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과 <놉>, ( )을 보지 말아요
시각의 폭력성 ① 백인과 자연
오늘 아침 좀비 바이러스의 봉인이 풀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독일 연구진으로 이루어진 연구팀이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베리아 야쿠츠크 지역의 영구 동토에서 바이러스 13종을 발견했다는 내용입니다. 좀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 바이러스들이 몇 만 년 전에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인데요. 토양이나 강, 2만 7천 년 전 죽은 시베리아 늑대의 창자에서도 발견된 이들은 아직 전염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시베리아의 영구 동토가 녹아내리면 이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오게 되리라는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흔해빠진 아포칼립스의 도입부 같지만 기후 문제는 현재까지도 전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강수량 변화로 인해 올해 폭우 피해를 겪은 나라만 해도 파키스탄, 태국, 캄보디아, 호주,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에 이르고, 인구 약 1만 2000명의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는 매년 0.5~0.6㎝씩 해수면이 높아져 앞으로 50년 이내에는 모든 국토가 완전히 물에 잠길 전망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부분은 지금까지 인류가 방출한 온실가스의 90% 이상은 선진국들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직접적인 피해는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섬나라 등의 개발도상국들이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선진국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보상 대책은 요원한 상황입니다.
서구의 기술 개발은 유색인종과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착취의 역사로 이루어졌고 지금까지도 그 가해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돈 룩 업>과 <놉> 두 영화는 자연을 지배해 온 백인에 대한 풍자적인 알레고리를 공유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두 영화는 재미있게도 하늘을 바라보지 말라는 뜻의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Don't look up(올려다 보지 마)'는 말할 것도 없고, 'NOPE(안 돼)'는 하늘을 바라보려다가 눈을 돌리는 주인공의 대사에서 비롯되었지요. 포스터엔 마치 홀린 듯이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배우들이 있네요.
하지만 왜 보면 안 된다는 걸까요? 서구 철학사에서 시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면 상당히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보는 행위'는 사실 오랜 역사에서 권력으로 기능해왔습니다.
고대 히브리와 그리스에 근본을 둔 서구 사상은 '듣는 것'와 '보는 것'이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데, 그중에서 시각은 가장 고귀한 지적 감각으로 여겨졌습니다. 시각·청각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일정한 공간적 거리가 있는 반면 촉각·미각·후각과 같은 감각은 접촉이 일어나는 주관적인 인지 감각이기 때문이었죠. 전자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지만 후자는 감각적 탐닉이나 즐거움, 그리고 동물적인 더러움을 연상시킵니다. 유서연은 《시각의 폭력》에서 "촉각·미각·후각은 혐오의 정서와 깊은 연관을 맺는다. 혐오의 정서는 배설물, 침, 땀, 콧물, 월경혈 등의 신체 분비물이나 그것으로 더럽혀진 오염물에서 역겨움을 느끼며, 그 혐오스러운 대상과 접촉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로 혐오를 유발하는 것은 악취나 끈적거리는 촉감, 그리고 불쾌한 맛과 연관이 된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적 사유는 쾌락과 동물성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우등하게 여깁니다. 다른 감각들보다 중립적이고, 확실한 것에 집중하는 시각은 이성의 상징으로서 특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각이 이성적인 인지 기능이란 것은 그럴싸하게 들립니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은 시각 장애인 네 명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그 정체에 관해 토론하는 일화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입니다.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던 사람은 “얇고 길쭉한 것이 밧줄”이라고 말하고, 옆에서 다리를 만지던 사람은 “크고 단단한 것이 기둥”이라고 외칩니다. 두 사람은 같은 동물을 만지고 있지만 그 정체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눈을 뜨고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면 그게 코끼리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렸겠지요. 무언가를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시각과 이성의 밀접한 관계는 서구의 여러 문화 영역에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영어에서 아는 것과 보는 것은 긴밀한 언어적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보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ἰδέᾱ(f., idéā)에서 파생된 'idea(생각)'. 무언가를 이해했을 때에는 'I see'라는 관용어를 사용하죠. 'pupil'은 눈동자라는 뜻을 가진 한편 다른 의미로 지식을 배우는 어린 학생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theoria(관조)'와 'theory(이론)', 'theater(극장)'이 같은 어근을 공유하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당대의 사회 인식이 상징으로 반영된 그리스 신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물을 '눈에 보이게' 빛으로 비추는 태양의 신 아폴론은 합리적인 이성을 상징합니다. 음악, 시, 예술, 예언, 활, 의학 등등 여러 영역을 관장하는 아폴론은 당대 그리스에서는 최고신인 제우스 다음으로 존경받았습니다.
시각을 통해 전개된 이성주의 사상은 플라톤 이후의 근대 서양 철학자들에게도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며 훌륭한 학문적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무언가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지식 축적의 방법이죠. 하지만 문제는 이성이 지극히 폭력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 뿐더러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사실 그리 객관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입니다. 서양 철학의 위계질서를 비판하는 데리다는 〈백색 신화〉에서 빛과 어둠이 서양 철학의 기본을 이루는 근본적인 은유라고 설명합니다.
어둠. 먼 서쪽 하늘에서 해가 지고 붉은 빛 노을이 번져가는 지금, 나는 곧 닥쳐올 어둠이 두렵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힘을 주는 태양의 빛이 남은 한줄기마저 사그라들면, 이 바닥부터 깔려오는 어둠 속에서 나는 볼 수도 없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행할 수도 없다. 들짐승들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동굴 앞에 모닥불을 피운다. 그러나 나는 이 어둠의 공포 속에서도 늘 안심한다. 나의 태양은 늘 그래왔듯이 동쪽에서 또 떠오를 것이고, 새벽 여명의 빛에서 나는 사냥을 위한 도구를 만들고 나를 위협할 자들에 대비해서 칼을 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태양의 빛 아래서 가능하며, 어둠이 내리면 나는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두운 시야 속에서 누군가 나를 덮쳐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떤다. 그래서 내게 어둠과 검은색은 악이요, 빛과 흰색은 선이다.
이성-시각-빛의 숭상은 세계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단 두 가지로 분할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결코 서로 동등한 관계가 아니죠. 보이는 것은 좋은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은 억지로라도 빛을 비춰서 밝혀내야 합니다. 이성의 논리에 따라 근대의 백인들은 ("내게 어둠과 검은색은 악이요, 빛과 흰색은 선이다." 노골적으로 인종적인 맥락이 떠오르네요.) 세계를 자신들의 문명 질서에 편입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를 보기 위해 장난감을 분해하는 것처럼 그들은 발달한 학문과 기술로 발견되지 않은 대륙을 폭력적으로 탐사했습니다. '계몽'이라는 이름으로 토착 원주민들을 지배하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개척하기에 이르릅니다.
<돈 룩 업>, 그들은 똑바로 보고 있는가
그런데 그들의 이성은 정말 이성적일까요? 백인들은 원주민들을 통치해야 하는 이유로 그들이 부도덕하고 야만적이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내세웁니다. 수치심도 없이 발가벗고 인육을 섭취하는 미개한 문화를 계몽하는 게 윤리적으로도 올바르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알파벳을 토대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체로키족이 터전에서 내쫓긴 사례는 침략의 이유가 원주민의 '야만성'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합니다. 서구의 이성을 둘러싼 모순은 미국 사회를 풍자한 <돈 룩 업>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돈 룩 업>은 기후 문제를 혜성 충돌에 빗댄 우화입니다.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천문학 박사 과정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 역)과 그 지도 교수가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혜성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혜성이 충돌하면 지구가 멸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백악관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역)은 중간 선거에 정신이 팔려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습니다(심지어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은 두 사람이 명문대학 출신이 아니라고 조롱하죠). 생방송 토크쇼에 나와 위험성을 밝혀도 대중은 케이트를 희화화할 뿐입니다. 혜성의 궤도를 바꾸지 말고 분할하여 착륙시킨 후 자원을 수집하자는 유명 IT 기업 CEO 피터까지.
지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에도 개인의 이득을 우선하는 사회. 현대의 기후 위기를 둘러싼 반응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실제 애덤 맥케이 감독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가 2018년에 내놓은 연구를 보고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이 사회의 수많은 문제를 당장 우리에게 닥친 심각한 문제로 인식할까, 위험이 얼마나 다가와야 적절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돈 룩 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돈 룩 업' 슬로건을 퍼뜨리는 올린 대통령
지구에 근접한 혜성이 조금씩 하늘에 보이기 시작하자 미국 사회는 '룩 업' 파와 '돈 룩 업' 파로 나뉩니다. '룩 업' 파가 지척까지 다가온 혜성을 보고 지금이라도 지구 멸망에 대비하자고 주장한다면 '돈 룩 업' 파는 혜성의 존재 자체가 거짓말일 수도 있거나, 혜성을 무서워하지 말고 상업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세력입니다. 미국 정부는 혜성에 매장된 희귀 광물 소유권을 독점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인도 등의 시도를 방해하고 '돈 룩 업'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퍼뜨립니다.
서구의 이성-시각중심주의의 역사를 생각하면 <돈 룩 업>의 구조는 상당히 아이러니합니다. 기후 위기가 과학 기술에서 기인했는데도 정작 과학자들의 말은 외면하고, 자연을 들여다보고 통제했으면서 그 결과는 보지 않으려고 하죠. 정치와 경제는 분명 문명사회의 산물이지만 당장 지구가 멸망을 맞이할 위기에 그런 것에 집착하는 그들은 지나치게 비이성적으로 느껴집니다.
생방송에서 흥분한 케이트
케이트는 생방송 토크쇼에서 우리가 모두 다 죽을 거라고 소리지릅니다. 그녀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혜성을 처음 발견한 학생입니다. 이대로 있다간 지구가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말하러 왔는데도 진행자들은 대법관 후보자가 포르노 케이블 방송에 출연했다는 가십이나 톱스타의 연애사를 이야기하고 태평스럽게 농담을 던지면서 방송을 진행합니다. 케이트는 그들에게 정색합니다.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고요. 매일 밤을 지새우면서 울어야 해요." 당연하죠.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것보다 더 진지하고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 있나요? 인류는 심각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케이트의 행동은 사실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진행자들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약이 떨어졌느냐는 질문입니다. 방송 이후에 그녀의 얼굴은 전국적인 인터넷 밈이 되기까지 하죠. 그녀가 '지나치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토크쇼에 함께 출연했지만 정적이고 차분한 태도로 방송을 진행한 민디 박사는 오히려 대중의 호감을 산 것이 이를 반증합니다. 그들은 케이트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닌 걸 조롱합니다. 정말로 이성적이라면 케이트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하는데도요.
바라보면 안 되는 것, <놉>
<돈 룩 업>이 백인의 자기풍자가 돋보이는 영화라면 <놉>은 흑인이 중심이 되어 그들을 비판합니다. 전자가 이성이 이성적이지 않다는 것을 문제 삼는다면 후자는 문명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폭력으로 규정하는 차이입니다. 이는 백인 위주의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이루어지는 동물 착취와 그들의 비인륜적인 관음 문화를 통해 나타납니다. 영화의 도입부에 인용되는 성경 구절이 있죠.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나훔서 3장 6절)
나훔서 3장 6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니느웨는 가혹하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착취하고 약탈해 온 강대국입니다. 하나님은 요나 선지자를 통해 니느웨 사람들에게 한 차례 경고를 했지만 당시 자비를 구걸했던 그들은 한 세기가 지나서도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들을 멸망시키기로 하는데, 그들을 '미모의 음녀', 즉 여성으로 비유하여 징벌을 묘사합니다. 얼굴까지 치마를 걷어올려서 치부를 보이게 하고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던져서 구경거리로 만들겠다고요.
이 구절은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형벌이라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특히 끔찍한 일을 당할 때 구경이 이루어지는 것은 상당히 잔인한 폭력입니다.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 간에 설정된 이성적 거리가 그의 고통을 단순한 유흥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자연과 원주민에 대한 시각적 착취는 카메라의 발명으로 인해 이제는 광범위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발전합니다.
OJ(앞)과 에메랄드(뒤)
영화와 텔레비전 제작을 위해 말을 훈련하는 헤이우드 목장. 어느날 OJ(대니얼 칼루야 역)과 에메랄드(키키 파머 역)은 하늘에서 비 오듯이 떨어진 물건들 때문에 아버지를 잃게 됩니다. 남매는 이것을 떨어뜨린 정체불명의 물체가 UFO라고 생각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고자 합니다. 말의 난동 사고로 영화 출연이 취소된 이후 재정적 곤란에 처했거든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주프(스티븐 연 역)의 카우보이 테마파크에 말 10마리를 팔았고 이제는 목장도 매각해야 할 상황입니다.
남매는 CCTV 카메라로 UFO를 쫓지만 UFO의 강한 자기장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지지부진하던 와중 카우보이 테마파크에서 쇼를 관람하던 사람들이 통째로 빨려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찾아간 OJ는 그것이 UFO가 아니라 살아있는 육식성 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늘에서 떨어졌던 동전이나 열쇠 따위는 그것이 인간을 포식하고 배설한 찌꺼기였던 것입니다. OJ는 그것에게 에메랄드가 키우고 싶어했고 자신이 길들이는 데 실패한 말의 이름을 따서 진 재킷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놉>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방송에서 포착하기 원하는 대상이지만, '눈'과 연관된 폭력성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들을 둘러싼 백인, 황인(아시안), 흑인 캐릭터들의 관계성이 크게 차이난다는 점입니다.
(1) 헤이우드 목장, '럭키'
첫 번째 사례는 헤이우드 목장의 말들입니다. <놉>에는 여러 말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 '럭키'는 OJ와 에메랄드의 흑인 목장에서 길러지다가 백인 감독과 스태프들이 있는 영화 광고 촬영장으로 이동하고, 촬영이 무산되면서 결국 아시안인 주프의 테마파크에 팔려나가는 과정을 거치는 말입니다.
럭키를 아끼는 헤이우드 남매와 다르게 백인과 아시안 캐릭터들은 명백하게 럭키를 존중하지 않습니다. 럭키가 촬영장에서 발길질을 한 것은 말의 눈을 쳐다보거나 뒤쪽에 서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고지했음에도 스태프가 그의 눈 앞에 원형 거울을 들이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종일관 럭키를 신기하다는 듯한 태도로 구경했으나 정작 럭키에게는 휴식시간을 주지 않고 다른 출연자의 준비 시간에 맞춰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주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헤이우드 목장에서 사들인 말들을 6개월간 UFO(진 재킷)에게 줄 먹잇감으로서 사용해왔습니다. 테마파크에서 쇼를 벌일 때는 럭키에게 상자 밖으로 달려나가 UFO(진 재킷)의 시선을 끌고 잡아먹힐 것을 종용하죠.
(2) '고디가 왔다' 코미디 쇼의 침팬지 '고디'
두 번째 사례는 '고디가 왔다'에 등장하는 침팬지 '고디'입니다. <놉>의 프롤로그를 열기도 했던 '고디가 왔다'는 과거 주프가 출연했던 코미디 쇼 프로그램입니다. 이들 쇼에서는 세 명의 백인과 한 명의 아시안으로 이루어진 휴스턴 가족(아버지 브렛, 어머니 마가렛, 누나 할리, 남동생 마이키(주프))이 애완 침팬지 고디를 기르는 내용을 다루는데요. 이 침팬지는 1998년 '고디가 왔다 시즌 2: 생일 파티' 에피소드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때는 휴스턴 가족이 고디의 생일을 축하하는 에피소드.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던 방송은 누나 할리가 연 거대한 선물 상자에서 풍선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일변합니다. 풍선이 터지는 큰 소리에 흥분한 고디가 출연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명소리가 이어진 이후 고디는 아버지 브렛을 포함한 출연자들을 살해하고 누나 할리 역의 출연자의 얼굴을 뜯어먹습니다. 고디에게 공격을 받지 않은 것은 남동생 역을 연기했던 아시안 주프뿐이었죠. 어린 주프는 백인 출연자들을 폭행하는 고디의 모습을 숨을 죽이고 지켜봅니다. 곧이어 숨어있는 주프를 발견한 고디가 식탁으로 다가옵니다. 서로를 마주보던 둘이 마치 인사를 하듯 천천히 주먹을 맞대려는 찰나 고디는 총소리와 함께 사살당합니다.
손을 맞대려는 듯한 주프와 고디
사실 고디가 주프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식탁보로 인해 눈이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디가 손을 내밀었던 것도 천을 걷어내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있죠. 하지만 주프는 그때 고디와 주먹을 맞댈 뻔한 경험으로 자신이 동물과 완전히 교감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에게 '고디가 왔다' 쇼는 끔찍한 참사가 아니라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준 방송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날을 추억하게 하는 물품을 직접 수집해서 테마파크 사무실에 전시하기까지 합니다. 실제로도 주프는 그 사건 덕분에 유명세를 탔기도 했거든요. 경악스러운 일이지만 '고디가 왔다'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SNL에서 패러디 코미디를 하기도 했다네요.
(3) 진 재킷(UFO)
진 재킷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주프
진 재킷과 처음 접촉을 시도한 것은 아시안 주프입니다. 고디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우월감이 생긴 주프는 진 재킷 또한 자신이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돈을 받고 관객들을 불러모아 진 재킷을 소개하는데, '럭키'가 먹이 상자에서 나오는 걸 거부하면서 주프를 포함한 테마파크의 모든 사람들은 진 재킷에게 통째로 빨려들어가 잡아먹히게 됩니다.
흑인인 OJ는 진 재킷이 생물이고, 말 '럭키'나 침팬지 '고디' 등 여타 동물들처럼 눈을 마주치는 게 공격성의 트리거라는 것을 파악합니다. 테마파크의 관객들이 진 재킷에게 잡아먹힌 이유는 모두가 그것의 모습을 홀린 듯이 구경했기 때문입니다. OJ나 에메랄드에게도 진 재킷의 모습을 똑바로 보고 싶은 유혹이 찾아왔었으나 남매는 'NOPE!'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털어냅니다. 진 재킷의 습성을 이해한 OJ와 에메랄드는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우물 카메라로 진 재킷의 사진을 찍는 것에 성공합니다.
끝내 잡아먹히는 홀스트 감독
한편, OJ와 에메랄드의 연락을 받고 진 재킷을 촬영하던 백인 다큐멘터리 감독 홀스트는 주프와 마찬가지로 결국 잡아먹힙니다. 그는 여타 잡지에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촬영 실력으로 유명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마도 눈을 마주치면 살아남는 게 불가능한 진 재킷을 자신이 찍을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주인공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해 진 재킷에게 가까이 다가간 그는 결국 카메라와 함께 사라집니다. 백인으로 추정되는 TMZ의 파파라치도 비슷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오토바이에서 고꾸라진 다음에도 카메라를 찾을 정도로 진 재킷에게 집착하던 그는 눈이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헬멧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빨려들어가게 되죠.
럭키, 고디, 진 재킷의 사례를 종합하면 의미심장한 인종·역사적 우화가 느껴집니다. 백인, 황인(아시안), 흑인으로 나뉜 이 거대한 세 분류에서 진 재킷으로부터 살아남은 것은 동물과 가장 가깝게 지냈고 그것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조심한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인 엔젤) 뿐입니다. 백인은 동물을 존중하지 않은 채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똑바로 쳐다보는 우를 범하고, 아시안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훗날 부를 얻고 그들을 상업적으로 사용하죠(마치 유사 백인처럼요. 주프에게는 백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엿보이는데, 그의 첫사랑과 지금의 아내는 둘 다 백인 여성입니다).
작중 진 재킷을 찍는 카메라가 휴대폰 카메라, CCTV 카메라, 수동 카메라를 거쳐 점점 기술적으로 퇴보한 끝에 결국 가장 투박한 우물 카메라로 촬영에 성공한 것도 무척 재미있습니다. 시각의 폭력성은 과학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서 더욱 교묘하고 첨예하게 진화하게 됐지요. 우리는 이제 공장식으로 자연을 착취하고, 스크린 속의 피사체를 몇 번의 클릭만으로 전국적으로 유포하고 관음하는 게 가능합니다. 훨씬 더 먼 거리에 있는 대상도 바라볼 수 있게 됐기 때문에 '고디가 왔다' 쇼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도 감정적인 공감 없이 유흥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겁니다.
백인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주제로 잡은 글이지만 사실 전 <놉>을 극장에서 보고 나왔을 당시 주프가 유독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았는데요. 고디 쇼에서는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백인 가족에게 애완되는 아시안이었던 그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앞장 서서 동물을 소비하는 게 우습게 느껴졌거든요. 카우보이 모자에 꽃무늬 정장을 입고 백인 배우자를 데려온 그에게선 본인의 그림과는 잘 맞지 않는 강한 열망이 느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유사 백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소위 말하는 '선진국' 반열에 든 우리가 백인의 가해자성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