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4일
나는 장비병 환자가 맞다.
일이든.
취미든.
장비를 갖춰야 직성이 풀린다.
어릴 적 갖지 못했던 결핍이 이어져 오는 건 아닐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장비병은
일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하나. 카메라
조감독 시절
돈은 없었지만 카메라는 가지고 싶었다.
그때는 풀프레임 DSLR이 유행이었고
조감독 월급으로는 넘볼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나는
결국 카메라를 손에 넣었고
고가의 렌즈들도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
일과 연결된 취미는 생각보다 잘 맞았고
그 결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브로셔를 만들어 작가로 데뷔 아닌 데뷔를 했다.
둘. 캠핑
나의 캠핑은 한국에 캠핑 붐이불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텐트 하나.
돗자리 하나.
부르스타와 냄비.
그걸로 캠핑을 시작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고
부족함이 없었다.
번개탄에 구운 고기와
라면 하나면 충분했고
겨울이면 침낭 안에
핫 팩 하나 넣고
어두워지면 잠들고
동트면 일어났다.
아이들이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다시 시작한 캠핑은
거의 피난에 가까웠다.
텐트, 의자, 테이블, 버너, 코펠, 침대, 전기장판, 전등.
어떤 날은 TV까지.
장비의 종류가 많아지고
가격이 높아질수록
내 어깨도 함께 올라갔다.
하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여유는 없었고
근육통만 남았다.
셋. 달리기
어느덧 1년이 되어 가는 달리기.
일주일에
고작 두 번.
거리도 3-5km가 전부인
나의 신발장에는
러닝화가
다섯 켤레 있다.
그중에는 아직 한 번도 신지 않은 채
봄을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러닝 고글에 맞는 도수 렌즈.
바람막이, 장갑, 허리벨트, 무릎 보호대 등
뛰는 양에 비하면
장비가 꽤 과하다.
장비만 보면
마라톤 대회를
서너 번은 나간 사람 같다.
그리고 지금.
작년 12월 답답한 마음에
살아보고자 쓰기 시작한 일기.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하루하루 눌러 담던 날이 지나고
요즘은 일기 쓰는 시간이
하루의 낙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솔직하게 쓸까.
그런 고민을 하고
책도 더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시작이다.
나의 장비병이
또 고개를 들었다.
우연히 마주친
기계식 키보드.
또각또각하는 소리에
나는 이미
눈이 돌아버렸다.
며칠 밤을 새워
비교하고 타건감과 소리까지 찾아봤다.
지금은
또각또각 소리와 함께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글쓰기의 장비병은
어디까지 갈까.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실력이야 어떻든
마음만은
벌써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