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야만 하는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에게
제 아주 가까운 주변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그를 '알코올 중독자'라 정의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지만요. 처음으로 여는 나의 공간에, 진짜 내 이야기를 쓰려고 보니 이 주제만 떠오릅니다. 꺼내기 어렵고, 슬프고, 냉담하고, 별 볼 것 없는 이야기이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주제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소개할 그는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제가 정말 많이 사랑하는 사람인데요. 저의 아버지이자, 알코올 중독자랍니다.
"알코올 중독, 뭐 별거 있어?" 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맞아요. 저도, 가족들도 그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지요. 그저 자기 분에 못 이겨 가끔씩 술을 선택하는 거라고, 헛헛한 마음을 채울 곳 없어 술로 벗 삼는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실은 저의 아버지는 오래전 사고로 장애를 입게 되셨는데요. 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파트 건설직 일을 하셨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어나선 안될 큰 사고가 났고, 그 이후로는 번듯한 직장이나 취미생활도 없이 오로지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셨죠. 세어보니 그렇게 벌써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그분의 삶을 감히 상상해보건대, 아마도 다치기 전과 다치 고난 뒤 딱 두 가지로 나뉘지 않을까 싶어요. 지난 17년 동안 직장도, 친구도, 재미 붙일 일도 없이 작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어김없이 자신을 반겨주는 TV와 친구 먹고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저희 가족들은 무엇을 하든지 그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였어요. 남들이 보기에는 '못난 아빠, 부족한 남편'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겐 말 한마디 꾹꾹 눌러 참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기분 좋자고 나간 외식이나 드라이브, 여행에서 우리는 더 이상 상처를 받으면 안 됐어요. 어딘가를 갈 때마다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휠체어 대여가 되는지, 사람은 많은지 적은 지. 아주 소소한 것부터 예민하게 체크하며 다녀야 했죠. 노력한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른다고 하잖아요. 우리에겐 좋은 일만 따라줘야 하는 게 마땅한데도, 돌아오는 길은 백이면 백 탐탁지 않았답니다.
어느 날은, 지나가던 사람이 그의 지팡이를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길 한복판에서 그가 넘어졌는데요. 똥 싼 놈이 성낸다더니, 땅바닥에 넘어져있는 사람에게 사과는커녕 욕을 내뱉고 가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벙 쪄서 순간 할 말을 잃었어요.
"날도 안 좋은데, 왜 나오셨어요. 집에 계시지", "아버지가 몸이 저런데도, 같이 다니네. 참 효녀야 효녀." 겉보기엔 좋은 말 같아 보이죠? 근데 한 번만 더 곱씹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삐딱한 시선으로 받아들인 걸 수도 있어요. 근데요.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어요. "날이 좋든 안 좋든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오겠다는데, 왜 이렇게 유난인가요? 당신도 오늘 같은 날, 밖에 나와 있잖아요.", "저는 그냥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에요. 당신도 당신 가족과 함께 있잖아요. 그런 당신도 효녀/효자인가요?"
그러고 보니, 세상의 벽은 참 높고도 험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살아보자'라고 외치고 설득하는 건 17년이라는 긴 시간과 정성, 노력, 그리고 믿음, 사랑이 필요했는데요. 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단 몇 초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가진 몫은 상상했던 것보다 미세할 수 있겠구나 했지요.
그렇게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종종 이기는 일보다 지는 일이 더 많아졌던 게 아닐까요.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니,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상처가 그를 짓누르고 있는 걸 보게 됩니다.
그가 벼랑 끝에서 선택한 건 '술'이지만요. 실은 혼자 있는 듯한 외로움이고,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일 겁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그의 상태는 딸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범위 그 어딘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는 상태예요.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부단한 끈기와 이해력이 필요한 일인지 잘 압니다. 만약 당신이, 혹은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으로서 괜찮지 않다면, 그건 정말 괜찮지 않은걸 거예요. 사랑, 미움, 존중, 애틋함. 그를 하나의 그릇에 담으려 하지 맙시다. 사랑하고 싶은 어느 순간에는 많이 사랑하고요. 또 어느 순간에는 많이 미워하며 그렇게 후회 없는 오늘을 살아봐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