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10)
1) 이른 봄 (9)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 시작은 ‘In einem kühlen Grunde’이었습니다.
노래에 담긴 사연이 크눌프의 현실을 암시합니다.
현실 크눌프는 사람들이 아는 그 크눌프와 차이가 있습니다.
크눌프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입니다.
그에게 하늘은 천장이요, 땅은 방바닥입니다. 풀과 나무가 이불이고 시냇물이 우물입니다.
거처가 없기에 먹는 것도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저것 주워들은 거에 말주변이 있어 사람 꾀는 데 재주가 있었습니다.
몇 마디로 친구를 만들고 인연을 쌓습니다.
하지만 그는 쥐뿔도 없는 떠돌이일 뿐입니다.
당장 내일 어디서 눕고 무엇을 먹을지 기약 없습니다.
사람을 혹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 인기가 높았던 것입니다.
첫 번째 장 ‘이른 봄’의 노래 ‘In einem kühlen Grunde’는 은유입니다.
앞으로 생길 일을 귀띔합니다.
뭔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전운을 담당합니다.
이 노래로 상황은 이상에서 현실로 바뀝니다.
아니 작가가 독자를 속이기 위해 쳐놓은 장막이 벗겨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실제 바뀐 게 그다지 없습니다.
장막 때문에 일그러져, 왜곡해서, 삐뚜로 보였을 뿐입니다.
왼쪽으로 휜 코가 오른쪽으로 휘게 보였고 멀쩡한 사람이 절름발이 행세를 하게 했고 입 잘 터는 사람을 유식한 사람으로 착각하게 했습니다.
작가가 그렇게 보이게끔 했습니다.
노래 ‘In einem kühlen Grunde’로 주문이 풀린 것입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제 현실로 발을 내딛습니다.
크눌프의 이마에서 땀이 흐릅니다.
옆집 여인이 오기 전, 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영웅이 시험대에 오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영웅입니다.
칼을 높이 드는 것만으로 적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는 천하무적이었습니다.
영웅이 등장합니다.
군중이 노래 ‘In einem kühlen Grunde’로 환대합니다.
위풍당당, 여전히 영웅입니다.
군중이 길을 틉니다.
아직 그는 영웅입니다.
술집에 들어섭니다.
여인이 따라 들어옵니다.
눈빛을 교환하고 춤을 춥니다.
음악이 나옵니다.
익숙한 노래입니다.
따라 부릅니다.
푸른 벌판 저 아래
물레방아 돌아가는데
내 참된 사랑은 그림자로 변했으니
다시 그대를 어디서 찾을까
영원의 증표로 받은 사랑의 반지
맹세가 깨지자 둘로 쪼개졌다네
음유시인 마냥 웃는 낯으로 세상을 떠돌고
노래하고 고뇌하며 정처 없이 다닐 테야
말을 끄는 군인 마냥 전쟁터 피투성이 속에서 떠다니고
낮과 밤 포화 속에 묻힐 테야
들을 수 있을까? 물레방아의 속삼임을
그럴 수 있을까 모르겠네
모든 게 괜찮던 그때, 내가 사랑을 앓던 그때,
그때는 들리지 않았을까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