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기 사무실 공간은 어때야 할까
보증금이 없던 초창기.
예쁘게 꾸며진 마포의 힙한 공유오피스에 세를 살다가
같이 쓰는 홀에서 미팅이 너무 잦은 것 같다고 컴플레인을 받은 어느 날,
내 사무실을 찾기로 결심했다.
내가 원한 세 가지 필요충분조건.
‘개별 화장실이 있을 것’,
‘1층일 것’,
‘주차가 가능할 것’.
가진 예산에 비해 까다로운 고객이다.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만족하면서 예산까지 맞추는 곳은
마포 어디에도 없다고,
부동산에서도 손사래를 쳤다.
포기 직전일 때,
아니 밤마다 온 부동산을 다 뒤지던 나는
오래전부터 즐겨보던 블로그에
반가운 글이 뜬 걸 발견했다.
옆 동네 빈티지 소품가게의 주인이었다.
반신반의로, 메시지를 보내 공간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신기한 골동품이 가득한 그곳에
언젠가는 꼭 가봐야지 했는데
물건이 아닌, 공간을? 보러 가게 될 줄이야.
처음 방문한 날,
친절한 사장님 부부와 긴 수다를 나누고
이런 좋은 분들이 머물던 곳이라면
우리에게도 잘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계약을 하기로 한 날,
직접 만드신 도자기 컵과 프랑스 빈티지 전화기를 샀다.
전화기를 갖고 싶던 건 당연히 아니지만,
이 첫 공간을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었다.
그곳이 Holidaylab의 첫 번째 보금자리였다.
다세대 주택 1층.
도로에 면해 있지도, 눈에 잘 띄지도 않았지만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주택으로 지은 터라 바닥에는 난방이 들어왔고,
공간의 크기도 내 취향대로 손 보기에 딱 좋았다.
네 개의 책상만이 나란히 놓인 사무실에서
의자만 돌리면 언제든 대화가 가능했다.
누구 한 명이 전화를 받고 나면,
그 내용에 대해 우리끼리 한 두 마디 얘길 나눌 정도로
모든 것이 시시콜콜 공유되는 공간이었다.
서로의 근황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각자의 리듬이 조화를 이루었다.
바쁜 날들이 이어졌지만,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아늑했던 공간도,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내부에 있으니 청소도 자주 해야 했고
겨울철 부츠를 신고 온 손님이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시고도 한참을 신을 신고 계실 때면 어딜 보고 있어야 하나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름철의 미팅에 예상치 못한 대가족이 방문한 바람에
우리 중 누군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벗어 드린 적도 있었다.
한편 심경이 예민한 날의 내가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왠지 공간 전체가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게 일상이었다.
팀원 중 누군가 일하다 깊은 한숨이라도 쉬면
문제가 있나? 불만이 있나? 괜스레 혼자 신경이 곤두섰다.
쉴 새 없는 타자 소리가 귀에 꽂힌 날들은 부지기수고.
무엇보다 대표로서 민감한 전화를 받아야 할 때가 힘들었다.
발주처가 비용을 낮춰달라거나,
계약이 취소되어 미안한 전화를 받거나,
혹은 내가 협력사에게 금액 협조를 해야 할 때 등등...
남을 보는 눈이 예리한 사람이라
남의 눈치 또한 너무 많이 보는 나에겐
그 공간이 좋으면서도 참 여러모로 불편했다.
일에 치여 밤마다 잠이 잘 안 오던 시기에는
낮에 갑자기 몰려오는 잠을 해결하려
사무실 앞 뜨거운 차 안에서 30분씩 눈을 붙이고는 했다.
그렇게 점점 공간의 부피가 작게 느껴질 즈음
새로운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해가 잘 드는 3층 정도'
'층고가 높은 공간'
그리고 '나만의 방'?
월세를 높이지 않고서야 쉽게 이뤄질 리 없는 조건이지만
어찌 보면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정신없이 바쁘던 날들 사이 임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통보라 눈을 비비고 다시 읽었다.
바쁜 일은 원래 몰려서 온다는 건 잘 알지만
이 정신 없는 와중에 우리 공간까지 옮겨야 한다니...
그런데 정말로,
막연히 바라기만 했던 조건을 거의 그대로 갖춘 공간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됐다.
여댓 군데의 부동산 사장님이
나의 요구사항에 맞춰진 곳을 찾으려다
다 포기하고 떠날 즈음.
우연히 또 우연히,
이번엔 맞은편 공사장 임시사무실이었던 공간이 갑자기 매물로 나온 것이다.
해가 잘 드는 3층.
시원하게 높은 층고.
그리고 마침내, 내 방.
어느새 자리마다 차곡차곡 놓인 이삿짐 바구니를 넘어 다녀 가며, 무더위에 이사 갈 사무실 공사까지 하느라 매일 땀범벅이 되어 돌아와 야근을 하던 팀원들.
그 해의 여름은 유난히 무덥게 기억된다.
어쨌든
나의 바람이 또 이렇게 현실이 되는 거겠지, 한숨을 쉬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를 했고,
이제 팀원들과 나 사이에는
10mm의 얇은 유리로 된, 투명하지만 차단된 구획이 생겼다.
해가 잘 드니 식물도 잘 안 죽는다.
아니, 죽어도 이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종종 이전 사무실에서의 분위기를 떠올린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웠던 거리.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태를 알아챌 수밖에 없던 장면들.
어느 날 막내 직원이 그런다.
그 말을 들으면
나도 괜히 마음이 찡해진다.
질문이 많을 저 연차 직원 입장에서는
지금의 구조가 어쩌면 답답할 것을 안다.
그래도, 나에게서 정해진 답을 바로 듣는 것보다,
조금은 헤매며 스스로 길을 찾아 익혀가는 게
훨씬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여태까지는 나 하나의 성장과 동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면
이젠 한명 한명의,
함께하는 모두의 성장이 더 의미 있는 때가 되었기에
나 또한 나의 속도에 모두를 맞추려들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다짐뿐만이 아니라
얇은 유리 한장 정도의 물리적 거리는 필요하다.
큰 회사의 직원이던 때,
리더인 본부장님은 방 안에 계시니
분명한 아젠다가 없으면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
회의할 때만 본부장님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그분을 가장 잘 아는 사수가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그 방에 들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특별하고도 떨리는 순간이었다.
본부장님 책상에 널려있는 서류는 눈에 안들어왔고
스케치나 잡지들을 보며 디자이너로서 동경할 따름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막내처럼,
내가 하는 일과 리더가 하는 일의 차이를 잘 몰랐을거다.
그러니 매순간 더 용감했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가끔씩 하곤 한다.
의자만 살짝 돌려 “이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고 묻던 그때의 우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숨이나 타자 소리마저 내가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동력이었던 그 시간이 앞으로 더욱 귀중해지리라는 생각을.
지금도 모든 게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늘 다음 페이스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사업의 가장 재밌는 점이라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