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by 초록 라디오

명절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향 갈 준비합니다.

깨끗이 씻고 싸고 기분 좋게 화장실을 나와 꽃단장하고 아침을 먹습니다.

개켜 둔 이불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떠날 차비를 합니다.

빠진 거 없나 살펴보고 문단속 다시 합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가 차에 오릅니다.

올해도 두 손은 가볍게, 마음은 한 가득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합니다.

카오디오에 USB를 꽂습니다.

얼마 전 갈아 끼운 스피커로 메탈 처치(Metal Church)의 ‘Star The Fire’가 터져 나옵니다.

(출처: 유튜브)


헤드뱅잉 몇 번에 고속도로가 나타납니다.

요금소 지나 본능적으로 기어를 올립니다.

부웅그러나 주춤합니다.

거대한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카오디오에 손을 뻗어 신경질적으로 버튼을 누릅니다.

‘아니야, 아니야.’

결국 맘에 드는 곡을 찾아냅니다.


고향 가는 직통 고속도로가 뚫립니다.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개통 축하곡이 울려 퍼집니다.

‘Heading Out To The Highway’입니다.

(출처: 유튜브)


고속도로 노래 하나 더 듣겠습니다.

아우토반에 오릅니다.

달립니다.

전자음악의 큰 형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Autobhan’입니다.

(출처: 유튜브)


선곡실패입니다.

피로가 가중되는 느낌입니다.

기어 3단 넣기 힘듭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아침을 맞이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음은 고향집 이건만 몸은 여전히 콘크리트 도로 위입니다.

날아갈 수도 헤엄칠 수도 없어 끓는 속 음악으로 달래지만 역부족입니다.

떠나기 전에 자양강장제라도 먹어둘걸 그랬나 봅니다.

배가 고파지고,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KO 직전입니다.

옆에서 같이 달리던 차 운전자가 창문 내리라고 손짓을 합니다.

‘힘들어 보여요. 마침 라디오에 의사가 나왔으니까 상담받아 봐요.’

라디오에서 의사가 처방을 내립니다.


"UFO의 ‘Doctor Doctor’를 하루 세 번 식후 30분 후에 들으세요."

(출처: 유튜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 멀리 고향집 굴뚝으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듯합니다.

불연 듯 작년 안 좋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올해는 아무 일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좋은 날 가족 불화가 우리 일이 될 줄 몰랐습니다.

먼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먹서먹했던 느낌을 다시 맛보기 싫은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조용히 있을 겁니다.

메탈리카(Metallica)의 씁쓸하지만 그게 현실인 걸, ‘Sad But True’가 위안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유튜브)


어이쿠. 우려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메탈리카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침만 해도 좋았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전쟁터에 온 꼴이 되었습니다.

남의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씁쓸한 마음에 먼 산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립니다.

돌아보니 슬레이어(Slayer)였습니다.

“삶은 고달픈 거야. 전쟁이지.”

한마디 하고 가버립니다.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습니다.

슬레이어의 ‘War Ensemble’을 듣습니다.

(출처: 유튜브)


사는 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매번 강해져야지, 강해져야지 하지만 맘처럼 되지 않습니다.

오늘도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시 하면 됩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사는 게 힘든 거라면 즐길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까짓 거 몇 십 년 해왔는데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들리십니까?

저기입니다. 저기, 저기에서 노래가 들립니다.

열 배, 천 배, 만 배 더 강해지라 합니다.

아이스트 어스(Iced Earth)의 ‘Ten Thousand Strong’입니다.

(출처: 유튜브)


우여곡절 많았던 하루였습니다.

고향 오는 길이 천리만리였고, 고향집은 전쟁터였습니다.

날이 저물자 조용해집니다.

내일이면 각자 떠날 사람들인데 서로 물고 뜯는 모습이 가관이었습니다.

푹신한 이부자리에 몸을 뉩니다.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합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습니다.

다시 눈을 감습니다.

뒤척이는 게 안쓰러웠는지 누군가 헤드폰을 씌어줍니다.

헤드폰에서 나자레스(Nazareth)의 'Dream On'이 나옵니다.

(출처: 유튜브)


잠에 들었습니다.

베개 넘어 자장가가 들립니다.

이런 숙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푹 잘 수 있겠습니다.

자장가에서 누군가 사랑고백을 합니다.


‘그녀는 네게 특별한 존재지.

빗속에서 빛나는 다이아몬드.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누구도 모를 거야.’


눈가를 촉촉이 적시는 사랑노래에 더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이런 호사 누릴 줄 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머리맡에서 L.A. 건즈(L.A. Guns)의 ‘The Ballad Of Jayne’이 흐릅니다.

(출처: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