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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l 22. 2024

붓방아를 극복하는 방법

책 <영화처럼 산다면야> 동상이몽 제작일지  #09

김영하 작가는 어느 방송에서 신간 <여행의 이유>를 소개할 때 "작가에게 실패한 여행이란 있을 수 없다. 이런저런 실패한 경험이 생겼다면 그걸 글로 써내면 되니까"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 뭐 여행뿐이겠어요. 심지어 저는 이 자리에서 공저자와의 불화 에피소드까지 팔아먹고 있는데 말이죠. 예측 불가능한 사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가에게나 읽은 사람들에게나 즐거운 일이 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어느 순간 기발한 글이 되었든 식상한 글이 되었든 어떤 글도 안 써지는 경우가 되겠죠.


글쓰기의 적들은 많습니다. 가장 큰 적으로 따지자면야 게으름이겠죠. 게으름에 비하면, 공권력의 검열이나 가문 간의 채무관계, 가정불화 따위는 정말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서 17개의 촉수에 당근과 채찍을 따로 매달고 후드려 까는 공저자를 만나는 바람에 씩씩하게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었지만요. '글은 손이나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거다', '글쓰기는 근육과 같아서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해야 한다', '글은 고치면 고칠수록 무조건 좋아진다' 등 수많은 명언들처럼, 어떤 핑계를 둘러대더라도 글쓰기에 있어서 꾸준함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겠죠.   


하지만 무공을 쌓기 위해 마당 쓸기, 물 긷기, 물푸레나무 건너뛰기를 하는 것처럼 매일같이 글쓰기 연습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탁, 하고 막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갑자기 머릿속이 까맣게 되는 것 같은. 아무리 말 많은 공산당이라 하더라도 이건 어떻게 피해 갈 수 없는 노릇이었어요. 이번 책에도 어떤 꼭지들은 서너 번 전면 개정을 할 정도로 고민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붓방아만 찧게 되는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영어식 표현인 Writer's Block (작가의 장애물)처럼 말이죠.


처음 공동집필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던 2022년 여름, 저는 나름대로 브런치북 공모를 - '연대'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책을 구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연대'라는 미명하에 소수 그룹이 승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폭력이나, 거부할 경우 '배신자', '이중대'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상황을 짚어내기 위해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엔 프리덤>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가면 갈수록 동료들과 총부리를 겨누는 참혹한 상황 때문에  도무지 앞으로 나갈 수가 없더라구요. 무엇보다, 제 의욕에 비해서 제가 글을 풀어나갈 재주가 부족하다는 걸 느껴서 접었던 적이 있었죠 (결국 다음 해에 글을 완성시키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 <시>에 대해 글을 쓸 때 또 똑같은 상황에 부딪히게 되더군요. 밴쿠버 영화제 때 극장에서 보긴 했지만 그래도 글을 쓰기 전에는 한번 더 봐야 할 것만 같잖아요. 그런데 블루레이에서는 본편이 재생되기 전에 감독의 인터뷰 영상이 들어있더라구요. 영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라는 은밀한 지령과 함께. 그걸 괜히 보고 나서는... 도무지 영화를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놔. 보통 일주일에 한 편씩, 늦어도 2주일에 한 편씩 써나갔는데 이때 꽉 막혔던 거 있죠. 결국 해를 넘기고 나서야 친애하는 공저자께 사정사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같이 쓰니까, 이번에는 끝까지 달려 보겠다.




엎드려 절 받기



결론을 내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글을 쓰자






이렇듯 욕심이 지나쳐 붓방아를 찧게 되는 경우야 친애하는 공저자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무사히 넘어가기도 했지만 가끔 사회적 사건에 충격을 받아 다리가 완전히 풀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특히 배우 이선균 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어떻게 해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었어요. 차라리 몇몇 악당들에 의해 자행된 일이었다면 그들을 비난하고 처벌하고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자는 결의를 다질 수 있었겠지만, 사회 전체가 잔인한 재판관이 되면서 벌어진 일에 대해선 완전히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더라구요. 가만히 멍하니 있다가도 눈물이 계속 흘러내려서 아내가 잔소리 걱정할까봐 일부러 슬픈 영화만 계속 보고 있어야 했어요. 혹독하게 조리돌림을 당하는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전혀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습니다. 이 책이 빨리 공개되었다면, 아니 <연좌제> 꼭지만이라도 일찍 공개되었다면 어땠을까 후회가 되었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위로의 글 하나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뭐가 있을지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보다가 결국 한동안 마음을 닫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연 작가님은 기다려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방에 군불을 지펴가면서 (그리고 '미소년'이라는 험한 소리까지 해가면서).  






덧, 표지 사진은 <영화를 (사랑)한다는 것> 꼭지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삽화의 초기 스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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