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32)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21)
⑤ 음악과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2)
1989년 김수철은 세 번째 국악 앨범 [황천길]을 발표합니다.
1. 황천길 (태평소)
앨범 [황천길]의 뼈대는 ‘떠남’입니다.
소설 [크눌프]를 받치는 근간 또한 ‘떠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에서 현실로 내려오며 떠남을 경험하고, 여러 두려움에 자신을 숨기는 떠남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크눌프의 떠남은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처진 어깨가 눈에 선합니다.
멋쟁이 크눌프의 떠남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자신감, 존재감이 땅에 떨어지고 빈털터리, 궁색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가 생각한 탈출구는 떠남이었습니다.
떠나 벗어나고 싶었고 숨고 싶었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이상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떠남이 답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관계의 틀어짐 또한 크눌프가 두려워했던 일입니다.
틀어짐은 두려움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크눌프의 균형을 깨뜨렸습니다.
균형의 무너짐은 사고(事故)를 유발합니다.
두려움에 겁먹은 크눌프가 또다시 떠남을 감행합니다.
떠남은 도망 같아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앨범 [황천길]은 떠남의 연속입니다.
국악기 태평소가 첫 번째 곡 ‘황천길’을 엽니다.
일명 ‘날라리’라고 하는 태평소가 떠남을 재촉합니다.
열린 ‘황천길’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갑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처음 걷는 이곳이 두렵기만 합니다.
친구도 동무도 없습니다.
낯선 황천길이 두렵습니다.
걷는 곳마다 가시밭이요, 눈 두는 곳마다 안개뿐이니 희망이 생길 리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앞이 깜깜한데 뒤에서 가라고 재촉합니다.
떠나는 건 내 의지가 아닌데 자꾸 가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황천길이 이렇게 외로운지 알았다면 좀 더 버틸 것 그랬습니다.
여기는 입이 있어도 쓸모가 없습니다.
누구 말 들어주는 사람 없습니다.
눈 씻고 봐도 쥐새끼 하나 없습니다.
황천길이 이렇게 황량한 곳임을 깨닫습니다.
잘난 지식이 하나 소용없습니다.
떠나면 끝이라더니 말 그대로입니다.
그는 어찌 알고 그런 말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