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외인 Feb 21. 2018

나를 멈추게 하는 사람(것)들

2016년  12월 곧 헤어질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

어제 불현듯 위의 제목과 같은 생각이 들었어. “아이 씨발 왜 나한테만 이래.”, “다 필요 없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씨발” 뭘 이런 말들이 마구 입에서 나오거나 마음속으로 외치는 경우들이 있지 않았어? 나 또한 너희들의 나이 때, 그 이후로 20대나 30대에도 그런 말들을 내뱉기도 하고, 마음속으로 혼자 분노에 차서 외치기도 했던 것 같다.


사실 그렇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막무가내로 마음대로 괜히 더 심술을 부리고, 심하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일부러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는 행동도 하곤 했던 것 같다. 그 시기 내 행동을 명확히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만큼 나도 흥분 상태여서 내 기억 속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말은 사라졌기 때문일 거 같아. 하지만 이미지로 남은 것은 왜 그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됐어..라는 것들이네.


그런데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저렇게 막무가내로 막장으로 치닫기 전에 내가 더 이상 개판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게 하는 사람,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아.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아버님이나 어머님이었고,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이었고, 어떤 시기에는 그것이 내 절친한 친구였고, 어떤 시긴에는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시기에는 내가 믿고 존경하는 어떤 분이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이룬 가정의 아내와 아이들이기도 하다.


“소녀는 관계를 파괴하고, 소년은 건물을 파괴한다.”는 문장이 있다. 최근에 읽었던 ‘소년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야. 흔히 막 나간다고 할 때 남자아이들은 무언가 스스로 억제 못할 폭력성을 휘두른다는 것이지. 그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행동이 그 아이만의 특출한 행동은 아니라 어쩌보면 일반적인 남자아이들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지. 난 말이야 순응적인 인간이란다. 너희들 나이 때에도 지극히 순응적인 인간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어. 그런 나조차도 이 글의 제일 처음에 썼던 것 같은 폭력성을 드러낼 때가 있단다. 물론 그 횟수는 현저히 적었지만 말이야.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에게는 공격성과 위험한 행동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하루에도 5~7회나 강타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위계 감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특히 아이가 다른 남자아이에 비해 공격성이 강하다면 그렇다) 적절한 감독이 없으면 이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하고 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잘만 관리된다면 중요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가치 있는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줄 그 에너지가 말이다.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공격성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일(그들이 ‘문명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원시와 싸우게’ 도와주는 일)은 인간의 본질적 의무이자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고난을 체혀갈 준비가 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 ‘소년의 심리학’, 마이클 거리언. pp81~82


위 책의 내용은 사춘기 남자아이에 관한 내용이다. 이미 사춘기를 건너왔을 너희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를 위와 같이 보내지 못했다면 그 시기의 공격성은 조절이 안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제 성인의 길로 들어가는 초입에 선 너희들이 타인의 규제와 관리는 받는 타율적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나를 멈추게 하는 사람(것)”을 찾고, 그를 통해서 자율적인 자기 통제의 힘을 길러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함을 말하고 싶단다. 이 말은 너희들만이 아니라 40대인 나에게도 해주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도 어른‘아이’일 것 같기 때문이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