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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11. 2021

밴쿠버에서 애니메이션 해먹기

주) *** 2024년 업데이트 : 이 글은 2007년 당시 밴쿠버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만 있을 뿐,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특히 게임에 있어서는 Amazon, MS, EA 등의 대형회사와 수많은 소규모 모바일 게임회사들이 포진해 있어서, VFS (Vancouver Film School), 또는 VanArt 출신들의 취업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만큼 정리해고도 많아졌구요. 






2007년, 아내가 이곳 지역 대학에서 도서관 준사서 (Library Technician) 과정을 듣고 있을 때, 급우 중에는 영국계 이민자로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을 17년간 해왔던 친구가 있었다. 사실 나로서는, 그냥 막연히 예전에 한국에서 하던 일을 캐나다에서도 계속해보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서, 아내에게 그 친구와 인터뷰를 할 수 있게 주선해 달라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자세하고 친절한 답을 얻었고, 이를 기점으로 밴쿠버에서 애니메이션을 해보겠다는 마음은 아예 접었다. (뭐… 나중에 어떻게 될진 또 모르지만…)   


혹시나, 나와 같은 미련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인터뷰 기록을 옮겨 본다. 물론 그냥 한 사람만의 경험과 의견이고 이미 십여 년이 지난 얘기이지만, 그래도 캐나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관심이 있으신 분 들에겐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학교 친구 남편의 느닷없는 인터뷰 요청에도 생생한 경험을 나눠 준 V 씨에게 감사를 드린다.




1, 애니메이션 일은 얼마나 했고, (2007년) 현재 캐나다 - 밴쿠버 애니메이션 업계 전망은 어떻게 되는가?


A) 나는 17년간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 일을 했고, 2002년까지 1990년대 대부분을 넬바나 (Nelvana :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캐나다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면서 매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밴쿠버가 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전체 북미 애니메이션 업계가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업계 판도가 많이 바뀌었다. 좀 우울한 얘기가 되겠지만, (3D를 포함해서) 북미 애니메이션 업계는 더 이상 옛날 같은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먼저, 직업 안정성(Job security)이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북미까지는 몰라도, 여하튼 밴쿠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감독들까지 모두 계약직이다. 일감이 있고, 회사로부터 사랑받는 사원이라면 (재능이 있는지는 둘째 문제고) 보통 재계약이 되는 건 문제가 없지만, 그 사이에 최소 2개월의 공백은 예상해야 한다. 특히 (내가 경험했던) 밴쿠버 업계는 아주 개판이라서 출근 전날까지 재계약 여부를 공지 못 받는 경우가 많았고, 때때로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서도 재계약이 될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다시 일하기 시작하고 2개월이 지나서야 계약서를 쓴 적도 있었다.


(2007년) 지금 당장은 일감이 넘쳐나고 일손이 부족해서, 그냥 클럽 파티 같은 곳에서 만난 생초짜들이 많이 채용되고 있다던데, 매해 고용 사정은 180도 변하기도 한다. 지난 2년간은 애니메이션 경기가 아주 붐이었지만, 그 전해에는 나 같은 경우 7개월간 일을 못하기도 했었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내 친구의 경우엔, 한 번은 일이 없어서 일주일에 20불을 번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D 디지털 애니메이션 촬영 경력에, 실사영화 / 애니메이션 양 쪽 다 경험이 있다면, 꾸준하게 일을 받을 확률이 높다. 재능 있고, 손이 빠르고, 연출가랑 호흡도 잘 맞고, 회사로 부터 사랑받는다면 재계약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2007년) 요즘은 대개 플래시나 툰붐 (Toon Boom : 2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으로 작업한 후 애프터 에펙츠 (Adobe After Effects)로 촬영이나 합성을 해서 완성한다


대부분의 밴쿠버 애니메이션 회사에서는 프로듀서 직책을 새로 뽑는 경우는 없다. 내가 바델 (Bardel Entertainment : 밴쿠버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할 때는 프로듀서 한 명이 5개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담당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2. 캐나다 - 밴쿠버 애니메이션 회사 중 기획 / 창작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2007년) 현재 캐나다에 있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미국 방송 하청작업만을 한다. 원, 동화, 칼라 등 부분적으로 일을 하거나, 전체 원청을 받아서 일을 하는데, 자체적으로 제작비를 마련해서 기획 작품을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최근에 기획물을 본 건 스튜디오 비 (Studio B : 밴쿠버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업체였는데, 현재 핼리팩스의 와일드 브레인 (Wild Brain) 산하로 매각되었다)에서 몇 해 전에 만든 “Class of Titan”이었던 것 같다. 바델도 점점 성장하고 있고, 언젠가는 자체 기획물을 만들지도 모르지만 (2007년 현재)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3D의 경우는 잘 모르지만, 매인프레임 (Mainframe : 밴쿠버 소재, 캐나다 대표 3D 애니메이션 회사)이 만들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최근에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물론 EA와 같은 게임회사들은 창작일을 할 텐데, 개인적인 경험이나 연고가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넬바나에서 시나리오부터 최종 편집까지 다 하던 때가 그립다.  



3. 캐나다 자체 제작하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있는가?


A) 캐나다에서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제작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미국에서는 3D의 경우 아직도 매해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극장용 2D는 미국에서도 제작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4. 캐나다 정부에서 애니메이션 회사들에게 지원하는 창작 보조금 같은 것이 있는가?


A) 그런 게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5년 전에 밴쿠버로 올 즈음에 NFBC (캐나다 국립 영상 진흥위)에서 모든 예산을 독립영화로 돌리겠다고 하는 걸 들었다. 솔직히, 정부지원에 대해 들은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5. 17년간 애니메이션 경력을 뒤로한 채 다른 일을 새로 시작하게 된 경위를 물어봐도 될까?


A) 처음 넬바나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게 좋았다. 하지만, (2007년) 지금은 모든 일이 계약직으로 돌아가는데, 젊은 사람들이야 몇 달 일하다가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여행도 다니고 하는 생활이 문제없을지는 몰라도, 난 이제 좀 더 높은 직업 안정성과 회사 복지가 필요하다 (2002년에 넬바나에서 받았던 회사 복지가 내 애니메이션 경력에서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2007년) 최근 들어, 이 업계에서도 ‘더 빨리’, ‘더 싸게’ 풍조가 만연해지는 걸 느낀다. 특히 밴쿠버에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룰 같은 게 있는데, 재계약을 원하면 초과근무 수당 따위는 청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7년간, 색지정이나 디지털 촬영 같은 일을 하면서 즐거웠었는데, 이젠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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