그 정도의 말발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정치 덕후가 아니었기에 그들만큼 식견이 높은 발언들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쭈구리처럼 그들의 논리 정연함에 감탄하면서도 가끔은 말도 안 된다 싶은 발언에는 인상을 찌푸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2013년 즈음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가 정말 안 좋아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곳곳에서 오가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북한'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든 정치학적으로든 다르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전쟁을 해서 우리나라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전쟁 터지면 책상 밑에 먼저 숨어버릴 거면서 외교전술을 그렇게 감정적으로 펼쳤다가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하는지 나원참.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오면서 북한과 대치할 때마다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교환학생 때건 여행을 하면서 외국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면 어김없이 북한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외신이 호들갑을 떨면서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도 있고 '벼랑 끝 전술'이나 '살라미 전술'을 쓰는 게 습관이 된 북한의 행동을 보면서 무뎌졌을는지도 모르겠다. 벼랑 끝 전술은 마치 전쟁을 하자는 것처럼 보이면서 상대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협상 전술을 말하며, 살라미 전술은 북한이 핵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이탈리아 소시지 살라미를 얇게 썰어먹듯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술을 말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결국은 핵으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지만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와 달리 국제정세는 이념의 양분화가 극심한 편도 아니며 세력균형(BoP)이나 패권 중심주의 측면에서 바라봐도 핵전쟁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인류가 멸망한다면 어떤 이유로 멸망하게 될까.
인류멸망의 트리거는 핵이 아닌 전염병일 것이다.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했던 흑사병의 경우, 7500만 명에서 2억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때 유대인 혐오가 극심했는데 다른 인종들이 흑사병에 걸려 죽을 때 그들이 죽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이 흑사병을 퍼뜨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 것이다. 최근 발생한 전염병 코로나 19로 인해 인해 국제 사회가 뒤숭숭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천지가 온천지로 퍼지기 전까지 우리 정부는 이웃 나라들에 비해 잘 대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고 청정지역은 어디에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미국인 기자가 인천공항의 검역을 극찬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한국인들을 입국 금지시키는 나라까지 생기고 말았다. 우월감을 느끼는 일부 선진국들의 인종차별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안전한 해외여행'의 제1원칙은 '소매치기당하지 않는 것' 이 아닌 '동양인을 얕보고 멸시하는 눈빛을 피하는 것' 일 것이다. 유대인이 적게 죽었다는 이유로 혐오가 생긴 것과는 달리 전염병의 근원지가 동양이었다는 이유로 동양인 혐오 혹은 비하는 심각한 문제로 번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19로 인해 글로벌화, 세계화라는 말이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게 증명되고 말았다. 국경 없는 We Are The World를 외치면서도 중국인 입국 제한을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고, 실제로 중국인 입국을 제한했던 이탈리아에서는 확진자가 순식간에 100명을 상회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중국인 입국 제한 없이도 청정국가가 될 뻔했던 한국은 예상치 못한 변수인 신천지로 인해 언제 끝날 지 모를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우한에 거주 중인 외국인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영상들을 보면서 무섭다고 생각했다. 마트의 물건들은 동이 났고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를 거리에 버리는 바람에 강아지가 불쌍한 얼굴로 거리를 전전하기도 했으며 우한의 거리는 너무나도 한산했다. 재난 상황이 닥치면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게 되는 법인데 마트의 물품 싹쓸이, 마스크 싹쓸이, 애완동물 버리기 등의 현상이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 <버드 박스>에서 산드라 블록이 보이와 걸 사이에서 주춤거리다가 '자기 핏줄에 끌리는 이기적인 감정'을 표출한 것처럼 인간은 극한 상황에서 타인보다 자신과 자신의 핏줄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유튜브 영상으로만 보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거리를 나서지 않고 핫플레이스는 텅텅 비게 되고 배달 관련 산업과 마스크 산업이 호황을 맞게 되고 비대면 거래가 각광받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균과 전쟁 중인 전 세계 인류는 언제쯤 아무 문제가 없었던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될까.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매일 손 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만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안심하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여름이면 잠잠해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지만 흑사병이 오래갈 줄 누가 알았겠으며 우리나라에서 확진자가 급증할 줄 누가 알았으랴. 기우일는지 모르겠으나 이번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더라도 그다음 전염병이 언젠가 인류를 급습해서 공포와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백색 눈병 전염병이 확산되고 사람들은 하나둘 눈이 멀게 되고 거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인간의 추악함이 하나둘 드러난다. 극단적인 설정이 들어있는 픽션이지만 나름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인류 멸망의 트리거가 전염병인 이유는 그 전염병을 대하는 사회의 대응, 시민들의 태도가 일사불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나는 괜찮아.' '나는 건강한데 뭐 어때.' 이런 안일한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이번 코로나 19 사태를 계기로 재난상황 대비 매뉴얼을 형식적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 철저하게 시뮬레이션하고 다각도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희망은 내가 움직여야 닿을 수 있는 대륙이 아니라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 속도로 움직이는 지구가 태양을 돌다 보면 나타나는 밝고 따뜻한 계절.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서 그 계절을 맞이하는 것뿐인지도.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겠지. 희망은 시간처럼 머무르지 않고 오고 가는 것.
무수히 많은 아포칼립스 소설이 있지만 극단적인 설정보다 담담한 문장들이 내 마음을 울린 책 <해가 지는 곳으로>의 일부다. 더 이상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길 바라며 머무르지 않고 오고 가는 희망이 우리 곁에 와 주길.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