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르틀링겐 성벽을 걸으며 발견한 두 마음의 화해
성벽 안을 걸으며
『진격의 거인』의 모티브가 된 독일 소도시 뇌르틀링겐에 다녀왔다. 인구는 2만 명. 기대했던 장엄한 풍경 대신 평범한 성벽과 일상, 그리고 고요함이 있었다. 그 덕분에 잘 보존된 중세 성벽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길 시간을 얻었다.
성벽 안 복도를 걸으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 경계병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구나. 성벽 밖은 좁은 창으로만 언뜻 보이고, 자꾸 성 안쪽을 돌아보게 된다. 반대로 성 중심부 성당 탑에서 바라본 성벽 너머는, 성벽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했다.
경계병은 성의 안쪽을 동경하고, 성 안쪽 사람은 바깥 세상을 동경한다. 동경은 이해에서 가장 먼 감정이다. 하지만 그 동경이야말로 다음 발걸음을 만든다.
그 호기심의 구체적인 대상을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이었다. 스타트업을 꿈꾸고 창업가를 동경하며 살아온 시간들. 그런데 그 세계에서 가장 자주 들어온 말이 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었다.
'이번엔 다르다'의 역설과 진정한 제로 투 원
대학 경제사 시간에 배운 "This Time Is Different"는 원래 버블을 예고하는 경고의 문구였다. 새로운 논리가 탄생할 때마다 진짜 버블이 생긴다는 이야기. 스타트업 씬에서 이 말은 거의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늘 이번엔 다르다 했고, 대부분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은 진짜 달라졌다. 인터넷, PC, 스마트폰, 그리고 AI까지. 그들의 출현 이후 세상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이번엔 다르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정말로 다른 세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런 성공 사례들이 우리에게 잘못된 교훈을 주기도 한다. 마치 '새로움'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사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건 일을 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 것인데. 피터 틸도 말했듯, 선발주자로 나서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전술이어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제로 투 원은 '세계 최초'가 아니라 '내 삶의 최초'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남들이 박수 칠 신기함이 아니라, 내가 처음으로 다르게 해보는 한 걸음. 일상 속 현명한 사람들은 매 순간 조금씩 다른 것을 경험하며 제로 투 원을 해내고 있다. 처음 가보는 길, 처음 건네는 감사, 처음 해보는 작은 실험들. 그런 미세한 최초들이 쌓여서, 어느 날 세상이 뒤늦게 "어? 다르네?"라고 말하게 되는 것 같다.
아버지의 바다, 나의 바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가족의 역사를 돌아보게 됐다. 아버지는 ROTC 장교로 해안 경비소대장을 지냈다. 그에게 바다는 적이 쳐들어올 통로였고, 경계와 위험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자란 산골 마을을 그리워하며 산을 사랑했다.
반면 나는 다양성이 교차하는 도시와 바다를 좋아한다. 고향 부산의 풍경이기도 하고. 교역과 연결의 에너지가 흐르는 곳. 같은 바다인데 우리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성벽 밖을 자유롭게 동경할 수 있는 건, 누군가 그 성을 지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버지의 경계와 내가 품은 연결의 에너지, 둘 모두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전 세대의 '제로 투 원'이 다음 세대의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조사병단과 헌병대의 내적 통합
『진격의 거인』의 비유로 말하면, 조사병단은 성벽 밖을 탐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다. 호기심과 연결의 윤리, 미지에 대한 도전. 반면 헌병대는 성벽 안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한다. 경계와 회복의 기술, 안전에 대한 책임.
미야자키 하야오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잔혹한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겠다"와 "내가 약하니까 당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라는 길.
나는 첫 번째 쪽이다. 하지만 두 번째를 택한 사람들의 방식도 이해하려고 한다. 매력으로 길을 열되, 그 길을 유지할 현실적 능력도 키워나가는 것. 대화할 때와 실행할 때를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
나는 세상을 탐험하는 조사병단이 되는 동시에 내 자신을 지키는 헌병대가 된다. 둘을 내 안에서 통합한다.
성벽 위의 다리 설계자
뇌르틀링겐의 성벽 위에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벽 위에 서서 다리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성벽 밖을 동경하는 사람과 성벽 안을 지키는 사람. 둘 다 필요하다는 걸 이제 안다. 성 안에 갇혀 서로 경쟁하기보다, 성벽의 가치는 인정하되 바깥으로 열린 마음으로 협력해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실패할 확률이 크더라도, 나는 또 이번엔 다르다고 믿으면서 다른 프로젝트를 향해 갈 것이다. 공을 던지고, 떨어지면 다시 던지고.
성벽은 막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기 위한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 다리는 오늘도 아주 작은 '처음'으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