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힘이 없다. 무릎이 자꾸 꺾이는 바람에 몸 가누기가 힘들다. 방문 손잡이를 잡고 버텨본다. 힘을 썼더니 또 올라온다. 벽에 기대 헛구역질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우웩. 웩”
눈물이 난다. 왼손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꽉 쥐어진 주먹. 그것은 의지였다. 욕실까지 가겠다는 사나이의 의지였다. 오른손을 벽에 대고 왼손으로 머리를 잡았다. 한발 두발 걸었다. 욕실에 도착했다. 왼손으로 불을 켰다. 오른손으로 욕실 문을 열고 천천히 슬리퍼에 발을 끼웠다. 두발에 힘을 주고 허리를 세웠다.
“아, 아.....”
왼편으로 돌아 좌변기를 바라보았다. 질질 발을 끌고 소변을 보았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소변 줄기. 아직 죽지 않았구나 위안해본다.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혀 물을 내리고 세면대로 갔다. 칫솔에 치약을 짜는 동안, 아니 욕실에 들어와서 세면대 위 거울을 쳐다보지 못했다. 몰골을 보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양치를 시작했다. 칫솔 머리의 반이 들어가기도 전에 반응이 왔다.
“웩, 웩, 웩.”
헛구역질과 콧물, 눈물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무릎이 꺾였다. 자세가 무너지자 몸의 힘이 빠졌다. 세면대를 잡고 버텨보려 했지만 아귀힘이 모자랐다. 콧물, 눈물이 범벅돼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면대를 쥐려 했던 왼손은 곱은 채 공중에 들려있었다.
“에, 에, 우욱, 웩.”
욕지기가 멈추지 않는다. 주저앉은 그대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가라앉는 기분이 들자 몸을 일으켰다. 왼손으로 세면대를 잡았다. 양치는 여기까지, 더 이상은 안 돼. 칫솔을 꽂고 물로 입을 게웠다. 그래도 움직이니까 정신이 약간 돌아오는 느낌이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 했다. 서있는 것이 힘들어 좌변기에 앉아 조심스레 벗기 시작했다. 욕실 문 밖으로 옷을 던지고 세면대를 지지대 삼아 몸을 세웠다. 이번에도 거울을 보지 못했다. 오른손을 뻗어 샤워기를 잡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여기까지.”
샤워기 물을 만져 보았다. 내 집이 맞는구나. 신기하게도 샤워기 틀고 열을 세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 1년 반을 살았는데 이사 온 날부터 그랬다. 샤워기를 머리 위로 들었다. 따끈한 물이 쏟아졌다.
“으, 으. 좋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 몸을 적셨다. 얼굴을 들어 물줄기를 직접 맞았다. 입을 벌려 물이 들어오게 했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얼굴을 쓸고 몸을 문질렀다. 욕지기가 어느새 멈춘 듯하다. 머리 아픈 것도 모르겠다. 느낌이 좋아 얼굴을 위아래로 움직여 보았다.
“앗, 우웩.”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세면대를 잡고 버텼다. 더 이상은 안 되는 건가 생각하는 와중에 손을 바라보았다. 양 손 다 시퍼렇게 변해있었고 힘줄이 도드라져 있었다.
“아, 이 놈의 술. 아.”
서둘러 물을 뿌렸다. 비누로 머리를 문질렀다. 오른쪽 뺨으로 거품이 흘러내렸다. 습관적으로 관자놀이를 만졌다. 수염 깎아야 하는구나. 아니, 그럴 정신이 없다. 오늘은 그냥 가자. 턱에서도 꺼칠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누로 몸 여기저기 닦았다. 비누를 내려놓고 손으로 거품을 냈다. 온몸이 거품에 덮였다. 샤워기를 들어 거품을 씻어냈다. 물을 맞으며 다리에 힘을 줘봤다. 힘이 들어갔다. 술이 깨 가는구나. 기침이 올라왔다. 안 돼. 안 돼. 기침을 멈춰야 한다. 거울에 왼손을 대고 몸에 힘을 주었다. 기침을 멈춰야 했다. 머리는 물론이고 온 몸이 흔들리게 된다. 어떤 결과가 일지 예상할 수 없었다.
“에취, 에취.”
결국 터졌다. 왼손이 거울에 미끄러져 세면대로 떨어졌고 모서리를 잡으려 했지만 놓쳤다. 욕실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앞이 깜깜했다.
“쿵.”
“아, 아, 아, 아.”
샤워기에서 나온 물로 천장이고 거울이고 문이고 난리였다. 꾹꾹 눌렀던 욕지기가 올라왔다. 한계를 넘었다. 널브러진 그대로 바닥에 게워내기 시작했다.
“우엑, 우웩.”
자르륵, 자르륵, 쿨렁쿨렁. 계속 쏟아졌다. 지난밤 뭘 얼마나 먹었는지 가관이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볼만했다. 왼손을 바닥에 대고, 오른손은 욕조를 잡은 자세로 헐떡였다. 끝났겠지 하고 자세를 잡으려 했는데 머리가 흔들렸다.
“아, 아, 내 머리.”
왼손으로 머리를 잡고 두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오른손이 갈 곳을 잃고 욕조 모서리에서 바닥으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입에서 나온 오물을 한 움큼 움켜쥐고 말았다.
“이런....”
잠시 정막이 흘렀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샤워기를 들었다. 어디부터 뿌려야 하나 갈등을 했다. 정신 차리게 머리부터 해야 하는 건지, 지저분한 거 먼저 내려야 하는 건지 망설였다. 바닥에 쌓인 오물 먼저 처리하기 시작했다. 샤워기로 물을 뿌렸다. 물에 씻긴 건더기들이 하수구로 흘러 내려갔다. 밥알이 보이고, 손톱 크기의 검은 무언가가 내려가지 않으려 힘을 쓰고 있고, 대가리에 줄기까지 원형이 보존된 콩나물도 있었다. 하수구 뚜껑에 걸려 씻기지 않는 오물이 한가득이었다. 빨간 것도 있었는데 보기에 좋지 않았다. 왼손으로 샤워기를 잡고, 오른손으로 오물을 문질렀다. 하나둘 하수구로 내려갔다. 작업을 끝내고 왼손을 들어 몸에 물을 뿌렸다. 오른손을 코에 갖다 댔다. 냄새를 맡았다. 오물 냄새가 남아있을까 했는데 별 냄새나지 않았다. 오른손에 힘을 주고 몸을 세웠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출근시간이 다 됐을 거다. 일어서면서 본능적으로 거울을 바라보았다. 물을 뒤집어쓴 뭔가가 서있었다. 추했다. 됐다 싶어 물을 끄고 샤워기를 걸었다.
“아, 아....”
왼손으로 문 옆에 걸려있는 수건을 집었다. 머리부터 닦아 내려갔다.
“아, 아....”
샤워하고 나니 개운한 느낌이 든다. 거울을 마주하고 혹시 상처 난 데 있는지 바라보았다. 수염 빼고 별다른 게 없는 것 같았다. 속을 게워낸 탓인지 헛구역질이 멈추었다. 머리도 아프지 않은 듯했다. 누구 본 사람 없어 다행이었다.
“가자.”
수건을 제자리에 걸고 욕실 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문 밖으로 오른발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