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랭보>가 건네는 이야기들
예술가의 삶에서 찾은 창업가의 여정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뮤지컬 <랭보>를 관람했다. 몇백 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시인의 이야기가 창업가를 꿈꾸는 내게 이토록 깊은 울림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두 세계는 다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같은 여정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글에는 뮤지컬 <랭보>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감상하실 분들은 주의해 주세요.
랭보의 길: 파리에서 아프리카까지
뮤지컬 <랭보>는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그의 동료 시인 폴 베를렌, 그리고 랭보의 친구 들라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랭보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문학계의 관습을 거부하고 파격적인 시적 표현을 추구했다. 베를렌은 그의 재능에 매료되어 가정을 버리고 랭보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두 사람은 열정적인 교류를 나누지만, 결국 베를렌의 폭력적 성향과 랭보의 타협할 줄 모르는 극단적인 태도로 인해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결별 후 베를렌은 파리에서 문학 활동을 이어가며 명성을 쌓아가는 반면, 랭보는 시 쓰기를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랭보는 병에 걸려 오른쪽 무릎을 다치게 되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친구 들라에가 보내준 베를렌의 시집을 읽게 된다.
다른 길, 같은 여정: 시와 스타트업
공연을 보며 문득 시와 스타트업 사이의 의외의 유사성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둘 다 독창적 가치 표현이라는 공통된 핵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스타트업은 단순히 사업 모델이나 수익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이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독자적인 가치 판단 하에 스스로가 좋다고 믿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이다.
시인이 시를, 작곡가가 음악을,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듯, 창업가로서 나도 프로덕트를 통해 내 가치관과 세계관을 표현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는 프로덕트,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세 개의 거울: 내 안의 랭보, 베를렌, 들라에
뮤지컬 속 세 인물을 통해 나는 내 안에 있는 여러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랭보 - 순수한 열정의 화신: 때로 나는 랭보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의 모든 타협을 거부하고 오로지 내 비전만을 추구하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면 현실적인 제약은 잊고 순수한 가능성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히면 좌절감을 느끼곤 한다.
폴 베를렌 - 현실과 타협한 예술가: 또 어떤 때는 베를렌처럼 현실과 타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특히 비즈니스 결정을 내릴 때, 내 본래 비전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생존과 성장을 위해 타협해야 할 때가 있다. 가끔은 이런 타협이 내가 원래 꿈꾸던 바를 저버리는 것 같아 갈등하기도 한다.
들라에 - 동경하는 관찰자: 솔직히 나는 종종 들라에의 입장이 되기도 한다. 위대한 창조자들과 혁신가들을 동경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던지곤 한다. 때로는 그저 지켜보고 기록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을 때,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아쉬움을 느낀다.
이 세 인물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대화한다. 어떤 날은 랭보처럼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고, 또 어떤 날은 베를렌처럼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끔은 들라에처럼 그저 관찰자로 남아있기도 한다.
두 발로 서기: 베를렌이 보여준 균형의 길
뮤지컬의 후반부, 아프리카에서 죽어가는 랭보가 들라에가 보내준 베를렌의 시집을 읽는 장면이 내게는 가장 인상 깊었다.
베를렌은 사회적 인습과 타협하면서도 자신만의 예술적 색채를 잃지 않았다. 나는 그의 모습에서 묘한 위안을 얻었다. '꼭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만 혁신이 가능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종종 생각한다.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가야 할까?' '여기서는 진정한 혁신이 불가능할까?' 하지만 베를렌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건 그저 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랭보가 아프리카에서 결국 고통 속에 죽었듯이, 현실을 부정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곳만 찾는 것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베를렌의 모습에서 가능성을 봤다. 현실의 제약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색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랭보가 죽기 전에 들라에에게 했던 말처럼 "끊임없이 걸어 나가는 존재"가 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균형 찾기: 타협과 순수함 사이에서
이런 고민은 스타트업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랭보처럼 순수한 비전만을 고집하면 현실의 벽에 부딪히고, 베를렌처럼 너무 많이 타협하면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내가 봐온 많은 창업가들도 이런 갈림길에 선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때론 그 타협이 너무 커서 원래의 비전을 완전히 잃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이런 양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다. 순수함과 현실감을 모두 가진 창업가가 되고 싶다. 타협하더라도 내 본질을 잃지 않는 방법을 찾고 싶다.
앞으로의 길: 내가 걸어갈 방향
뮤지컬 <랭보>는 내게 창업과 창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랭보의 불타는 열정, 베를렌의 현실적 균형감, 들라에의 성찰적 관점이 모두 필요하다고 느꼈다.
"세상이 어두워 보이면 실제로 어두운 게 아니라 내가 눈을 감은 것"이라는 문장이 내 마음에 계속 맴돈다. 실리콘밸리로 떠나지 않더라도, 지금 서울에서도,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도 나만의 혁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랭보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필요도, 베를렌처럼 너무 많이 타협할 필요도 없다. 타협과 순수함 사이의 균형을 찾으며, 내 방식대로 "끊임없이 걸어 나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게 내가 <랭보>에게서 받은 가장 깊은 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