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영화 포스터를 떠올릴 것인가. 내 뇌리를 스치는 두 개의 영화 포스터가 있다. 하나는 영화 대니쉬 걸, 다른 하나는 로렌스 애니웨이. 두 영화 다 동성애 영화로 대니쉬 걸의 경우, 에디 레드메인이 남자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여자처럼 보이고 로렌스 애니웨이의 경우 르네 마그리트의 '골콩드'를 오마주한 느낌이 든다. 대니쉬 걸은 세계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남성으로 알려진 덴마크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로렌스 애니웨이의 경우, 동성애자인 감독이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영화 곳곳에 녹여냈다. 포스터만 보고 아무 정보 없이 아트나인에서 두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가 너무 아름다웠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오감으로 느끼는 예술이라 느끼며 엔딩 크레디트 올라갈 때 기립 박수 칠 뻔했던 영화였고 대니쉬 걸은 당시 백수생활을 오래 하며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내게 '어떤 것을 애타게 열망하는 것은 축복과도 같은 일이니 너의 열망을 현실로 구현하여라.' 하는 깨달음을 준 영화였다.
주인공은 다 남자인데 최초 성전환자를 다룬 대니쉬 걸의 경우, 와이프인 게르다가 에이나르를 '릴리'라고 불러주며 두 번의 성전환 수술을 거치는 와중에도 그의 곁에 머물게 되지만 로렌스 애니웨이의 경우, 현실의 난관에 봉착한 프레드는 결국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대니쉬 걸은 1920년대에 있었던 실화기에 게르다의 속사정이 더욱 안타깝고 로렌스 애니웨이의 경우 헤어진 이후에도 편지를 보내고 만나서 사랑을 갈구하는 로렌스가 안타까웠다.
"나 사실 동성애자야."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의 애인이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한다면 당신은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참사랑이라 한다면 커밍아웃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난 너의 모든 것을 사랑했는데, 너는 그것을 혐오하는구나."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로렌스의 커밍아웃에 놀란 프레드의 반응은 마냥 이상적이지만은 않다. 당신의 동성애적 성향마저 사랑해가 아니라 지난날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배신감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 입장에서는 프레드의 말들이, 프레드의 최후의 선택이 야속하게 느껴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현실에만 비추어보아도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논란이나 트랜스젠더 하사 논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아직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에 관대하지 않다. 옛날에 비해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캐릭터는 하나둘 늘어나고 있고 그 캐릭터에 대한 거부감 또한 줄어들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냉혹하다. 요즘 핫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마현이는 극 중 녹화장에서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라고 고백한다. 종영한 드라마 '우아한 가'에서도 촉망받는 그룹 차남 모완준은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다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들통나게 된다. 이뿐만 아니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동성애자 커플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시청자들은 큰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여왔다. 드라마 '하이에나'에서도 동성애자인 유명한 연주자인 아들의 연애를 금지하며 아들을 숨 막히게 하자 아들이 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 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물론 이는 2010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하면서 그 드라마를 보고 동성애자가 된 아들이 에이즈로 죽으면 책임지라는 협박성 광고가 신문에 실리면서 크게 이슈가 되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완벽한 인물보다 부족하고 결핍이 있는 인물이 역경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감을 느끼지만 현실에서는 아싸 보다 인싸에게 호감을 느끼고 인싸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물론 요즘은 자발적 아싸도 증가하고 있다.) 극 중에서는 인물의 처지와 상황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인간들의 깊숙한 내면까지는 들여다 보기가 쉽지 않다. 학교 혹은 회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속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들 동성애자를 바라볼 때, 성 뒤에 소수자라는 말을 붙여서 성소수자라고 말한다. 소수자는 성, 나이, 장애, 인종, 국적, 종교, 사상 등 한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측면에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국가나 사회의 지배적 가치와 기준을 달리한다는 이유로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봉준호 감독이 백인들의 잔치라고 불렸던 오스카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했을 때, 우리는 해냈어! 하며 환호했다. 우리도 백인들의 잔치에서는 소수자였는데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고 쾌거를 이룩한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감격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대할 때 오스카 4관왕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자라고 낙인을 찍으며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보다는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좁은 울타리 너머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한 내가 옹졸한 사람은 아닌지 생각해 볼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동성애자 캐릭터가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게 되고 동성애를 테마로 하는 소설들이 서점가에 즐비하게 되면 무얼 하나.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비극이란 영원에 닿아있으며 시간을 초월하지만, 사랑 또한 막을 수 없는 것과 동시에 영원한 것이라면, 그리고 당신에게 느끼는 애틋함이 무한하다면, 이렇듯 사랑과 비극은 언제나 함께 공존하는 거겠지. 사랑은 빠짐과 동시에 채워지는 법이니까.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영화 속 대사가 말해주듯이 사랑에는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한다. 이성애처럼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소수자라고 해서 이들의 사랑이 남다르다고 폄하되거나 거부될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면 냉혹한 우리 사회도 따뜻한 색으로 물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