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3일
2017년 4월까지 재미있게 들은 앨범 몇 개를 적습니다.
Mors Principium Est - [Embers Of A Dying World]
Battle Beast - [Bringer Of Pain]
Kreator - [Gods Of Violence]
Overkill - [The Grinding Wheel]
Sepultura- [Machine Messiah]
Six Feet Under - [Torment]
Deep Purple - [Infinite]
Havok - [Conformicide]
Six Feet Under - [Torment]
레이블
메탈 블레이드(Metal Blade)
멤버
크리스 반스(Chris Barnes) 보컬
제프 휴헬(Jeff Hughell) 기타, 베이스
마르코 피트루젤라(Marco Pitruzzella) 드럼
수록곡
① ‘Sacrificial Kill’
② ‘Exploratory Homicide’
③ ‘The Separation Of Flesh From Bone’
④ ‘Schizomaniac’
⑤ ‘Skeleton’
⑥ ‘Knife Through The Skull’
⑦ ‘Slaughtered As They Slept’
⑧ ‘In The Process Of Decomposing’
⑨ ‘Funeral Mask’
⑩ ‘Obsidian’
⑪ ‘Bloody Underwear’
⑫ ‘Roots Of Evil’
미국 데스메탈(Death Metal) 그룹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의 열두 번째 앨범입니다.
보컬리스트 크리스 반스(Chris Barnes)는 1993년 식스 핏 언더를 결성할 무렵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빠르고, 거칠고, 공격적인 데스메탈 말고
리듬감 있고, 절제되고, 템포 조절이 가능한 데스메탈을 하고 싶다.
이 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식스 핏 언더는 25년 간 자신의 정체성을 잘 유지해온 것이 됩니다.
헤비메탈 계에서 이만큼 사운드의 흔들림 없이 자기 노선을 지켜온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게 합니다.
현재 식스 핏 언더에서 결성 당시 멤버는 보컬의 크리스 반스가 유일합니다.
그동안 보컬을 뺀 자리에 여러 뮤지션이 오고 갔습니다.
최근 10년간 멤버 교체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멤버 변화는 밴드에게 이로울 게 없습니다.
새로운 피, 새로운 기조 같이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밴드의 경우에는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멤버 이동이나 교체를 보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되도록 피하고자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합니다.
최선은 멤버 교체 없이 가는 것일 겁니다.
음악계에서 정체성은 유지, 활동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음악의 성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계에서 정체성은 보수성을 띕니다.
음악계 외부의 입김이 센 탓일 겁니다.
음악계 내부와 음악계 외부의 기싸움은 외부의 승리로 기운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느 기업체에 꾸준히 팔리고 있는 상품이 있습니다.
이 상품의 매출이 해당 기업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절대적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상품 판매가 주춤하자 여러 의견이 나옵니다.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상품에 변화를 줄 때가 되었다.
공략층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경영진은 교체를 감행합니다.
공략층을 충성 고객인 장년 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순환 조정을 하는 것과 동시에 상품 디자인을 바꾸고 상품 성분에 대해 소비자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수정하도록 지시합니다.
상품이 새로운 얼굴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끔 유혹합니다.
지갑이 열리고 상품 판매가 상승 곡선을 그립니다.
상품은 세대를 아우르며 자리를 잡습니다.
이렇게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업에게 이상적인 상황일 겁니다.
현실감이 떨어지지만 어쨌든 새로운 시도, 새로운 피로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음악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봅니다.
음악, 음악은 보수적인 경향을 띕니다.
새로운 변화, 수혈에 눈살을 먼저 찌푸립니다.
자신의 흐름, 노선이 흔들리는 것에 적대감을 표합니다.
기업은 변화로 자신을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마케팅과 연관해 작용합니다.
문학의 경우는 어떨지 보겠습니다.
소설가 한강이 추리소설을 발표했다.
소설가 이문열이 코믹만화 각본을 썼다.
시인 아무개가 성인가요 가사를 냈다.
예로 든 내용이 억지스러운 감이 있기는 하지만, 엄숙주의가 만연한 문학계는 헛웃음을 지을 일입니다.
음악만큼 문학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입니다.
스스로를 가두는 벽이었던 등단 문제도 몇 달 전에야 문호를 열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등단이라는 이름의 장애물을 새워놓고 그것을 넘는 사람에게 작가 칭호를 붙여주었던 겁니다.
등단에 통과하지 못한 작가를 서자 취급하는 것도 비일비재했습니다.
문학은 보수 성향이 강합니다.
다시 음악으로 돌아가, 음악은 문학과 성향이 비슷하지만 명백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문학은 문학 내부가 보수적입니다.
문학 체계가 보수적이라는 뜻입니다.
그에 반해 음악은 음악 외부가 보수적입니다.
음악 소비자가 보수적이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앨범을 냅니다.
소비자가 구입을 합니다.
소비자가 앨범을 듣습니다.
소비자가 앨범을 평가합니다.
평가 기준은 무엇일까?
이전 세대와 연결고리는?
같은 장르 음악은?
다른 장르는?
연주 방식이 비슷한 동료는?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을 겁니다.
이전에 낸 앨범을 기준으로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용필이 신보를 냈을 경우, 앨범을 듣고 어떻다 말하기 위해서는 잣대가 필요합니다.
신보를 듣기 전, 조용필은 어떤 음악인이다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신보를 듣고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어떤 음악인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들은 경험이 될 수 있고, 본 경험이 될 수 있고, 읽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경험을 통해 신보를 듣습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생각을 내놓습니다.
좋았어, 싫었어, 보통인데.
조용필의 신보에 유로 댄스가 담겨있다고 설정합니다.
유로 댄스를 들은 소비자는 당황해할 것입니다.
경험으로 알고 있는 조용필의 음악에서 유로 댄스가 낯설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 왜 이전과 다를까? 이거 변했네, 뭐 하는 거야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참신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대상이 조용필의 음악이라면 부정적인 의견이 더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였다면 어떤 반응이 일었을까?
영화는 내부, 외부 모두 음악보다 개방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멜로드라마를 찍어다 했을 때, 반응을 이런 식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뻔한 드라마, 뻔한 감독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참신한 시도, 장르의 확대, 적절한 전개와 적절한 연출, 박찬욱의 새로운 면, 이런 반응도 가능합니다.
어떤 반응이 우세했을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여러 시각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경쟁을 부추깁니다.
장르의 고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작품의 가치에 어떤 시도, 어떤 조정이 담겼는지를 봅니다.
몇 세대 이전 영화와 연관성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자료를 쌓아갑니다.
조용필의 유로 댄스는 음악계에서 환대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음악계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외부에서는 손사래가 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포용성이 넓은 소비자라도 조용필로 음악인을 좁혔을 때 쉽사리 손을 내밀지 못할 겁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너무 멀리 가버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내면을 보자면 조용필은 어떤 가수, 어떤 음악이라고 선정을 한 상태에서 음악을 들은 겁니다.
영화에서 관용을 베풀만한 변화가 음악에서는 냉소로 돌아올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은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악계 외부의 보수성은 내부의 의지를 꺾을 만큼 상대적인 힘의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음악계 외부를 대표하는 음악 시장, 음악 소비자는 경험으로 음악인을 읽고 판단합니다.
판단은 상대성이 아닌 절대성을 기준으로 합니다.
해당 음악인의, 해당 음악인에 의한, 해당 음악인을 위한 시각으로
해당 음악인을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긴장감은 팽팽하게 유지됩니다.
음악계 내부와 외부에서 내미는 잣대가 보수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앞서 크리스 반스가 한 말을 다시 적습니다.
빠르고, 거칠고, 공격적인 데스메탈 말고 리듬감 있고, 절제되고, 템포 조절이 가능한 데스메탈을 하고 싶다.
여러 멤버가 교체되는 어려움에도 크리스 반스의 식스 핏 언더는 초기에 했던 말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식스 핏 언더는 리듬감, 절제, 템포 조절이 특징인 밴드입니다.
따라 하기 힘든 이들만의 특징이며 정체성, 색깔, 체질로 굳어졌습니다.
식스 핏 언더의 음악을 높게 평가하는 요소로 색깔의 유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외부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합니다.
파고 들어갈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빠르고, 거칠고, 공격적인 데스메탈 말고 리듬감 있고, 절제되고, 템포 조절이 가능한 데스메탈을 하고 싶다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너희들은 너의 방식대로 음악을 해,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할 테니까.
우리는 우리가 정한 색깔에 맞춰 나갈 거야.
이게 식스 핏 언더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말이야.
식스 핏 언더는 보수적인 밴드입니다.
새로운 것의 접근을 거부합니다.
딱 식스 핏 언더가 세운 기준 내에서 음악을 하고, 그것으로 앨범에 담습니다.
외부의 입김이 작용할 틈도 주지 않습니다.
보수적이면서 폐쇄적이라 할 수 있는 식스 핏 언더가 음악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 합니다.
멤버 교체가 적잖은 여건에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도 이들을 신뢰하는 데 한몫을 합니다.
음악 소비자는 보수적입니다.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허용치를 벗어나는 순간 음악인은 소비자의 날 선 눈빛을 맛보게 됩니다.
음악 소비자는 지금의 음악인이 과거의 음악인이었으면 합니다.
지금의 음악이 미래의 음악인이기를 원합니다.
독하게 이야기하면 박제를 해서 자기 마음에 담아둔다는 뜻이고, 돌려서 말하면 융통성이 떨어져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장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장르의 충성도가 높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떤 음악인이 기존 장르에 새로운 장르를 더했다 합시다.
새로운 장르의 역사적 의미를 가져와 따질까?
기존 장르와 새로운 장르의 비율과 상관관계를 고민할까?
이전 이런 식으로 장르를 섞었던 음악인이나 앨범을 고려할까?
현재 둘의 조합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쟁을 던질까?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음악 소비자는 그 음악인이 어떤 음악 장르를 해왔는지 떠올릴 거고, 거기에 이번 앨범이 얼마나 충족하는지 따져볼 겁니다.
결과가 충실히 이행되었다 싶으면 듣기 좋았다 할 것이고,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좋지 않았다 의견을 낼 겁니다.
그 음악이 좋다 아쉽다 이전에 기존 음악 장르, 박제화 시킨 색깔을 얼마나 만족시키는지 고려하려는 습성 때문입니다.
자주 보수성, 보수적이다 언급하는 이유도 이런 습성이 강하게 작용하는 탓입니다.
식스 핏 언더로 시선을 다시 돌립니다.
외부의 강한 보수성이 내부의 견고한 보수성을 만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모나지 않게 움직였고 꽤 좋은 조합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25년 가까이 식스 핏 언더가 데스메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까닭이었고, 꾸준하게 일정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습니다.
규모가 보잘것없는 수준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실은 누구보다 탄탄했습니다.
식스 핏 언더가 발표한 12장의 정규앨범에서 아쉬웠던 기억이 없었다는 점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거라 봅니다.
이번 12집 [Torment]에서도 식스 핏 언더는 예측 가능한 범위의 음악을 담았습니다.
보컬 한 마디로 크리스 반스가 부르는 곡이구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전부터 학습해온 식스 핏 언더의 음악에 속편이 하나 더해진 기분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겁니다.
되풀이하다 보면 질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데, 이들은 교묘하게도 함정에 빠지지 않습니다.
위험성을 미리 제거해 동요를 최소화합니다.
내부의 보수성은 물이 오른 지 한참 된 까닭에 돌처럼 단단합니다.
외부의 보수성은 이들의 충성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변함없는 음악을 한다고 엄지를 추켜올립니다.
식스 핏 언더의 1999년 3집 [Maximum Violence]와 2013년 10집 [Unborn]은 이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앨범입니다.
왜 보수적인 밴드라 했는지,
리듬/절제/템포 조절이 어떤 의미였는지,
예측 가능한 음악이라 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크리스 반스의 보컬이 어떻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보수적 성향의 음악 소비자가 이들에게 관대했던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등 여러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식스 핏 언더의 12집 [Torment]는 이번에도 만족스러웠습니다.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습니다.
식스 핏 언더에 남은 결성 당시 멤버가 보컬리스트 크리스 반스 혼자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현재 한 명 빼고 원년 멤버가 밴드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수성을 언급하면서 식스 핏 언더가 자신의 음악을 잘 보존해왔다고 덧붙여 말씀드렸습니다.
거기에 내부, 외부의 만족도가 높다는 점도 언급을 했습니다.
식스 핏 언더는 꾸준히 자기 음악을 만들어 온 거고, 소비자는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온 것으로 정리해도 무리가 아닐 겁니다.
이런 상관관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점은 좋은, 만족스러운 음악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체성도 빼놓아서는 안 됩니다.
식스 핏 언더 같이 보수성이 강한 밴드가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하면 존폐까지 고려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봐야 할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12집까지 식스 핏 언더는 식스 핏 언더 색깔의 음악을 만들어왔고, 소비자의 검증에도 큰 탈 없이 통과했습니다.
12장의 앨범은 식스 핏 언더를 상징하는 결과물입니다.
결과물은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공들여 매만진 흔적이 역력합니다.
크리스 반스가 멤버 조율을 잘 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식스 핏 언더에 크리스 반스의 역할이 컸습니다.
가끔 식스 핏 언더가 크리스 반스의 솔로 밴드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크리스 반스는 밴드의 작사가입니다.
그가 밴드의 곡 가사 대부분을 씁니다.
그의 입이 식스 핏 언더 생각을 대변합니다.
크리스 반스는 보컬리스트이자 작사가입니다.
확인한 바로 크리스 반스가 작곡에 참여했다는 자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앨범 프로듀서로는 이름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밴드의 작곡은 다른 멤버가 담당하든지, 외부 작곡자의 곡을 받습니다.
멤버 교체에 정체성 유지하느라 수고했다 말하고 싶습니다.
고정된 작곡자 없이 사람이 바뀌는 경황에도 공고히 정체성을 지킨 식스 핏 언더의 저력에 존경을 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식스 핏 언더의 2017년 12집 [Torment]에서 ‘Knife Through The Skull’을 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