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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Aug 21. 2021

국뽕 팬데믹

예전에 어느 방송에서 유시민 작가가 이웅평 대령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웅평은… 1983년이었던가..? 북한 전투기를 탄 채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하 / 망명했던 당시 북한군 엘리트 조종사였는데, 그날 동네에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고 “국민 여러분! 이건 실제상황입니다!”라고 외치던 공습경보 방송과, 주변 어른들의 긴장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무튼, 북한군 현직 장교에 전투기까지 몰고 탈북했던 이웅평은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홍보 아이템으로 등극하면서 귀순용사라며 엄청나게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되었고, 군부대를 순회하면서 북한의 현실에 대해 정신교육을 하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부대 병사들이 사과를 깎아 먹으면서 껍질을 전두환 사진이 실린 신문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걸 발견하고는, 그 병사에게 “어딜 감히 국가 원수의 얼굴에 쓰레기를 버리느냐? 너희 집에선 너희 아버지 사진 위에 쓰레기를 버리느냐?”라고 크게 나무랐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웅평은 자기가 살아갈 나라를 저쪽 편에서 이쪽 편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아직 북한 김씨 왕조가 통치하는 봉건국가에 머물렀던 것이다. “‘짐’이 곧 국가다”와 같은 분위기의 사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그리고 탈북 후 몇 개월간 안기부에서 정신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았을 그에게), 군인이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최고 통치자에게 충성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으리라. 물론, 이 에피소드는 이웅평의 실수나 오해로 인해서 생긴 해프닝이고, 또 이문화(異文化)에 대해 권위적으로 대응한 태도는 비판 받을수도 있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건에 있어서 이웅평의 실수를 조롱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정말이지 수많은 사회와 각기 다른 문화가 있는데, 이웅평은 당시 그냥 자신이 선택한 사회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을 중심으로 정체 모를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질환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 역사책에 실리게 될 바이러스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 당시 나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중국계 이민자 J 씨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설날은 중국에 가서 가족들과 보내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1월이 되고, 후베이성에서는 여전히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도시 봉쇄 같은 초강수는 아직 시행되지 않고 있었는데, J 씨가 설날 즈음에 맞춰 허난성 (후베이성 우한시로부터 600km 정도 거리) 가족 집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자 후베이성 전체에 봉쇄령이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중국 정부나 언론에서 공식 발표한 사항이 아니고, J 씨와 그의 지인이 경험한 얘기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후에 얘기할 내용과 관계가 있으므로 기록을 남길까 합니다. 우한 봉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위키피디아 : https://en.wikipedia.org/wiki/COVID-19_lockdown_in_China 나 BBC 뉴스 https://www.bbc.com/news/world-asia-china-51217455 를 참고하세요)


J 씨로부터 전해 들은 우한 봉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봉쇄령은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의 홍보도 없이 순식간에 떨어졌고 (그럼에도 삽시간에 우한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로 기차역과 고속도로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 때문에 건물에 갇힌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시내 중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는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쳐 문을 잠가 버린 후 2주 후에 귀가를 허락했다고 한다. 집집마다 단 한 명을 대표로 정해서 식료품 쇼핑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만 외출이 허용되었고, 매일매일 경찰이 가가호호 방문해서 가족 구성원의 점호를 하고 열을 재고 갔다고 한다. 각 도시로 진입하는 모든 톨게이트가 동시에 닫히는 바람에 고속도로에 남은 차량들은 갓길에 정차한 채 2주일을 버텨야 했고, 경찰들이 일일이 정차한 차들을 방문하면서 열을 재고, 연료와 먹을 걸 나눠주고 다녔다고 한다. 이 정도 수준의 도시 봉쇄가 3월까지 계속되면서, 점차 후베이성에서의 바이러스 전파는 진정되었다고 한다. 21세기 근대 문명, 그것도 미국과 더불어 세계 양강에 위치하는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정말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J 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중국 정부에서 확진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을 때, 서방언론이나 한국 언론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였지만, J 씨에게 이런 도시전설과 같은 얘기를 들은 나로서는 중국 정부의 발표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도시전설 괴담은 밴쿠버 내 중국인 커뮤니티에도 번져 나갔고,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중국인 사회에도 똑같이 번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믿을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났다. 우한 봉쇄에 대한 괴담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많은 수의 중국인 유학생 및 이민자들이 중국 정부의 발 빠른 선제적 대응에 찬사를 보냈고, 상대적으로 뒤쳐지고 느슨한 북미, 유럽 국가의 방역정책에 대해선 크게 실망하고 조롱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곧이어, 신종 바이러스 역병에 대한 보다 강력한 통제를 원하는 귀국 행렬로 인해서 밴쿠버에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전 좌석이 매일 매진되고, 중국행 티켓이 종전 가격의 3배에 거래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팬데믹 초기,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미권 국가에서는 느닷없이 화장지 품절 대란이 일어나서 다른 나라들의 빈축을 샀었다. 현지에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적어도 밴쿠버에서 만큼은), 화장지뿐만 아니라 밀가루, 생수 등 각종 생필품들의 사재기가 극성일 때였는데, 워낙에 ‘화장지 대란’이라는 말이 센세이셜하다 보니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조롱을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두루마리 화장지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일반 각티슈나 키친타월까지 모두 품절되는 상황이었고, 워낙에 느린 나와 아내는 그냥 어버버버 지켜보고만 있기도 하고 그 모든 상황에 웃기만 하고 그랬었는데, 당시 아무도 화장지가 품절되는 이유를 몰랐다. 심지어 주변 사람 중에 화장지 사재기에 동참한 사람이 있어서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 역시 자기도 모른다면서 킬킬대기만 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백화점 정기 세일에 폭주하는 인파를 보고 자기도 같이 동조해버리는 하나의 쇼핑 이벤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보면 불안과 공포가 바이러스처럼 무한 증식한 걸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차례 광풍이 지난 몇 개월 후, 내가 시설관리를 하는 건물 주차장에 도난 사고가 있었다. 이 건물에는 캐나다 환경부 소속 야생동물 경비대 (Wildlife Enforcer)가 입주해 있고, 그들은 야생동물이나 밀렵군들을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총기를 항상 휴대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주차장 셔터를 부순 후 그 야생동물 경비대 트럭을 털었던 것이다. 다행히 총기류는 따로 보관되어 있어서 괜찮았지만, 나중에 보니 서바이벌 백팩 (야생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의 조난 상황을 대비해 응급 식량이나 약품 등이 들어있는 배낭) 하나가 없어졌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그 도둑은 총기류나 랩탑 가방 같은 귀중품을 노리고 트럭을 털었으나 서바이벌 백팩 하나만 챙기고선 달아난 사건이었고, 힘들게 훔친 배낭의 정체를 알았는지 그 배낭마저 다른 층의 주차장에 버리고 달아났다.


신고를 받고, 버려진 배낭을 회수하러 가봤더니서바이벌 백팩, 이름하여 생존배낭에는, 다른 응급약품 등과 함께, 두루마리 화장지  개가 들어있었다. 아니.. 그거 말고, 정수 필터나 소독약, 붕대 등을  집어넣는   생존 배낭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나? 심지어 서바이벌 백팩과 같은  개개인의 취향대로 구성품을 바꾸는  아니라, 미리 품목들이 정해지고  채워진 채로 정부에서 도매로 구입하는  아닌가? 그러면, 캐나다 환경부의 생존배낭 구성품의 야전교범에 똥휴지가 필수품인 건가하면서 그렇게 도저히 이해를  수가 없었다가이내, .. 정말 이런 똥휴지에 진심인 자식들 같으니라구, 하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가  가더라도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까발려진 서바이벌 백팩 내용물




코로나 사태를 통해서 모든 국가는 ‘공공보건’과 ‘시민의 자유’, 그리고 ‘시장경제 활성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책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된다. 물론 이런 다수 민주주의의 결론에는 사전에 이루어지는 정부 및 전문가들의 홍보와 교육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그건 사실 세세한 각론 - 마스크 착용 여부, 백신 교차 접종 여부 - 에 적용되는 부분이지, 어느 정도까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지, 혹은 어느 정도까지 공공보건을 포기할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를 기반으로 한다.


캐나다와 BC주에서 마스크 착용의 효용성을 초기에 인지하지 못해서 강제 시행이 뒤늦게 이루어진 일은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었고, 그로 인해 초기 희생자들이 많이 생긴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정책 하나를 결정하고 강제 시행에 있어서 시민들의 동의를 구할 때에 캐나다와 BC 주는 충분한 연구 및 다른 나라의 데이터를 보고 나서 시간을 두고 결정하는 길을 택했다. 페스트와 스페인 독감을 겪으면서, 호흡기 전염병에 있어서는 마스크보다 손발 씻기 및 거리 두기가 더 효율적이다라는 경험, 그리고 서양문화에서 가지는 ‘마스크 착용’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 등을 고려한다면,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권 보건기구에서 마스크 착용을 그렇게 망설였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그동안 미세먼지로 인해서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없었던, 한, 중, 일 국가의 경우 초기부터 훨씬 나은 방역 성과를 보여주었다. 마스크 착용이라는 것이, 무증상 감염 여부가 불확실한 나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한다는 주목적과는 달리, 팬데믹 초기에는 마스크 착용이 감염자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는 각자도생의 호신도구로서 인식되었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저절로 필수화 될 수 있었던 것도 있다 (초기에 있었던 한, 중, 일 3국에서의 마스크 매점매석, 품귀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최첨단 이동통신과 CCTV 덕택에 초기 확진자 및 슈퍼 전파자 동선을 추적 관리하는 데에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고, (일부에선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확진자 동선 공개와 추적 관리 시스템을 유지해서 방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후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 한국과 같은 동선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겠다고 하는 바람에 한국 시민들의 자부심이 더 올라갔지만, 실제로 다른 나라에 그대로 도입했을 때 그 사회 구성원들의 저항이 절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어느 방식이 더 우월한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이런 정책들의 차이가 각 사회의 문화 차이에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는 것은 더욱 힘들다. 어느 방식이 내 삶의 스타일에 더 적합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선 어느정도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냥 앉아서 공포에 사로 잡히거나 불평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더 적합한 사회정책을 좇아서 역이민을 간다든지 하는 노력에 대해서는 매우 찬성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문화, 자기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멸시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팬데믹 초기부터, 사회 문화에 따라서, 국가간 정책에 따라서 방역 진행상황에 극심한 차이가 있다 보니까,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회불안요인이 계속해서 존재하다 보니까, 언론과 여론에서는 자연스럽게 “우린 잘 이겨내고 있다”라는 독려가 잇다르게 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고, 국가적인 위기에서 여론이 스스로를 응원하고 현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건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다. 문제는 상황이 독려와 응원으로 그치지 않고 우월감에 사로 잡힌다든지, 다른 나라의 문화, 정책을 폄하, 조롱, 비난한다든지 하는 정신병이 코로나 19의 전염력에 버금가게 창궐한다는 것에 있다.


기존 의학 상식을 뛰어넘는 전파율과 생존율을 가진 이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포심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대부분의 현세대 사람들에게 있어 처음 겪는 미증유의 위기상황을 각국의 정부부처와 시민들이 합심해서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보는 건 때때로 감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럴 때 운전대를 잡고 길 안내를 해야 할 세계 보건기구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고,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팬데믹에 대응하는 건 혼란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리고, 세계적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도 근근이 버텨나가기만 하고 있고 최종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우리, 전 세계는 아직 살아남았고, 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싸워 결국 이긴다 하더라도, 무분별한 국뽕만 넘쳐나고 타인과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한 존중이나 관용이 없다면 이번 팬데믹은 인류 역사에 아주 깊고 굵직한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용해서 방역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재 상황은, 비록 코로나19가 종식이 된다고 할지라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사회 운영 시스템에 커다란 변화를 주게 될 것이고, (방역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국제적으로 공통된 전망이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나라마다 자신들에게 맞는 뉴 노멀을 창조해낼 것으로 보인다. 만일 우리가 폐쇄적인 자부심과 일그러진 국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팬데믹이 종식된 이후에도 역시 심각한 사회갈등이 유발될 것이 틀림없다.




다시 한번 BC주 PHO(Public Health Officer : 공공보건 감독관) Dr. Bonnie Henry의 말을 빌자면, “We do not know everybody’s story (사람에게는 각자 서로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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