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0일
잘 때 라디오 틀어놓고 자는 버릇이 있습니다.
불 끄면 껌껌해 무섭기도 하고, 새벽에 깼을 때 누군가 옆에서 말하는 소리가 나면 안도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제도 자다 깼습니다.
라디오 소리가 들렸습니다.
익숙한 소리가 났습니다.
몸을 움츠리고 귀를 세웠습니다.
소리가 뚜렷했습니다.
그 밴드가 연주하고, 그 사람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야밤에 이런 노래를 틀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잠결에 노래를 듣는 재미가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꿈속에서 듣는 느낌 같기도 하고, 가상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뒤 노래가 끝났습니다.
움츠렸던 몸을 펴고 잠을 청했습니다.
머리에는 아직 그 밴드의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장면이 스르륵 지나갔습니다.
잠이 들 무렵이었습니다.
어렴풋이 생각납니다.
어떤 그림이었습니다.
그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파란빛 도는 무대이었습니다.
무대에 사내 셋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드럼,
한 명은 어쿠스틱 베이스
그리고 한 명은
금빛 단발머리에 왼손으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이 없습니다.
그 기억 속 그 밴드가 부른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제 잠결에 들었던 라디오 속 노래는 기억납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었습니다.
이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간에 ‘Smells Like Teen Spirit’가 왜 나오는 거지 웅얼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기억이 사라지기 전 그 밴드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일까?
어떤 무대인지는 알 수 있습니다.
맞을 겁니다.
그런 식의 무대는 이 것 말고 본 적이 없었습니다.
[MTV Unplugged In New York]입니다.
잠결에 들은 ‘Smells Like Teen Spirit’로 [MTV Unplugged In New York]을 떠올린 듯합니다.
20년 넘게 기억 저편에 있다가 어제 새벽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아침에 일어나 씻는 데 [MTV Unplugged In New York] 장면이 아른거렸습니다.
양치질하다 어떤 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한참 지나 그때 그 밴드의 노래가 이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뜬금없이 그 시각에 그 노래를 흥얼거리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추측과 상상으로 잠결 몽롱한 가운데 들은 노래를 ‘Come As You Are’라고 결론짓겠습니다.
너바나(Nirvana)의 1994년 라이브 앨범 [MTV Unplugged In New York]에서 ‘Come As You Are’를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