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음악 경험

네오클레시컬메탈

장르

by 초록 라디오

시작

스웨덴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이 1984년 발표한 데뷔앨범 [Rising Force]는 헤비메탈 판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이 앨범으로 헤비메탈에 네오클레시컬메탈(Neoclassical Metal), 바로크메탈(Baroque Metal)이라는 장르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또한 속주 기타리스트들의 등장을 촉발했고 경쟁을 부추기며 기타 기술 발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6년 미국 기타리스트 토니 매칼파인(Tony Macalpine)이 [Edge Of Insanity]를 내놓았습니다.

이때까지 잉베이 맘스틴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으로 군림했습니다.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와 울리 존 로스(Uli Jon Roth)를 빼고 모든 기타리스트를 자기 밑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느 날 연습 시간을 늘렸다고 하는데, 토니 매칼파인의 [Edge Of Insanity]가 나왔을 즈음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잇감을 찾던 음악 시장에서 두 기타리스트를 그냥 둘리 만무이었습니다.

이 둘은 즉각 네오클래시컬메탈 판에서 경쟁자가 되었고 자동적으로 서로를 의식하며 활동해야 했습니다.

불꽃 튀는 대결은 볼 만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 선의의 대결은 풍족한 결실을 냈습니다.

기타 기술이 일취월장했고, 그에 따라 표현의 틀이 커지고 결국 헤비메탈이라는 그릇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장르만 놓고 보면 두 기타리스트의 데뷔앨범은 속주(Shred) 기타의 시작을 알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대중성과 작품성으로 잉베이 맘스틴과 토니 매칼파인을 평가했을 때, 인지도, 앨범 판매량 등을 고려해 대중성은 잉베이 맘스틴의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작품성은 토니 매칼파인의 우세로 의견이 모입니다.

당시 잉베이 맘스틴을 ‘바흐’, 토니 매칼파인을 ‘쇼팽’으로 빗대며 바흐와 쇼팽의 대결로 경쟁을 부추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현재

최근 네오클래시컬메탈 쪽에서 나온 앨범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선뜻 꼽을 만한 게 없습니다.

대부분 밴드의 일원으로 들어가 있고, 솔로 활동도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네오클래시컬메탈의 선조 잉베이 맘스틴은 예전만 못한 게 여실하고, 1990년대 이후 장르를 이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입니다.

심포니 엑스(Symphony X)의 마이클 로메오(Michael Romeo),
랩소디 오브 파이어(Rhapsody Of Fire) 출신의 루카 투릴리(Luca Turilli)나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 출신의 티모 톨키(Timo Tolkki)같은
걸출한 기타리스트가 있기는 하지만,
거목으로 성장하기에는 힘이 조금씩 부족했습니다.


현재 네오클래시컬메탈은 무주공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기타리스트들이 서로 피 튀기는 경쟁을 하던 1980년대, 잉베이 맘스틴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흐른 지금 네오클래시컬메탈의 옥좌에 주인이 들어서지 않고 있습니다.

누구다 딱히 꼽을 당사자가 없습니다.

누구는 너무 오래 자리에 있었고, 새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있고, 이 사람을 추천하자니 마땅찮고, 그렇습니다.

새로운 인물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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