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북, 북.”
희철이 엉덩이를 긁어댔다.
“북, 북, 북, 북.”
벌겋게 달아오르고 나서야 멈췄다. 다시 곯아떨어졌다. 코 고는 소리가 우렁찼다. 한 시간 정도 흐른 뒤 번쩍 눈을 떴다.
“아, 머리....”
오른손으로 옆머리를 잡고 찡그렸다.
“여기가 어디야?”
어렵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쳐다보았다. 안심한 듯 고개를 베개에 묻었다.
“집이구나. 집....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픈 거지? 혹시?”
옷걸이를 바라보았다. 없었다. 걸려있어야 할 옷이 없었다. 항상 걸어놓는 그 자리에 옷이 없었다. 이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 으윽.”
힘겹게 이불을 걷어차고 상체를 세웠다. 옷을 찾아야 한다.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없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방문을 바라보았다. 옷가지가 방문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가 쪼개어지는 아픔에도 머리는 굴러갔다. 옷은 제자리에 없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가 왜 아픈지, 입은 왜 이리 말라있는지. 엉망이다.
뭔가 떠오를 것 같다. 뭔가.
“술 먹었어.”
어렵게 한마디 내뱉었다.
희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지갑이 어디 있지. 바지. 문 있는 데 있었지. 문 쪽으로 힘겹게 몸을 돌려 손을 뻗어봤지만 바지에 닫기에는 모자랐다. 이 자세에서 더 이상은 무리야. 머리가 흔들리면 안 되는 데. 목에 힘을 주고 두 손으로 몸을 끌었다. 입을 악다문 채 문으로 다가갔다. 머리가 울리면서 빠개질 듯 아파오지만 바지를 잡기 위해 악다구니를 써본다.
“아, 아악......”
바지를 쥐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없다. 지갑이 없다. 앞주머니는? 여기에도 없다. 덜컹. 잊어버린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가끔 술 먹고 책상 위에 놓을 적도 있어. 그래, 책상에 있을 거야.
책상으로 몸을 돌리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역한 무언가가 입 안으로 올라왔다.
“욱, 우욱....”
다행히 참아냈다. 짧은 트림으로 역한 기운을 게워냈다. 어제 뭘 마신 거지? 처음 소주, 맥주 먹고 나와서. 나와서 어디 갔더라? 더 먹었는데. 노래방을 간 거 같기도 하고, 호프집을 먼저 갔나? 이 고량주 냄새는 뭐지. 대체 어디까지 먹은 거야. 집에는 어떻게 왔고.
“아참, 가방은?”
바지가 있는 데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다행이다. 가방이 있다. 그러면 된 거다.
“오늘부터 금주다. 금주. 또 술 먹으면 개다.”
고개를 숙이며 다짐했다. 이제 지갑을 찾아야 한다. 힘을 써본다. 몸을 돌렸다. 목에 힘줄이 바짝 올라왔다. 책상 위로 거무스름한 뭔가가 보였다. 손을 뻗었다. 이를 악다물고 엉덩이를 들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어코 책상을 잡았다. 덕분에 엉덩이를 들 수 있었고 오른쪽 무릎을 세워 균형을 잡았다. 지갑이 있었다.
“음, 실수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제발.”
지갑을 열어 확인해 보았다. 현금을 세었다. 만 원짜리 다섯 장 있었는데 다섯 장이 집힌다.
“카드는, 카드는.”
불안하다. 느낌이 좋지 않다. 현금을 확인하면서 흰 종이를 본 것 같다. 벌써 몇 번째야. 이번만은 안 돼. 카드 영수증이 아니길 바라며 왼손으로 문제의 종이를 꺼내다 긴장을 한 탓인지 머리가 흔들렸다.
“아, 아, 아.”
지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양 손은 머리를 받쳤다. 굉장한 충격이다. 송곳으로 후벼 파는 거 같아. 오른쪽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흘렀으나 닦아낼 수 없었다. 잘못 만지면 또 괴로워해야 했다. 오른손을 천천히 내려 지갑을 주었다. 천천히 올렸다. 영수증이었다.
“아, 씨.”
눈이 커졌다. 한 개가 아니었다. 설마 하고 비벼보는데 두 장이었다.
“괜찮을 거야. 얼마 나왔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 알고 있다. 뒤늦었지만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제발, 조그만 합시다. 지난주 술값으로 개털입니다.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영수증을 들고 한 장씩 확인했다.
“25만 5천7백 원.”
“15만 9천8십 원.”
계산이 안 된다. 이건 제정신에도 할 수 없는 거다. 40만 원이 넘는다. 끝났다. 다음 달 월급이 술값 주면 끝이다. 술 먹고 돈 쓰는 버릇 때문에 카드 안 들고 다닌 건데 방심했다. 돈 생각에 두통이 잊혔다. 그 틈을 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봤다.
“아.”
아팠다. 결과가 이렇게 났으니 어쩔 수 없다. 어떻게 되겠지. 이놈의 술. 진짜 끊어야지. 거지되겠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휴, 내 돈 40만 원. 어쩌냐. 큰 일 났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데 역겨운 술 냄새가 올라온다.
“우웩, 우욱.”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술을 먹은 거고, 방에서 잤고, 옷하고 지갑, 가방이 무사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뭔가 빠져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뭐하는 사람이지? 물음표 두 개로 안개가 걷혔다. 나는 김희철, 직장인이고. 시간이 되면 일어나 출근해야지.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몇 시인지 확인하는 거다. 시계를 보자. 책상 옆에 걸린 시계로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우이, 씨. 아, 내 머리.”
급했다. 조금 여유를 갖고 돌리자. 하나 둘, 수를 세고 양 손으로 머리를 지탱해 시계를 쳐다보았다. 6시였다.
“휴......... 6시다. 일어나자. 그래, 다 잊고 일어나자. 그깟 돈이잖아.”
맘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 솟아난 자신감에 벌떡 일어나기는 했는데 엄청난 두통과 오랫동안 구부려 절인 다리 탓에 휘청하고 방문으로 나가떨어졌다.
“이건 아니야.”
술이 또 올라왔다.
“우욱, 우욱.”
이번에도 참아냈으나 고량주 냄새가 너무 지독했다. 이놈의 고량주는 어디서 먹은 거야. 내가 샀을 거 아니야. 뭔지 알아야 냄새라도 참지. 술 잘 먹고 이게 뭔 고역인지. 이렇게 꾸물거리다가는 출근시간 놓친다. 기어가든, 날아가든 이제 씻어야 한다. 잠시 돈, 술은 잊자. 이게 뭐야.
머리가 멍했다. 현기증이 났다. 문손잡이를 잡고 간신히 일어났다.
“술을 또 먹으면 개다.”
지체하다가는 지각한다. 움직여야 한다. 가자. 손잡이를 돌렸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우웩, 우웩.”
한계다. 조금만 가면 화장실이다. 참아야 한다. 핏대를 세우며 참았다. 방문 밖으로 오른발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