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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Feb 21. 2022

암환자의 가족이 되었다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

어두웠던 지난 몇 개월을 잔잔히 정리해보려 합니다. 작년 11월, 일 년 중 가장 분주했던 시기에 아버지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어요. 동네 작은 병원에 정기검진을 갔었는데요. 일반 남성들에 비해 빈혈 수치가 너무 높다며, 내시경 검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죠. 큰 검사를 앞두고 "혹시?" 하는 마음이 안 들었던 건 아닌데요. 그래도 아버지에게 이렇게나 큰 병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어요.


저희 어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다른 건 다 괜찮지만, 암은 안된다"는 얘기였어요. 그러게요. 정말 어리석게도 우린 그 안된다던 한 가지, 암을 이렇게나 늦게 발견해 살아가고 있네요. 절대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은 매 순간 자책이 앞서는 것 같아요. 아무 근거도 없이 내면에서 밀려오는 이 후회감은 어쩔 수 없이 끝까지 감당해야 하는 제 몫인 거겠죠?



 

요즘 저는 주기적으로 웁니다. 그리고 가끔 제 안에 꽁꽁 비축해둔 힘이 조금이라도 날 때면, 암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항암치료와 수술 후기들을 살펴보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는 11월에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는데요. 병이 꽤나 심각한 상태에 발견되어, 치료를 지체 없이 시작했어요. 그래서 12월에는 28일 동안 방사선 치료와 함께 항암약 복용으로 암세포를 축소하는 치료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경험담과 암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면서, 항암치료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요. 당장 내 눈앞에 놓인 고통을 지켜만 보려니 마음이 많이, 아주 많이 쓰이더군요.


가장 많이 놀랬던 건 예고 없는 잦은 설사였는데요. 밤이 되면 과장 없이 30번도 넘게 화장실을 들락날락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진짜 암에 걸렸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배변 기능의 저하는 불면증, 엉덩이 욕창, 손발 저림 등의 피부병까지 물 밀듯이 찾아왔어요. 아버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없다는 것보다는, 저 스스로 암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사실. 그 안일함에 자꾸 화가 났어요. 그때 느꼈던 감정이 두 가지 있었는데요. 하나는 최대한 긍정적이고 싶었고요. 나머지 하나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즉 피하고 싶었던 거죠.


내일, 저희 가족은 수술 결정을 합니다. 아버지는 기존에도 장애가 있으시고, 골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좁은 편인 데다가 수술 부위가 위험한 곳에 있어서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재발 가능성이 50% 이상이라고 해요. 그래서 항암주사를 더 시도해볼지, 바로 수술에 들어갈지 고민의 기로에 서 있어요.


사실 판단이 잘 서지 않아 의사 선생님들의 조언과 선택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요. 의사 선생님들도 워낙 어려운 케이스라 가족들과 논의해보고 결정했으면 한다고 하시더군요. 다만 항암을 지속하게 된다면 기력이 많이 떨어져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올 수 있음을, 반면 수술을 하게 된다면 중환자실에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순간을 기약해야 할 수 있음을. 냉정하지만, 그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로 그 예후를 안내해주셨어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며칠 전 퉁퉁 부은 눈을 겨우 치켜뜨고 회사에 출근을 했는데요. 제가 참 좋아하는 선배가 별 대수롭지 않은 얘기를 했는데, 제가 눈물을 흘리고 있더라고요. 올림픽을 보면서 답답해서 암에 걸릴 뻔했다는 얘기였어요. "아니, 그게 뭐 어때서. 누군가는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거지!" 하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이게 뭐라고 자꾸 제 마음이 미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돌아서서 조금 생각해봤는데, 제 마음도 건강하지 않다는 경고와 같은 신호 같더라고요.  

이후 어머니, 언니와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숨고를 틈도 없이 암환자의 가족이 되었더라고요. 단시간에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치료 이후 바로 설 연휴가 겹쳐서 우리의 상황도 잘 정리되지 않은 채, 다른 가족들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큰 과제도 있었는데요. 모두가 처음 겪는 이 과정에서 말로 정의하기 어려운 고마움과 미묘한 서운함을 느꼈어요. 저희는 가족회의를 하면서 우리가 필사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아서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것들을 구분했어요. 그리고 상처의 잔재로 남아있는 감정들을 하나씩 용서하는 중입니다.


포기하긴 이르지만, 아버지와의 끝이 조금 더 가까워진 건 사실이라 지금도 생각이 많이 복잡합니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날이 눈앞에 선명하기에 지금을 잘 보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요. 죽음을 앞에 두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느낍니다. 다음에는 어떤 것이든,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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