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 Dec 24. 2019

심리적 커밍아웃


 


 삶에서 나를 가두는 틀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주위에 솔직하게 오픈하는 것이 대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으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에 대한 믿음보다는 불신의 시각이 컸다. 물론 모든 사람을 믿지 않는 건 아니고, 나와 깊이 관계하는 이들에게만 무한한 신뢰를 주며 그 외의 사람은 불신하였다. 마치 나의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성선설을 지지하였으며, 그 바깥의 타인을 바라볼 땐 성악설의 시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틀을 점점 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과거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여전히 이 틀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에게 잠정적으로 '악한'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선한 사람임을, 그 실낱같은 차이를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여전히 타인은 나에게 두려운 존재이며 그 불안을 깨는 것이 아직 어렵다.

사람에 대한 불신을 나쁘게만 치부할 것은 아니다. 불신은 일종의 방어 기제이고, 자신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불신은 어쩌면 나의 선천적 신중함이나 조심스러움에 기인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래서인지 나는 인간관계에서 크게 발등 찍힌 기억이 없다. 예민한 불신은 나에게 좋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걸러주는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믿지 못함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과 진실한 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내가 조금만 더 믿고 다가갔더라면 친구가 되었을지 모를 좋은 인연을 놓치는 것이 매번 아쉽기도 하다. 그리고 심리적 커밍아웃의 상태에 다다르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한명한명 의미 있게 대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나의 생각, 감정, 사상, 삶을 진실되게 공유하고 싶고, 상대의 그것도 꾸밈없이 듣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고,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하지만, 다소 이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가능하지 않다.


결국 상처 받는 것, 다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어야 심리적 커밍아웃을 할 수 있다. 안전한 영역 밖으로 나를 노출하게 되면 그만큼 다칠 일이 많을 것이다. 배신을 당할 수도 있고,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으며, 적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고,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만큼 내가 단단해지는 순간 타인과 나 사이의 단절을 깨고 나올 수 있을 것이고, 그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 또 펼쳐질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너무 여리다. 아직 바깥은 나의 살갗이 베일 것만 같은 추위다. 하지만 추위보다 온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가만히 있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시기와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목록 쓰기: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