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건과 공간의 일치성

by 이다유

사건은 언제나 특정한 공간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모든 공간이 모든 사건을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은 반드시 그 사건에 걸맞은 공간을 만날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이것이 바로 사건과 공간의 일치성인 것이다.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보자.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전쟁 이후 황폐해진 서울에서 살아간다. 그녀가 겪는 상실과 고통은 그저 개인적인 체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폐허가 된 도시라는 공간이야말로 그 고통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그 의미를 확장시킨다. 만약 같은 이야기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벌어졌다면, 전쟁의 상흔과 시대적 상실감은 결코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청준의 『소문의 벽』 역시 공간과 사건의 긴밀한 결합을 보여준다. 작품 속 주인공은 권력의 감시와 억압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간다. 이때 인물이 머무는 공간은 언제나 닫힌 방, 어두운 복도, 혹은 탈출구 없는 도시다. 그 공간들은 단순히 장치가 아니라, 사건의 본질과 분리될 수 없는 조건인 것이다. 닫힌 공간 속에서의 절망과 소외야말로 이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는 감각을 완성한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에서 만남과 헤어짐이 벌어지는 장소 역시 우연적이지 않다. 인물들이 함께 걷는 겨울 벌판과 여인숙은, 산업화 속에서 밀려난 이들이 더 이상 머무를 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사건과 공간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사건과 공간의 일치성은 결국 독자의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사건이 공간과 유리되어 있다면, 독자는 그것을 우연한 에피소드로만 읽는다. 그러나 사건이 공간과 맞닿아 있을 때, 독자는 그것을 하나의 필연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작가가 사건을 설계할 때 반드시 묻는 것이 필요하다. “이 사건이 가장 설득력 있게 터져 나올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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