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의 15년에 대해.
흰머리가 까만 책상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꽤 긴 머리카락이었다.
지금 내 머리 길이에 아주 딱 맞는, 너무 자란 것도 덜 자란 것도 아닌.
내 머리카락 중 어디에선가 이 친구는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머리카락 중에 이렇게 굵고 튼튼한 흰머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얼마 전 <김 부장 이야기>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많은 생각이 드는 드라마였다.
단순히 한 가장의 이야기를 넘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그 극 속의 김 부장이 되기도, 아내가 되기도, 또 어릴 적 신입사원의 나를 떠올리게도 되었다.
한편, 한편을 넘길 때마다 여러 주인공들 가운데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대상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었다.
잊고 지내던 오래전 기억 속 회사 생활의 한 단면들이 무심결에 생각나기도 하고, 그때의 동료들과 상사가 했던 한마디 한마디가 떠올라 다들 잘 지내는지 아련함도 들곤 했다.
큰 조직 안에 있으면야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할 그 감각을, 외딴섬의 자영업자에게 다시 들추어준 드라마였달까.
그리고 예전의 나라면 그 드라마 주인공 중 신입사원 또는 중간급 직원을 나로 비추어 생각했겠지만, 어느덧 나는 그 직원들이 아니라 김 과장, 또는 김 과장의 아내, 혹은 김 과장의 친구의 나이를 지나고 있음을 현실적으로 느끼게 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들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지금 나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
아침 회의를 마치고 외근을 나가기 직전, 이것저것 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하고 잠시 글을 쓰려 핸드폰을 들었다.
출발해야 하는 시각까지 단 15분의 여유가 내게 지금은 글을 쓸 시간이라고 허락해 준 덕분이다.
내 방은 사무실 가장 안쪽 유리방이다.
이전에 글들에 남겼듯 사실 나는 끝까지 내 자리를 유리칸막이안에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사무실을 두어 번 옮기면서 결국엔 유리로 된 내 방이 생기게 됐다.
여러 이유에서였지만 이제는 직원들도 그게 더 편한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혼자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정말 그에 맞게 나의 모습도 변해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문득,
유리창 너머에 있는 직원들은 요즘 어떤 생각으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상에서는 가까운 선후배처럼 (이라고 나는 느낀다만) 주로 일 이야기나 가벼운 대화를 하는 게 전부이니 크게 감각하지 못하는, 하지만 아주 분명한 사실은 저 친구들과 내 사이에는 유리 한 장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15년이 넘는 시간이 우리 사이에는 존재한다.
그 시간의 무게에 대해 특별히 괘념치 않고 지내다가, 이번에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보면서 극 속의 다양한 주인공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이 나와 내 직원들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계속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을 조금 인정하게 되었다.
뭐 아주 똑같진 않아도, 형태만 다른 그 어떤 거리감에 대해.
그렇다면 그 10여 년의 시간 동안 내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내 안의 나는 계속 그대로인데, 남이 보는 나는 뭐가 달라져있나?
아이를 낳았고,
회사를 두세 번 옮겨봤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러는 사이 나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했다.
만삭에 배운 운전을 이젠 능숙하게 잘하게 됐고,
작지만 하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가 됐고,
그러고 보니 내 주변의 친구들도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있네..!
여전히 나는 나를,
이십 대의 밤새며 열심히 일하던 디자이너로 생각할 때가 많지만, 공교롭게도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는,
객관적 지표들로 설명되는 나로부터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으로 나를 보니 나는 이제 꽤 살만큼 산,
40대의 여성이자 40대의 엄마이고,
40대의 사회인이자 40대의 리더인 것.
어느 하나도 귀엽거나 가볍게 여겨지는 것이 없다.
최근에 내가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나를 이렇게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고 있는 것, 내가 보고 있는 것,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 보고 지내지 않았던가?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며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 핑계로 나 자신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살피는 일은 항상 미루고 미루던..
왠지 하고 싶지 않은 숙제로 방치하며 지내왔던 것은 아닌가?
퇴직하고 자신의 타이틀을 다 잃고 방황하는 김 부장이,
대기업에 서울 자가로 살던 김 부장을 마주했을 때처럼.
가장 솔직하고 투명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 일.
어쩌면 너무 불편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40대의 일’이 아닐까?
그리고 또 한 가지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가 오늘 아침 출근길 차 안에서 문득 떠올랐다.
그건 바로
할머니에게서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쁜 엄마 아빠 대신
할머니 손으로 돌봄을 받고 자란 내게 부모 이상의 존재인 할머니는 역시나 큰손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다.
학교 다닐 때도, 회사원이 됐을 때도, 회사를 차리고 나서도 늘 내 걱정은 멈추질 못하셨다.
수능을 내 기대보다 못 봤던 그날
나는 할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일하게 대성통곡을 했다.
그만큼 내게 많은 기대와 애정을 주던 대상인데
그런 할머니의 전화가 끊겼다는 의미는 할머니도 이제는 전화 너머로 내 목소리를 분간하실 만큼 젊지 않으시다는 것도 있고,
그만큼 나도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하겠다.
그리고 더 큰 변화는
할머니 전화가 요즘 아예 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가 예전만큼 걱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또한 쓸쓸한 지점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덤덤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불과 작년만 해도,
잘 안 들리신다면서도 한 번씩 전화를 하시곤 했는데.
수화기 너머로 ‘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되었다,
사랑한다 우리 손녀‘라고 혼자 말하시고 끊으시기라도 했는데.
가끔은 바쁜 와중 받기 곤란하기도 한 할머니의 안부 전화가 뜸하다 싶으면 꿈에 매일 할머니가 나올 만큼 내 걱정거리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도 나를 더 이상 방해하진 않는다니..
비단 나이 듦 때문만이 아니라 할머니의 전화가 아니어도 내가 생각할 게 너무 많기 때문이란 걸 알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쩌면 유리창 밖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그런 단단해진 삶의 겹들이 무수히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하얘진 머리카락처럼,
언제 이렇게 생겼나 싶은 발끝의 굳은살처럼.
지금은 아주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아도
웬만해선 차를 타고 다니니 괜찮고,
매달 원룸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며 당장 떠날 계획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어도
텅 빈 통장을 보고 걱정하던 시절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된 건 어쩌면 저 짧지 않은 10년, 15년의 시간 덕분이다.
온라인 세상 속 수많은 부자들이나 인플루언서를 보면 가끔 나는 대체 뭘 이루었나 싶은 때도 있지만
사실 시간은 그냥 나를 스쳐 지나간 것은 아니었던 거다.
앞으로도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할 것이고,
저 친구들도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겠지.
우리는 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료이자 친구로
지금 이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장 친밀한 동지인 것.
나도 언젠가는 이들의 숱한 세월 속에 한때의 동료였던,
자기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던 상사로 영원히 남겠지.
그 기억 속의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다.
우리 모두는 시간이 가는 것과 별개로
내가 가장 익숙한 나 자신으로 계속 살아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