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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n 10. 2023

왜냐하면 익숙한 것들 중에도 새로운 걸 계속 발견하니까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 (델타그로브 캠핑장)

"그 사람을 정확히 알려면 같이 여행을 다녀보라"라는 얘기가 있다. 물론 이 얘기가 나왔을 때는 한양까지 일주일 동안 산 넘고 물 건너 걸어가야 하는 여행이었을 테고, 가는 도중 산적이나 호랑이를 만나지 않을까 걱정을 했어야 했을 테니 지금과 상황은 많이 다를 테지만, 그래도 뜻하지 않은 상황과 맞부닥치거나 지속적인 노곤함이 동반하는 건 비행기를 타고 유럽여행을 다니는 지금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서로 숨겨왔던 성격도 드러나게 되고, 서로의 취향이나 스타일이 잘 어울리게 될지 아닐지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장시간 여행의 기회를 언제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의 취향이나 성향도 나이 들면서 회까닥 바뀔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족 간에, 혹은 오래된 연인이나 이미 결혼한 커플의 경우에 벌써 여행 짐을 쌀 때부터 계속해서 부딪히고, 각자 주장만 내세우고, 삐지고 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래서 연인끼리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자유여행 말고 패키지여행을 가라고 하는 건가?


그렇게 따지면, 처음 같이 세계일주 여행을 다니면서 같이 사네, 못 사네 할 정도로 싸우고 나서도 20년 넘게 같이 여행을 다니고, 여름이 되면 거의 매주 캠핑 짐을 싸고 있는 우리 부부가 좀 신기하긴 하다. 금술의 비결? 그딴 것 없다. 친구한테 "이 집은 부부가 다 푸틴 같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화목한 가정을 위해 겸허히 참고 견디는 그런 태도는 없다. 예전에는 주말이 되면 집에서 쉬고 싶은 나와 밖으로 놀러 다니고 싶은 아내의 희망이 충돌하면서 애초부터 주말여행이라는 계획을 입에 꺼내는 순간부터 화르르 싸우곤 했었다. 그러다가, 내가 비교적 육체적으로 덜 힘든 직장으로 옮기게 되고, 아내의 에너지 역시 젊었을 때만큼 활발하기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절충이 된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하는 건, 바로 밖으로 나왔을 때의 경험이다. 전날부터 준비하면서 다투고, 삐지고, 출발 당일 새벽부터 캠핑 짐을 나르고 하면서 '안 맞아, 정말 안 맞는구나,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있나!!' 하면서 갑갑해 하지만, 막상 캠핑장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짐을 풀고, 의자에 앉아서 부드러운 바람과 새소리, 나무들 흔들리는 소리를 들르면서 맥주를 마시는 느낌. "아... 좋다... 역시 일단 나오면 좋구나..."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지난 12시간 동안 짐을 싸면서 아내와 집요하게 충돌했던 순간을 그야말로 싸악 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이번 컬터스 호수 캠핑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그동안 자주 안 찾던 캠핑장에 많이 오게 되었다. 4월에는 페리를 타고 바다 건너 선샤인 코스트에 가서 텐트 캠핑을 했고, 5월에는 포트랭리에 있는 사설 캠핑장에 갔었는데 둘 다 2017년에 마지막으로 갔었던 곳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6월 첫 주말에 갔던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 역시 지난 2018년에 마지막으로 갔다가 5년 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이렇게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감정을 정화시키고 있다 보면, '음... 근데... 왜 그동안 여길 안 왔었지? 여긴 비교적 예약하기도 쉬운데...' 하는 의문에 종종 잠기게 되는데, 사실 이유는 딴 거 없다. 다른 곳 - '포트코브', '앨리스 호수', '롤리 호수', '골든이어즈' 등이 전기 공급이 되거나 바다 옆에 사이트가 있다거나, 집에서 가깝다거나 하는 월등한 매력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동시에 집에서 컬터스 호수까지 오는 길이 만만치 않게 멀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교통체증이 없는 주말 아침에 와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니까, 금요일 저녁에 들어가거나 일요일에 나올 때처럼 고속도로 통행량이 많을 때는 빼박 한 시간 반을 길에 버려야 한다. 그리고 신호등 복잡한 시내를 지나가야 하니 트레일러 끌고 다니기가 신경도 쓰인다 (이번에도 토요일 아침에 트레일러 없이 운전하는 게 아니었다면 좀 더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캠핑장 - 앨리스 호수나 골든이어즈에 비해서 사이트 크기나 사이트 간 간격이 작은 것도 이유가 되겠다 (그래도 사설 캠핑장에 비해서 크고 프라이버시 보호도 좋다).


그래도 무엇보다 큰 이유는 처음 왔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2011년 5월 말에 호숫가와 접한 사이트를 잡았는데 너무너무 시끄러웠던 것이다. 춥고 비도 오고 그랬음에도 밤새 떠들고, 모터보트로 전력 질주하고, 캠핑장과 접한 뒤편 차도 (Columbia Valley Highway)에서는 자동차들이 이니셜 D를 찍고 앉았고... 젊은 시절 술 먹고 바보짓하면서 만만찮게 민폐를 저지른 나로서는 뭐라 불평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시민의식이라는 게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곳 델타그로브 (Delta Grove) 캠핑장에 큰 실망을 안고 돌아갔었다. 때문에, 지난 2018년에 아내가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에 예약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능하면 호수와 멀리 떨어진 캠핑장으로 잡자고 권유했었고, 총 4개의 캠핑장 중에서 가장 외진 '클리어크릭 (Clear Creek)'에서 캠핑을 해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몇 주 전에 자리가 하나 난 걸 발견하고 갑작스럽게 예약을 한 것이라서 악몽의 '델타그로브'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그저 자리가 하나 있는 것에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보통 4개월 전 아침 7시에 예약 시작하면서 광역 밴쿠버의 모든 캠핑장 주말 예약은 완료가 되지만, 가끔 이렇게 우연하게 취소가 난 자리가 눈에 걸리곤 한다. 아무리 안 좋은 기억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눈먼 자리가 나오면 감사할 나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전히 시끄럽다. 어쩐 일인지 모터보트는 그리 많지 않지만, 캠핑장 뒤쪽 차도에서 분노의 질주가 이어지는 건 여전하다. 가뜩이나 캠핑장들로 향하는 길이라서 트럭들이 많은데 약간의 경사 때문에 엔진 토크 소리가 우렁차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 장시간 롱테이크 촬영을 했는데 현장음을 거의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나중에 편집할 때 6개 레이어로 촘촘히 효과음을 깔아 넣어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우리도 둘만의 고요한 캠핑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고맙게도 지인들이 찾아주셨고, 토요일 오전부터  맥주를 까면서 왁자지껄 정신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의 메뉴는 전통 파티음식인 부침개와 떡볶이. 기름 냄새가 많이 나서 집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음식들을 맘껏 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캠핑의 장점.


속지 마소, 속지 마소. 실제 현장에서는 이 영상과 달리 극악무도한 소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기름과 탄수화물 조합은 언제나 진리


따지고 들자면,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에 있는 캠핑장들의 문제는 거리나 소음뿐만은 아니었다. 뭐 결국 소음 역시 이와 관련된 거라고 볼 수 있겠지만, 캠핑장 관리가 너무 안된다는 사실. 4개 캠핑장 총 298개 사이트를 관리하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11시 이후에 사이트 청소를 위해 다니는 차량 말고는 따로 순찰을 도는 차량들을 보기 힘들었다. 남자 화장실에 핸드 드라이어는 고장이 나 있었고, 소변기는 1박 2일간 계속 막혀 있었다. 밤 열한 시가 넘도록 도끼질을 하고, 차로 왔다 갔다 하고, 소란스럽게 떠들어도 누구 하나 규제를 하는 사람이 없다. 캠핑장 앞 게이트 닫는 시간을 물어봤더니 항상 열어둔다고 한다. 이제껏 캠핑장에서 도난 사고가 일어나는 건 보질 못했으나, 저렇게 밤새껏 문을 열어두면 외부인이 들어와 텐트를 털어도 어떻게 찾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누가 불평을 하면 금방 고쳐질지도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놀러 와서 얼굴 붉히려고 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예전에도 느낀 적이 있었는데, 다른 주립공원들과 다르게,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을 사용하는 인구분포가, 헝클어진 머리 위로 야구모자를 올려 쓰고, 목덜미는 붉게 그을렸고, 어깨는 굽은 채 탱크톱과 반쯤 내려간 바지를 즐겨 입는 백인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런지, 뭔가 불편하고 눈살 찌푸려진 상황을 봐도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관리의 부족은 우리에게도 마냥 불편한 일만도 아닌 것이, 우리 역시 캠핑장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 11시 전이었고, 원칙적으로 체크인 시간은 오후 1시 이후였지만, 게이트 하우스 직원이 하는 말은 일단 들어갔다가 1시 이후에 체크인하러 다시 나오라는 것뿐이었다 (게이트 하우스와 델타그로브 캠핑장을 2km 정도 떨어져 있다). 캠핑장에 가보니 마침 사이트가 비어 있어서 자리를 펴고 놀고 있었는데, 청소를 하러 온 트럭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가버렸다. 어쩌면 개이득을 외치면서 갔을지도. 그 후로도 딱히 체크인을 하지 않고 다음날까지 체크인 표시 없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따지러 오질 않았다. 항상 열려있는 게이트 덕분에 지인들도 밤늦게까지 놀 수 있었다. 이렇게 장단점이 골고루 있다 보니까, 그냥 여긴 '누군가 컴플레인을 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서 규제를 할 필요는 없다'라는 생각이 디폴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웃고 떠들고 배불리 먹은 후,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캠핑장 산책을 했는데, 으응?, 이상한 게 눈에 띈다. 저기 뭔가 트레일러랑 저 나무 말뚝이랑 검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놀러 와준 친구분이 전기 사이트라고 확인을 해준다. 전기? 전기 사이트라고? 아니... 여기에 전기 사이트가 있었다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컬터스 호수 주립공원이라고 하면, 멀어서 운전하기 개빡세고, 사이트 좁고,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그래서 보통 여름 주말 예약 날에도 예약 시작 30분 후까지 사이트가 남아있고... 뭐 이런 이미지였는데.. 전기가 있었다니... 그것도 호숫가 바로 앞 사이트에... 어쩐 일인지 이곳 델타그로브 캠핑장에는 딱 D25, D26, 두 사이트에만 전기 공급이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주립공원 웹사이트에서 캠핑 예약을 할 때 전기 사이트로 검색을 해도 이곳 델타그로브 캠핑장이 떴다. 이제껏 이걸 모르고 있었다니... 전기 사이트도 유니콘 사이트이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니 30번대 중반 사이트들 대부분이 바로 호숫가와 접해있다. 말하자면 (포트코브 캠핑장처럼) 개별 사이트들이 개인해변을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어째서? 이때까지 이런 황금 사이트들을 모르고 있었나? 심지어 지난 캠핑 기록사진들을 보니 2011년에 이곳 사이트를 잡아서 호숫가에 의자 놓고 놀고 있었네.


델타그로브 캠핑장의 몇몇 호숫가 사이트들의 경우 개인 해변을 가지고 있다
그 밖의 웬만한 사이트에서도 호숫가까지 5분도 안 걸린다
'롤리 호수', '알루엣 호수' 등 광역 밴쿠버의 다른 주립공원 호수와는 달리 '컬터스 호수'의 경우 급경사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보트나 카약들을 더 타기 좋은 듯


사실, 그렇다. 수도권 위성도시 A 시에서 20년을 넘게 살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10여 년 했음에도 A 시와 서울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몇 차례 얘기했지만 남산 타워에 가본 적도 없다. 마찬가지로 밴쿠버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고 캠핑도 꾸준히 해왔지만 (심지어 주립공원 캠핑에 대해 책도 썼지만!!) 여전히 다 알 수는 없다. 가는 곳만 가고 익숙한 환경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올해처럼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새로운 곳, 혹은 한동안 안 갔던 곳에 가게 되는데, 이럴 때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또 새로움을 발견한다. 마치 50이 넘어도 나 자신에게서 계속 새로운 점을 발견해 나가는 것처럼.


무척 허름해 보이는 샤워시설 역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보통 주립공원 캠핑장 샤워시설은 누르는 버튼 같은 것이 있어서 한 번 누르면 한 1 분간? 온수가 나오다가 저절로 끊어지는 물 절약 방식이어서 (사실 캠핑장에 따라 지속시간이 천차만별이다. 어느 캠핑장의 경우에는 쉬지 않고 눌러야 물이 안 끊어진다), 처음 2~3분간은 계속 누르면서 차가운 물을 다 내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곳 델타그로브의 샤워시설은 오래된 모텔이나 가정집의 밸브를 달아두었다. 한번 당기면 곧바로 물이 처음부터 콸콸 나오고, 심지어 밸브를 움직여 온도 조절도 할 수 있다. 하하하하. 가끔 보면 에너지 절감 같은 개념은 싹 무시했던 예전 방식이 보다 사용자 친화적인 경우가 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여전히 소란스럽다. 자동차는 씽씽, 모터보트는 부아앙, 도끼질은 뽝뽝이다. 바로 옆사이트는 아이들도 잔뜩 데리고 왔던데 도무지 애들 재울 생각은 안 하고 하하호호 즐겁다. 짜증이 좀 났지만 이럴 때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신나게 떠들며 인사하는 사람들 심장에 호랑가시나무 말뚝을 박아야 한다고 했던 스크루지 영감을 생각하려 한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나와서 캠핑을 즐기다 보면, 좀 소란스러울 때도 있는 것이겠지. 사실 이렇게 자비로울 수 있는 건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기 때문이었는데, 예전에 시끄러웠던 경험 때문에 산업현장에서 쓰는 일회용 귀마개를 준비해 왔고, 정말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어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번에 텐트 캠핑을 할 기회가 있으면 눈가리개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10월 8일 추가 : 여름이 끝나고 캠핑장의 나뭇잎들이 조금씩 색깔을 더해 갈 무렵 이곳 델타그로브 캠핑장을 한 번 더 찾게 되었다. 이번엔 그토록 바라던 - 호숫가에 위치해 개인 해변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전기 공급도 되는 - 25번 사이트 예약에 성공했는데, 비교적 넓은데다가 샤워장과 수돗가도 가까워서 어쩌면 캠핑장 최고의 사이트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어디서인지 하수구 냄새가 끊임없이 흘러들었고, 그리고... 아... 미친 보트들 때문에, 개인 해변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고요한 호수를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모터 보트에 수상스키는 그렇다 하더라도 왜 저 인간들은 저렇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다니는 건지. 뭐... 저렇게 크게 틀지 않으면 엔진소음 때문에 자기들도 안들려서 그런 거 겠지만.



아. 띠끄러




가을날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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