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3)- 읽기

by 초록 라디오

책(3)- 읽기

“463쪽, 대단하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끝냈다. 책을 접었다. 겉표지를 벗긴 하얀색 하드커버의 묵직한 책이었다. 표지 앞장 위로부터 1/4되는 지점에 얼음꽃이 피어있다. 책에서 본 얼음꽃이었다. 겨울철창문에 피는 꽃 모양의 성에, [겨울 나그네] 제11곡 ‘봄의 꿈’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창문에 새겨진 꽃잎은

대체 누가 그렸을까?

너는 비웃고 있구나.

겨울에 꽃을 보았다는 몽상가를.’


덮었던 책을 들어 238쪽을 펼쳤다. ‘봄의 꿈’ 가사를 다시 읽어 보았다. 컴퓨터를 켜고 ‘봄의 꿈’ 동영상을 찾아서 들었다. 가수의 입과 가사를 맞춰보았다. 책을 집고 내내 이런 식으로 읽었다. 다섯 번째 곡 ‘보리수’ 편을 읽는다고 했을 때 우선 동영상을 찾아서 들었다. 가사를 본 다음 본문을 읽었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음악을 들은 적이 없었다. 처음 해본 것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순서가 잡혔다. 읽는 시간이 더뎠다. 좋은 점도 있었다. 덕분에 [겨울 나그네] 전곡을 다 들었다. 이전에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끝까지 듣지 못하고 중간에 손을 놓아야 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꿩 먹고 알 먹고였다.


하드커버 표지에 있는 얼음꽃, 뜻밖에 색깔이 초록색이다. 표지 등에 찍힌 제목도, 저자 이름도, 번역자 이름도, 출판사 이름도 초록색이었다. 읽는 동안 겉표지를 벗겨 책장에 꽃아 두었다.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초록색이었다. 겉표지 색깔이 초록색이었다. 겉표지 등에 찍힌 제목이, 저자 이름이, 번역자 이름이, 출판사 이름이 흰색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바라보았다. 묵직한 하드커버의 책, 표지가 흰색이었다. 겉표지와 안쪽에 있는 하드커버 표지 색깔이 반대였다. 이런 걸 뭐라고 하나? 보색인가 했다. 찾아보니 초록색의 보색은 붉은색이었다. 색의 조화라고 해야 하나? 미술은 꽝이라 덧붙일 말이 없다. 초록색과 흰색이라. 어떤 뜻일까? 주변에서 이 두 색은 어떻게 나타날까? 자동차 번호판이 있다. 750㎖ 막걸리 병에 초록색과 흰색이 나타난다. 검색창에 초록 흰색을 입력했다. 재미있는 내용이 나왔다. 한국일보 2015년 1월 14일 기사 제목인 ‘문득 나타난 삼나무 숲길, 흰색의 반대는 초록이다’를 클릭했다. 사시사철 푸른 침엽수와 흰 눈을 두고 이렇게 제목을 지은 것 같았다. 추운 겨울 하얗게 변한 산 중턱에 언제나 그렇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침엽수, 차가우면서 낯익은 모습이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겉표지를 초록색과 흰색이 담당했으며, 하드커버 표지에는 색이 위치를 바꿔 나타난다. 하드커버에서 한 가지 더 볼 게 있다. 얼음꽃이다. 초록색으로 칠해진 얼음꽃이 하드커버 표지에 있다. 산속 흰색과 초록색이 반대가 되는 계절, 얼음꽃이 피는 계절, 겨울이었다.


[겨울 나그네]의 주인공 나그네는 24곡 모두 길에서 서성인다. 집도 절도 없이 해와 달을 벗 삼아 방랑한다. 계절은 겨울이다. 겨울이라고 해야 나그네가 군데군데 털어놓았던 푸념과 짝이 맞는다. 본문에서 곡 제목이 나오는 페이지에 곧게 뻗은 회색 나무 군락 사진을 배치했다. 사진을 봤을 때 땅바닥이 눈으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계절이 겨울일 가능성이 높았다. 겉표지에 그 나무 사진이 다시 나온다. 여기서 나무는 검은색을 뗬다. 배경은 회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회색일 때보다 냉기가 더 했다. 초록색이 주를 이루는 겉표지의 계절은 완연한 겨울이었다. 하드커버 표지에서 겨울이 체감으로 느낀 계절이었다면, 겉표지의 겨울은 눈에 보이는 계절이었다.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을 초록과 하양으로 색칠해 스산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주려 했던 것 같았다.


제14곡 ‘백발’ 가사다.

‘서리가 내려 온통 하얀색으로

내 머리를 덮었네.

그래서 나는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믿었고,

크게 즐거워했네.’


제18곡 ‘폭풍의 아침’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내 마음은 하늘에서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것을 보네.

그것은 오로지 겨울일 뿐

차갑고 황량한 겨울.’


제22곡 ‘용기’에서도 겨울이 잡힌다.

‘눈송이가 얼굴에 떨어지면

흔들어 털어내리.

내 마음이 속에서 말을 하면

밝고 힘차게 노래 부르리.’


초록과 하양의 결합은 겨울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냈다. 겉표지의 초록색은 눈이 쏟아지기 전 어둠 컴컴한 하늘 같이 보인다. 나그네의 심정이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 책으로 겨울 구경 실컷 했다. 작년에 얼음꽃을 본 적이 있나.


책을 들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책장으로 가 겉표지를 집었다. 책이 갈라지지 않게 조심해서 겉표지를 입혔다. 제목을 다시 한번 보고 겉표지가 있던 자리에 꽂았다. 책상으로 와 앉아 책을 바라보았다. 흰색 제목이 눈에 띄었다. 컴퓨터를 켜고 미국 아마존에서 이 책을 검색했다. 책을 확인한 뒤 영국 아마존도 들어갔다. 고개를 끄덕이고 컴퓨터를 껐다.


제11곡 ‘Frühlingstraum(봄의 꿈)’

(출처: 유튜브)

제24곡 ‘Der Leiermann(거리의 악사)’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