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눌프]를 읽고
2. 소설 [크눌프] (33)
2) 크눌프에 대한 나의 기억 (22)
⑤ 음악과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3)
1. 황천길 (태평소) 2
황천길이 두렵기만 합니다.
염(殮)하며 신긴 삼배 버선이 불편합니다.
연신 돌부리에 걸립니다.
가시밭이 시커먼 피로 물듭니다.
이 정도 되면 태평소가 그칠 만도 한데, 등까지 떠밉니다. 어이 가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갈등, 관계, 개똥철학 저리 던져 버립니다.
황천길이 초입일 텐데 벅찹니다.
태평소가 거슬려 짜증이 납니다.
뒤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는데, 황천길에서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된다고 했습니다.
돌이 되어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가지도 못한 채 망부석이 되는 것입니다.
망자도 아니고 산자도 아닌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어 보입니다.
눈물 마를 새 없을 겁니다.
가던 길을 마저 가야 환생 기대할 자격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텐데 중간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 해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황천길’을 걸을 때 유념하기를 바랍니다.
뒤돌아볼 생각 꿈에도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망부석으로 천년만년 황천길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태평소 소리 들리거든 묵묵히 가는 길 가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좋은 일입니다.
소설 [크눌프]의 두 번째 장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에서 ‘나’는 태평소와 서로 통합니다.
태평소는 황천길의 터줏대감이고 길잡이입니다.
크눌프는 ‘나’로 깨닫습니다.
두려움을 인식합니다.
현실에서, 사이에서, 관계로 크눌프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식도 철학도 지위도 소유도 ‘나’의 동의를 이끌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무너지고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나’가 크눌프에게 말을 겁니다.
크눌프의 귀에 못이 박입니다.
‘나’의 말에 크눌프가 봇짐을 멥니다.
‘황천길’에 들어서는 크눌프, 크눌프를 향한 ‘나’의 말은 태평소가 되어 울립니다.
황천길에 들어서는 게 단장(斷腸)의 아픔이더니, 황천길을 걷는 일도 심란하기 그지없습니다. ‘나’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사라지지 않습니다.
태평소가 창날이 되어 등판이 시커멓게 변했습니다.
버선발로 걷기에 가시밭길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망설임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망부석이 되기는 싫기 때문입니다.
‘황천길’이 이렇게 험하고 외로운 줄 몰랐습니다.
태평소 소리도 그만 듣고 싶습니다.
삼배 버선발이 아주 아픕니다.
한참 걸은 것 같은데 이정표도 없습니다.
황천길이 듣던 대로 멀고 험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