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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Sep 06. 2023

새로운 것도 좋고

포트캠핑

팬데믹 당시 해외여행이 봉쇄되고 자연스럽게 캠핑여행 인구가 폭증하면서 BC주립공원 측에서는 기존의 4개월 사전 예약 시스템을 2개월로 바꾼 적이 있었다. 7월 25일에 캠핑을 시작하고 싶다면 캠핑장 예약을 주립공원 홈페이지를 통해 5월 25일부터 할 수 있다는 말인데, 여름철 주말 캠핑장 예약의 경우 보통 첫날, 첫 3초 안에 예약이 완판 되는 건 언제 하든 마찬가지여서 사전예약 기간 조정이 과연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는 무척 의문스러웠지만 그래도 지난 3년간 계속 이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었다. 그리고 대망의 2023년. 역시나 팬데믹이 끝나서 그렇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BC 주립공원 캠핑의 사전예약 기간이 4개월 전으로 복귀되었는데, (보통 캠핑 성수기가 9월에 끝이 나니까) 주립공원 입장에서는 캠핑장 예약 판매 수익을 상반기 (6월 이전)에 확 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예약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4개월 후에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더라도 무조건 지르고 봐야 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이... 아... 그건가? 캠핑장 예약 수수료 (일박에 6불, 최대 18불)는 중간에 예약 취소를 하더라도 환불이 안 되는 거니까... 예약 취소 상황을 더 많이 유도할 수 있도록...??? BC 주립공원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인가?


이렇게 볼멘소리를 하더라도 여전히 주립공원 캠핑장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설 캠핑장이나 국립공원에 비해 무척 넓다. 포트코브처럼 상대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덜한 곳도 다른 곳에 비교하면 무척 넓고 사이트 간 간격이 충분한 편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숲 속에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건 덤이다. 아주 더우면 근처 호수에 뛰어들며 놀 수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용료가 싼 편이다. 2015년 이후로 캠핑장 사용료나 예약요금 인상이 없었다 (2015년에도 일박에 2.5불 정도 올랐다). 스쿼미시에 있는 앨리스 레이크 캠핑장의 전기 사이트의 경우 일박에 $49.3 ($35 사용료, $8 전기 사용료, $6 예약비, $0.3 세금)인데 비해 근처 사설 캠핑장 Klahanie Campground의 경우 여름철 일박에 $73.5가 소요된다. 그리고 사설 캠핑장은 샤워시설 사용료를 따로 받는다. 사설의 경우 사이트가 작아서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원체 힘들고 방문차량 주차가 어렵지만, 일단 어른 2명 이상이 추가로 캠핑을 한다면 추가 1명당 10불, 추가 차량 1대당 10불이 더 붙는다.


이렇다 보니,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4개월 전에 주립공원 캠핑장을 예약하려고 눈에 불을 켠다. 팀을 짜서 같이 예약을 하기도 하고, 주중부터 예약한 후 미리 가서 텐트만 쳐놓고 오기도 한다 (주립공원 캠핑장의 경우 도착 예정일 다음날 11시까지 체크인을 하지 않으면 전체 예약이 환불 없이 몰수된다. 그래서 주중에 와서 체크인하고 텐트만 쳐 두고 돌아간 다음 주말이 되어서야 나타나는 사람들도 있다. 꽁돈을 날리는 셈이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주립공원 캠핑장이 다른 곳에 비해 매력적이라는 얘기). 별의별 꼼수를 써서라도 주립공원 캠핑장을 예약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특히 포트코브 바닷가 앞과 같은 명당자리는 온 우주의 힘이라도 빌리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캐나다의 5월 공휴일에는 '빅토리아 데이 (Victoria Day)'라는 날이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빅토리아 영국 여왕의 업적을 기리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생일이 5월 24일이어서 5월 24일 직전 월요일을 주말과 붙여 연휴를 만들어놓는다. 공공기관에서는 캐나다 국기와 함께 영국 국기도 같이 게양해서 영연방 (Commonwealth of Nation)의 일원임을 기념하고 영국 왕이자 영연방의 수장 (현재는 찰스 3세로 정해진 규정은 없지만 전통적으로 영국 왕이 연연방의 수장노릇을 해왔다)을 같이 기념한다. 영국에서 식민지 땅으로 이주해서는 아직도 주류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인들의 입장에서야 영국 식민지 시대를 이어받은 영연방 시스템을 기념하고 싶어 할지 몰라도, 당장 이주자들에게 땅 뺏기고, 언어 뺏기고, 이름을 뺏겼던 이곳 원주민 사회가 이날을 같이 기념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 이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없는 형편이다. 그냥 보통, 일 년 캠핑을 처음 시작하는 날 정도로 생각할 뿐.


아쉽게도 4개월 전 이번 빅토리아 데이 연휴 주립공원 캠핑장 예약에 실패한 우리로서는 사설 캠핑장 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 마저도 마지막 하나 남은 사이트를 간신히 건졌다. '포트 랭리 (Fort Langley)' 시에 있는 '포트캠핑 (Fort Camping)'에는 지난 2017년에 RV를 처음 구매하고 나서 설비 테스트를 하기 위해 온 적이 있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설캠핑장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지만, 주립공원의 경우 이곳처럼 사이트에 상. 하수도 시설이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전기, 수도, 온수, 에어컨 등 모두 점검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도 캠핑장 안에서 놀거나 시설을 제대로 이용했던 것 같지는 않다. 신속하게 장비 점검을 마친 후 약간의 수리를 하고 나서, 곧바로 시내로 나가서 골동품 가게 구경 등을 했으리라. 쌍문동과 부천이 서로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이라고 광고하는 것처럼 BC 주에서도 많은 도시에서 자기들이 BC의 첫 탄생지라고 내세우고 있는데, 이곳 포트 랭리도, 아니나 다를까, BC주의 첫 번째 도시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 하긴 포트 랭리나 뉴웨스트민스터 모두 프레이저강 유역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땐 뭐, 공식적으로 누가 첫 마을이라고 인증서를 준 것도 아니니까, 강 유역을 따라 무역선들이 떠다니다가 정착했다고 하더라도 서로 누가 먼저 마을을 만든 건지 알 수나 있겠나. 아무튼 1931년에 건립되었다는 공회당 건물도 아직 멀쩡하게 있고, 마을 중심가에도 각종 골동품 가게나 관광상품을 파는 가게, 그리고 예쁜 음식들을 파는 식당 들로 가득하다. 때문에, 비록 캠핑장 내부가 재미가 없더라도 조금만 나가면 동네 관광지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트캠핑에는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포트무디가 자랑하는 백 년도 안 된 공회당 (Fort Moody Community Hall)


포트무디 시내. 오른쪽 서점/커피숍이 <캐나다 체크인>에서 이효리 가수가 브런치를 먹었던 곳


그리고, 막상 와서 세팅을 하고 보니 마음이 열린다. 일단 집에서 3~40분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라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체크인을 할 때, 예전과 달라진 점을 조곤조곤 설명을 해주는 캠핑장 호스트 아줌마에게도 환대를 느낀다. "엘비스는 일요일에 와요."라는 말도 덧붙인다. 뭐라고요? 엘비스가 온다구요? 전 세계 모창 가수들이 한 번씩 도전하는 엘비스. 이곳에서는 너훈아 급이라고 보면 되는가.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출발을 했기에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5시 정도 되었었는데, 한창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차분하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들만 보일 뿐, 바로 옆 캠핑장과 따닥따닥 붙어있어서 그런 건지 사람들이 더욱 조심하는 것 같다. 지난 부활절 캠핑 때 좌측 창문에서 물이 새는 걸 발견했어서, 이렇게 날씨 좋은 날 씰링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있으므로 락스 넣어서 물탱크 소독도 한다. 일 년에 한 번 해주는 물 필터 교체도 이런 날 빼먹을 수 없다. 그렇게 정비 작업을 마치고 캠핑의자에 앉고 나니, 맥주를 안 가지고 왔다는 게 생각났다. 최근에는 칵테일을 약하게 만들어 먹는 것에 재미를 붙였지만, 역시 캠핑장 세팅을 마치고 나면 가장 땡기는 건 맥주였다. 뭐, 맥주가 없다고? 그럼 사 오면 되지. 걸어서 10분이면 되는데.


따닥따닥 붙어있지만 무척 조용한 캠핑장 정경



시내로 슬슬 걸어 나가고 있으려니 프레이저 강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수위가 많이 올랐다. 지난 2017년에 왔을 때엔 이건 뭐 강이라기보다는 무슨 뻘이나 늪이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올해는 일찍 시작된 더위 덕택에 BC 북쪽에서 눈이 일찍 녹았다고 한다. 이후에 산책로를 다니다가 보니까 실제 여러 산책로가 물에 잠겼다고 하면서 폐쇄되어 있었다. 이렇게 한 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지는 기후 변화이지만, 이날만큼은 뿌연 프레이저 강을 비추는 저녁놀을 아무 생각 없이 즐기고 싶었다.




2017년 6월과 2023년 5월의 프레이저 강



습지에 위치한 캠핑장이라서 그런지, 광역 밴쿠버에서 운영하는 '더비리치 공원 (Derby Reach Park)''에지워터바 (Edge Water Bar) 캠핑장'과 더불어 밴쿠버 캠핑장 중 모기가 가장 많기로 유명한데 (https://www.cbc.ca/news/canada/british-columbia/township-langley-mosquito-1.6862607), 아직 밤에는 공기가 쌀쌀해서 그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다. 일찌감치 명성을 알고 있어서 모기장 텐트와 얼굴에 쓰는 모기장 베일까지 준비했지만 딱히 쓸 일은 없... 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는 모기 말고 진정한 맹수가 있었다. 이미 쌀쌀한 공기가 감도는 첫날 저녁에는 잘 몰랐지만, 다음날 햇살이 들자 이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는데, 다른 사이트에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고 유독 우리 사이트, 우리 트레일러 지붕, 우리 가제보에 몰려왔다. 어흑. 아직 작년의 송충이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데 이건 또 뭔 재난이냐. 흘깃 보면 덩치가 작은 바퀴벌레처럼 생긴 풍뎅이과 곤충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테이블이나 흰색 식기류에 모이더니, 어느새 옷에, 머리에, 목덜미에 턱턱 날아 앉았다. 재빨리 사진을 찍어서 구글 검색을 해봤더니 'Daytime Fireflies'라고 한다. '낮 반딧불이' 라니.. 물론 바로 10초 전까지 혹시 바퀴벌레가 아닐까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척 낭만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낮 반딧불이'라니... 이건 뭐 주성치의 <북경 007>에 나왔던 태양열 전등과 같은 개념인가? 햇빛이 있을 때만 불이 켜지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생명체인데.. 효용성으로만 존재의미를 평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말을 삼켰다.


'반딧불이'는 다 밤에 빛을 내며 활동하는 줄 알았는데, 낮에 활동하는 반딧불이라니...



둘째 날에는 또 친구분들이 캠핑장을 찾아주셔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본적으로 이 캠핑장은 '브래 섬 공원 (Brae Island Regional Park)'과 붙어 있기 때문에, 방문차량은 브래 섬 공원 주차장에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까지 무제한으로 주차를 할 수 있고, 또 강변을 따라 만들어진 근사한 산책로도 있어서 하루 피크닉을 하기에도 꽤 괜찮았다 (산책 중에 침수된 산책로가 있어서 돌아왔지만). 하지만 사이트도 협소하고 프라이버시 확보가 어렵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어서, 그 보다 지난 며칠간 무더위가 지속되었어서, 애초부터 캠핑장 안에서 요리를 해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마침 시내와 가까운 곳에서 캠핑을 하게 되었기에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나가서 사 먹자고 했었다. 간단한 산책을 마치고 와서 괜찮은 식당을 검색하려고 전화기를 열어 보니, 심지어 음식을 배달 주문할 수 있다고 나오는 게 아닌가!! 아… 이게 시내에서 캠핑하는 은총이구나. 한국 가면 한강 고수부지에서 짜장면을 꼭 시켜 먹어 보고 싶다고 생각한 지 벌써 오래인데, 한국에 가지 않아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날 저녁은 대만식 중국요리. 세계적으로 ‘버블티’가 선풍을 끈 지 오래되면서 웬만한 버블티 가게에서는 경쟁력을 위해 대만 간식 역시 만들어 팔게 되었는데, 볶음국수, 볶음밥, 오징어 튀김, 닭튀김 등도 여기서는 간식에 속한다. 특히 ‘지파이(鸡排)’라고 하는 닭 가슴살을 얇게 저며서 널찍하게 튀긴 후 마늘 / 후추 / 설탕 소스에 찍어 먹는 대만식 치킨까스는 강력 추천.


브래 섬 공원 지도
브레 섬 공원 / 포트 캠핑 캠핑장 산책로



젓가락을 들고 오징어 다리를 뜯다 보니까, 최근에 젓가락질을 색다르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는 뉴스가 화제로 나왔다. 예전에야 밥상머리 예절이라고 해서 젓가락질 하나도 무척 난폭하게 교육시키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써오면서 최적의 그립, 최고의 정밀성으로 증명된 전통적인 젓가락질이 강압교육의 상흔 때문에 무시당하는 걸 보는 일은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어느덧 꼰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가 된 우리에게 있어서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과연 조언이 필요한 일인가, 아닌가, 조언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 방법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사실 젓가락질을 잘해서 콩자반이나 오징어를 잘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텐데, 그걸 틀딱, 꼰대 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굳이 입 밖으로 내뱉을 필요가 있을까? 방송가에서 장수하면서도 꼰대짓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한 이경규 개그맨은 "난, 내 앞가림하기도 바빠. 내 코가 석자야. 니들한테 신경 쓸 여력이 없어."라고 했고, 양희은 가수는 "얘길 하면 니들이 듣니?"라고 하며 잔소리를 안 하는 이유를 각각 밝힌 적이 있다. 어차피 상대에게 닿지도 않을 말, 단지 보는 내가 답답해서 하는 말을 과연 조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언이 문자 그대로 상대를 도와주기 위한 말이라면, 먼저 상대가 감정적 방어를 풀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하는 방식이나 TPO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만일 그런 방법을 모른다거나 그걸 죄다 고려하기 귀찮다면 그냥 조용히 있으면 될 일 아닐까. 그래도 참, 50년을 넘게 살고 한국에서는 대학물까지 먹었었는데, 이런 기초적인 대화의 스킬 하나 제대로 배운 적이 없구나... 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보통, 전기가 들어오는 곳에서 캠핑을 할 경우 캠핑 짐이 더 많아지는데, 전기가 있으면 할 수가 있는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돌려 말하자면 전기가 있으므로 해서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게 더 많아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자그마한 포터블 핸드 그라인더와 커피콩, 드립 깔때기 정도만 있으면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전기가 있으면 왠지 캠핑장에서 마시는 갓 뽑은 에스프레소 맛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에어 프라이어가 있으면 근처 슈퍼에서 냉동식품을 사서 간단하게 데워 먹을 수도 있다. 최소한의 장비와 먹거리만을 챙겨서 떠나는 백패킹도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모든 걸 다 챙겨 가는 맥시멀리스트 캠핑도 무척 호화로운 느낌을 준다. 특히, 웬만한 사설 캠핑장에는 수도와 전기, 하수구까지 공급되기 때문에 이전의 그 어떤 캠핑장보다 훨씬 많은 대형 RV들과 마주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RV 내에서 모든 의식주와 여흥까지 해결하는 걸 볼 수 있다. 무척 호화롭고 편리한 캠핑을 할 수는 있지만, 이럴 때마다 항상,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지, 왜 밖에 나와 노숙을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는 없는데, 그러고 나선 또, "뭐, 어차피 나와서 노는 일인데, 뭘 그리 합리적인 이유를 따져. 그냥 즐기면 되지..."라는 결론으로 끝이 난다 (게다가, 여기 있는 캠퍼들 모두 다 맥시멀리스트 캠핑을 하다 보니까 캠핑장 화장실 - 샤워실이 무척 한가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주립공원에 비해 무척이나 한가했던 화장실 / 샤워실


아이스 머신, 탄산수 제조기, 넷플릭스 드라마와 함께 하는 맥시멀리스트  캠핑


다음날 아침은 간단히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자전거로 동네 산책을 나가보기로 했다. 언젠가부터 관광도시로 발전해 오고 있지만, 워낙에 차량통행량이 적고 이전부터도 이곳저곳 공원이 많았던 (심지어 국립공원 민속촌 (National Park Historic Site) 도 있다) 포트 랭리에는 자전거 도로가 제법 잘 발달되어 있어서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충분히 안전하게 이동할 수가 있게 되어있다. 말하자면 이곳 '브래 섬 공원 (Brae Island Regional Park)'에서부터 근처의 '더비리치 공원 (Derby Reach Regional Park)'까지도 자전거로 갈 수 있다는 말인데, 아예 각 잡고 라이딩을 해보려고 헬멧까지 쓰고 나섰으나 중간에 프레이저 간 범람 때문에 산책로가 폐쇄되었다는 안내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가기는 좀 시시하고, 나선 김에 자전거로 동네 산책을 해보기로 한다.


나중에 딴 소리 못 하게 빨간딱지를 세 개나 붙여놓다니



강변 산책로에서 동네 주택가를 지나 철로 위 고가도로, 그 옆 숲 산책로를 다시 지난다. 그리고 길게 돌아 민속촌 뒤편으로 가보니 뻥 뚫린 차도 옆으로 자전거 도로가 길게 연결되어 있다. 한참을 가도 뭔가 공원 은 것 없이 계속 도로만 나오길래 다시 방향을 돌렸다. 나중에 지도를 보니 그 길은 광역 밴쿠버를 지나 아보츠포드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길이 잘 닦여 있다고 신나게 밟았다가... 버스를 타고 울면서 돌아올 뻔했다.


간단한 먹거리 쇼핑을 마치고 나서 잠시 쉬다가 캠핑장을 한 바퀴 돌아본다. 골든이어즈와 같은 대형 주립공원에도 소규모 매점이 있어서 프로판 가스나 숯 같은 걸 팔고는 하는데, 이곳 사설 캠핑장 역시 당연한 듯이 매점이 있었고 모기약이 종류별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포트 랭리니까.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여름에 이곳으로 캠핑 온 사람들에게는 저 모기약들이 얼마나 축복일까. 물론 비싸다. 관광지에서 캠핑하는 기념으로 관광지처럼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었다. 관광지답게 비싸지만, 이들도 코스트코에서 사가지고 와서 파는 것일 테고, 시내에서 파는 젤라또 가격도 $5이 쉽게 넘으니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서 새소리를 들으며, 낮 반딧불이와 씨름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자니, 정말 휴식 같은 느낌이 든다. 캠핑 짐을 싸고, 트레일러를 운전하고, 캠핑장을 세팅하는 그 모든 수고들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밑밥이라는 생각이 든다.


캠핑장을 돌며 다른 사람들 사이트를 구경 (다른 사람들이 집을 어떻게 꾸몄는지 구경하는 일은 의외로 재미있다) 하던 도중, 캠핑장 놀이터 앞에 조그마한 간이 무대...라고 해야 할지 연단이라고 해야 할지...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떤 키 큰 할아버지가 그곳을 청소하고, 스피커 등을 설치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대 옆에 엘비스의 상징인 핑크 캐딜락이 세워져 있었다. 앨비스가 온다더니, 저렇게 캐딜락도 몰고 다니고 무대팀도 운영하는 걸 보니, 제법 유명한 모창 가수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무대 청소를 하던 바로 그분이 나중에 빤짝이 옷을 입고 엘비스의 노래를 부르는 걸 발견한다. 로큰롤의 길은 화려하지만 결코 안락하지는 않은 것이다.


문제의 그, 놀이터 옆 무대, 어떻게 변할지 기대하시라



5세 아동들과 80세 할머니들이 같이 흥겹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던 (광란의!) 무대가 이어지고, 우리도 곁다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사이트로 돌아와서 또 술잔을 기울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마지막 날 밤의 습관처럼 총평을 꺼낸다. 이번 캠핑이 무척 마음에 든 아내는 앞으로 사설 캠핑장 사용을 주저하지 말자고 한다. 매년 첫 캠핑 - 부활절 캠핑 때 항상 이곳에 와도 좋겠다고 까지 한다. 집에서부터 운전도 편하고, 시내와도 가깝고, 상수도도 있고 전기도 있으니 여유롭게 트레일러 점검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나 역시 무척 좋았다. 산속 오지에서 하는 캠핑도 좋지만, 이렇게 시내에서 하는 캠핑도 편리하다. 시내라고는 하지만 나름 역사의 흔적도 남아있고 관광지 특유의 분위기도 있어서 좋다. 습지에 있는 캠핑장답게, 입구 근처에는 개구리 소리가 우렁차게 울리는 것도 여느 시내 분위기 답지 않다. 말하자면, 캠핑이라고 와서는 아침에 시내로 "걸어 (!)"나가서 브런치를 즐길 수도 있고, 또 자전거로 강변 산책, 동네 탐험을 다 할 수도 있고, 돌아오면서는 또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시골 정서를 느낄 수도 있고, 저녁에는 음식 배달 주문도 가능한 것이다. 아... 정말 다 갖췄구나. 낮 반딧불이와 미친 기차 기적소리 마저.








덧 하나. 포트캠핑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악덕 - 바로 철로 근처에 있다는 점




덧 둘. 모두가 궁금해하는, 바로 그분의 강림.

마을장터 너훈아 공연을 방불케 하는 앨비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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