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밖에서 배우는 것들

모든 건 인복 덕분이었나

by 반달



회사원 시절.



1년차 때였나, 팀에서 설계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완공되어 실물을 보러 간 일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꽤 주목받았던 공간이었고, 엄청 큰 기대를 가지고 현장에 방문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당선되어 몇 년에 걸쳐 준공이 된 건물이었고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디자인을 했던 선배들이 우러러보였고, 나도 빨리 성장해서 이런 공모를 성공시키는 일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답사를 하는 내내 영 아쉬운 지점들이 있었다.

‘여긴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왜 저런 마감은 저렇게 끝났을까.’
‘디자이너의 감독이 끝까지 미치지 못한 이유가 뭘까.’


당시의 회사에서는 워낙 큰 프로젝트만 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시공 과정을 직접 겪어볼 일은 없었고, 궁금해진 질문들을 미처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은 ‘그림’ 그려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시작된 호기심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던, 꼬리처럼 따라왔다. 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미있긴 했지만 설계자가 실제로 사람들의 일상에 닿고 손을 거치는 경험들까지도 관여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소규모의 건축에선 가능할 지 몰라도, 아니 그렇더라도 건축을 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챙기기란 사실 '인정을 받기는 어려운데 소신껏 하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어쨌든 절이 맘에 안들면 중이 나가야 할 일.

결과적으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일단 궁금하니까 직접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인테리어 업계에 넘어와 보니, 건축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겨도 될 일들이었던 마이크로 사이즈, 아니 나노 사이즈의 안건들이 와르르 내 책상으로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 어디 한번 해봐! 라는 듯이.


게다가 직접 시공까지 맡아 현장을 진행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느낀 건 ‘경계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당혹감이었다.


인테리어 업계엔 설계와 시공 사이의 선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선을 너무 명확히 긋는 게 설계자로서 무책임한 거라고 말하던 내가 스스로 발등을 찍은 거나 다름 없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항상 보람찼지만,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닌 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더구나 대부분의 개인 클라이언트는 실제 생활해야 하는 공간을 의뢰하기 때문에 디자인보다는 시공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

특히나 저예산 프로젝트에서 디자인은 일종의 서비스처럼 여겨지는 환경이었고, 많은 업체들도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 같았다. 디자인비용이 따로 산정되어 있어서 수주하지 못한 프로젝트도 꽤 많았다.


그런 체계 속에서, 수주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디자인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의 이윤은 작아졌다. 시소를 타는 기분이랄까.


클라이언트와 약속한 예산으로 고를 수 있는 타일은 몇 없었고, 결국 손해를 보면서도 좀 더 예쁜 것을 택하게 됐다. 그래도 우리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공간인데…


같이 일하던 팀원은 종종 회사 이윤을 생각해야 하지 않냐는 근심 어린 말을 하기도 했지만 당시엔 나도 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변수들이 튀어나왔다.


도면에는 단순히 지시사항 하나로 툭 표기하고 넘겼던 것들이 현장에 오면 그 앞뒤로 수많은 고려사항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무엇보다 현장에 계신 작업 반장님들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못할 때가 제일 곤혹스러웠다.


마감의 질, 선의 정렬, 라인의 미묘한 연결 하나하나를 그릴 수는 있어도 현장에서 구현해내는 감리자가 되기 위해선 시간, 돈 둘 중 하나는 쏟아부어야 한다. 더구나 속성으로 배우는 나는 그 둘 다를 콸콸 쏟아야만 했다.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이치지만.


아침 7시 반부터 밤늦게까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날들이 이어졌다. 현장에 있건, 사무실에 있건, 집에 있건 상관없었다. 그러다 문득 전화가 안 오면 잠에 못 드는 불안 증세가 찾아왔다.

낙관적인 평화주의자인 내가 타인에게 소리를 칠 줄 아는 사람인 것을 현장을 하면서 처음 알았다.



자주 생각했다.


내가 그 동안 진짜 온실 속의 화초로 살아왔다는 걸.

계속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데 제 발로 걸어 나왔으니, 이 또한 내 팔자라는 걸.



아이가 아직 어렸던 시기여서, 저녁밥을 먹이다가도 황급히 일어나 전화를 받다가 돌아오면 아이 밥이 다 식은 적도 많았고, 겨우 잠든 아이 옆에서 이불속에 숨어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하다가 아이가 깨는 바람에 곤경에 처하는 날들도 있었다.


현장이 돌아가고 있으면 늘 불안하니 날이 새길 기다려 이른 새벽 현장에 가 보면 평화로운 공기에 잠시 한 숨을 돌린다.


그러면 이내 강력한 폭풍이 몰려온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기세로.


그래 이번엔 아무 일 없겠지, 하면 돈이 문제가 되고 미리 이런 저런 대비를 다 하고 이제 정말 괜찮겠지, 하니 일 잘하는 베테랑 목수가 손을 톱질했다는 연락이 오는 식이었다.


그 과정을 겪고 나니,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다.


갑을 관계, 학벌 유무, 전과 유무, 경력 유무... 다 필요 없는 곳이 현장이다.

대표니까 청소도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철물점 심부름도 해보고, 실리콘도 직접 쏴보고, 페인트 까진 곳도 칠해보면서 공정과 공정 사이의 연결 과정을 몸소 느끼다보면 오히려 내 일의 진가를 알게 된다.


이제 현장소장이라고, 디자이너라고 팔짱 끼고 있는 사람과는 더 같이 일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디자인은 그저 유려함을 추구하는 작가정신을 요한다기보다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핵심만 남았다.

배려와 공감.






21년의 여름.

옥탑 층의 25평 남짓한 공유오피스 공사를 맡고 있었다.

공간의 규모가 크진 않았어도 앞마당처럼 쓸 수 있는 넓은 옥상 바닥을 가진 곳이었다. 넓은 옥상을 조경으로 꾸며 사무공간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통창을 만들기로 했다.

통창을 설치하기 위해 외벽을 신나게 철거한 다음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아침을 맞았다.


아.....


놀라고 있을 시간도 없다.
주말이었다.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부로 물이 들이치는 걸 막기 위해 사람을 구해보려 했지만 당장에 달려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 말고는.


아이를 데리고 있던 남편조차 “혼자 애쓰지 말고 사람을 불러”라고 말했지만, 그건 이론에 불과한 말일뿐.


결국 나는 철물점으로 달려가 생전 사본 적 없는 파란 천막을 몇 마 샀다. 엘리베이터 없는 현장에 도착해, 그 무거운 천막을 들고 황급히 계단을 오르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필이면 층고가 높아 계단도 유난히 높던 곳.


옥탑에 도착할 즈음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그동안 잘 붙잡고 있던 멘탈이 와르르 무너질 위기였다.


어쨌건 짐을 내려두고, 혼자 어떻게 설치해야 할지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쓱 들어왔다.


세상에나, 귀신이라도 반가울 순간이었다.


기적처럼 금속 업체 사장님이 나타났다.

어제 미팅하면서 실측을 했는데 미비한 곳이 있어 일정상 비가 오는데도 확인하러 들르셨다고 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하나님께 일단 감사 기도를 올리고, 사장님과 함께 천막을 치고 옥탑 지붕에 벽돌을 올리며 그날의 위기를 함께 넘겼다.






그런 날들은 수없이 반복됐다.

항상 '미처 생각지 못한 사건'은 터졌고,
그럴 때면 또 마침 '미처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도와주었다. 지나고 보면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일'들이 그렇게 해결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운이 항상 따랐던 건 아니다.

때론 아무리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봐도 역부족인 순간들이 있었다.

공사가 시작되면 진행되는 내내 극도의 긴장을 하고 있다가, 이제 다 끝났다고 한숨 돌리면 꼭 엉뚱한 데서 지뢰가 펑하고 터지는 격이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미 100KM로 달리는 차에서 멀미 난다고 뛰어내릴 순 없으니까.


유턴? 애초에 그런 옵션은 없었다.


그게 답이었든 아니든,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봐야만 결과를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초기엔 주변에 시공을 해본 인테리어 디자이너 친구가 없어서 더 외로웠다.

그래도 요즘은 동종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졌는데, 그럴 때면 알게 된다. 내가 겪은 고생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걸.


사람 문제, 하자 문제, 지급 문제, 직원 문제 … …

이 바닥에서 모두가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는 걸.

오히려 나는, 약과였구나 싶을 때도 있다.


떠올리면 괴로운 순간들은 많지만

단 한 번도 오롯이 혼자였던 적은 없었다.


필요할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꼭 누군가가 내 옆에 나타나

도와주고, 지켜주고, 함께 있어주었으니까.


나는 어쩌면, 그냥 복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복은, 모두 ‘사람’으로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