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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역할

팟캐스트 <오직 사랑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에서 못다 한 이야기 #5

by 동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욕망이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존재하지 않던 뭔가를 만들 생각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겠죠. 처음 창작에 발끝을 내디딘 사람들의 경우 간혹 창작 과정 전체를 경험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경우도 많긴 합니다만, 그것 역시 어떻게든 하나의 창작물을 완성해보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라고 봐야 할 거예요. 말하자면 학습의 단계인데 의외로 이렇게 완성자체에 의미를 두고 시작하는 창작은 오히려 종종 마무리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못마땅한 부분을 자꾸 고치기만 하다 보면 "음... 뭐... 여기까지 했으면 됐지, 뭐.." 하며 스스로 중간에 집필이나 작곡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죠. 오죽하면 집필을 마무리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입금”이라는 말이 있겠어요. 예술작품 창작과정의 종착역이 수용자와의 만남이라는 걸 고려해 보면,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상호소통을 하지 않는 건 창작이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때문에 작품완성을 넘어서는 뭔가 다른 것 - 훈계질, 위로, 공감, 오락, 해학 등 수용자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역할까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그 창작 작업이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죠.


한편으로는 완성 그 자체 말고도 아주 지엽적인 표현이나 후까시를 집어넣는 것에 욕망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우리가 영화나 문학작품, 음악을 한 번 접하고 나서 작품 전체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물론 줄거리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겠지만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설정이나 장치인 경우가 많죠. 3분 내외의 대중가요에도 인트로나 버스 부분, 혹은 코러스 부분에 훅이 걸리는 경우가 많듯이, 영화를 봐도 어떤 특정 장면을 무슨 기가 막힌 발상으로 어떻게 연출하는 지를 보고 뻑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마치 원스어폰어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아이들이 맨해튼 브리지를 뒤로 하고 브루클린 거리를 걷다가 느닷없이 전개되는 고속촬영 장면도 그렇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식당 씬이라든지, 터미네이터 2의 마지막에 T800이 엄지손가락을 들고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역시 세월을 넘어서 회자가 되기도 해요. 비슷한 예로 어떤 대사 한 구절, 어느 장면에서 어떤 배우의 특정 연기 역시 계속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를 만들고 싶어, 혹은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도 처음에는 어떤 설정이나 장치, 후까시에 꽂히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되는 거죠. 완전히 본말이 전도되는 순간이지만 처음 창작물을 만들 때 많이들 겪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초보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들의 주제에는 현대인의 불안심리, 고독 같은 게 많은 게 아닐까요? 그만큼 아무리 황당한 표현기법을 쓰더라도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주제니까요.


문제는 영화처럼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창작의 경우에는 참여 구성원 각자 다른 욕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점이 되겠죠. 당연한 얘기죠. 지구상에 80억 인구가 있으면 80억 명의 각기 다른 생각이 있는 거잖아요. 아무리 친한 사이이고, 심지어 가족끼리라도 하나의 작품을 공동으로 만들게 될 때 서로의 욕망을 절충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도 존재하기도 하고, 짐짓 다른 팀원들의 욕망을 위해 본인은 많은 걸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협상기술도 존재합니다. 그래도 상업방송이나 상업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합의하고 시작하게 되는 최우선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바로 작품 제작이 가능하도록 재정지원을 해준 스폰서의 이해를 고려한다든지, 투자자의 원금회수 혹은 수익창출을 돕는다든지 하는 것이죠. 이게 가능해야 지속적인 딴따라질 역시 가능해지는 거니까요.





** 지금부터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스포일러가 가득 들어있습니다.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는 방송국 공모전에 당선된 대본으로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이유로 대본 내용이 바뀌게 되면서 겪는 소동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선작 <운명의 여인>의 오리지널 대본 내용에 대해선 알 수가 없어요. 영화 오프닝이 지나면서 잠깐 보이는 리허설 마지막 신을 통해 두 주인공인 리츠코와 토라조가 어렵게 재회하고 뜨거운 사랑과 함께 서로를 갈구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정도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배경이 작가 개인의 환경과 닮았다는 점. 그리고 (쿠도와 아카쿠로의 대화를 통해) 공모전 당선작치고는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 제작을 둘러싸고 스테이크 홀더들의 각기 다른 욕망이 충돌합니다. 물론 방송국에 고용된 직원들이 합의하는 가장 중요한 건 방송이 시간에 맞춰 제대로 나가고 제대로 끝맺는 것이겠죠. 그게 바로 방송 앞뒤에 붙는 광고시간을 구매한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일 테니까요.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관객 - 청취자들에게 좋은 작품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그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하고, 나아가서 작품을 제작하는 방송국이 존립할 수 있는 건 광고주의 재정적 지원이라는 걸 부인하기 힘들죠.


그리고 이 공동의 선을 수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입장과 다양한 역할이 존재합니다. 여기저기 굽신거리면서 비위를 맞추는 니시무라 PD에게 가장 중요한 것도 작품의 퀄리티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를 정리해서 작품이 안정적으로 나가게 만드는 것에 있어요. 주연 여배우가 황당한 요구를 하거나, 윗상사가 어처구니없는 지시를 내리거나, 앵커출신 해설자가 문법 지적질을 하고 초보작가가 땡깡을 부려도, 때로는 굽신거리고 때로는 훈계를 하면서 방송 송출을 완성시키게 됩니다. 과연 그게 (영화 속에서 잠깐 비친) 라디오 드라마에 대한 우시지마의 사랑 때문일까요? 조금은 있겠죠. 0.5% 정도...? 그보다 본인의 어거지 행동에 스스로 현타가 오더라도 그걸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게 우시지마의 역할이기 때문일 겁니다. 방송제작과 송출에 책임을 지는 사람. 우시지마 PD는 그런 일을 하도록 방송국에 고용되었고, 또 급여를 받고, 생계유지를 합니다.


쿠도 역시 마찬가지죠. 자신이 보기에는 도무지 공모전 당선작 자격이 없는 작품의 연출을 맡는 것도, 그게 바로 쿠도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중에 가서는 회사의 잔인한 대처에 인내심을 잃어서 다른 작당을 하게 되지만, 그걸 오리지널 대본을 지킨다든지 약자의 소망을 구원하는 히어로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보기는 힘들죠. 사실 어쩌면 그 역시 지금까지 비슷비슷한 수준의 작품들이 회사에 의해 비슷비슷하게 망가져 가는 과정에 동참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최소한 묵인해왔거나요. 자기 입으로 "여기 있는 사람 그 누구도 작품에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았나요? 작가 미야코가 중간에 난동을 부리며 눈물로 호소하지 않았다면 쿠도 역시 아무 말없이 그냥 연출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역할 역시, 자신의 기능을 이용해서 방송을 무사히, 끝까지. 시간에 맞춰 제작, 송출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당시 스튜디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방송사고' 였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에 비해 호리노 국장의 역할과 책임의 범위는 좀 더 넓은 편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 방송이, 이 기획이 성립되기까지 모든 일을 꾸미고 결정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특집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라는 걸 만들기 위해서는 광고주가 필요하고, 또 광고주에게 먹힐 만한 기획이나 배우들이 필요한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텐데, 한물 간 여배우 센본 놋코를 캐스팅함으로써 다른 프로그램에 (센본 놋코와 같은 소속사인) 젊은 톱스타를 초빙할 수 있었다고 하잖아요. 말하자면 센본 놋코는 끼워팔기로 사용된 늙다리 신세인데, 다른 방송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끼워팔기이기 때문에 방송사 입장에서 무시할 수는 없게 됩니다. 여기에 호리노 국장의 역할이 있습니다. 우시지마가 방송 제작에 관련된 스테이크홀더들의 입장을 조율하는 직책이라면, 호리노 국장은 한 방송제작이 관계된 모든 셰어홀더의 이익관계를 조율한다고 봐야죠. 쉽게 말해 이 작품에서 호리노 국장의 역할은 여러 프로그램의 생존을 위해 센본 놋코의 비위를 맞추는 일이 됩니다. 물론 그는 그 한 가지 목적에만 매우 충실하기 때문에 여타 다른 갈등을 해소하는 단계에서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었습니다.


세세하게 나뉜 역할에 비해서 비교적 단순한 욕망을 - 지속가능한 딴따라 질을 위해 오늘 방송 제작과 송출을 완성한다는 - 가지고 있는 이들 제작진들에 비해서, 스즈키 미야코 작가의 욕망은 좀 더 구체적입니다. 그녀의 욕망은 캐릭터와 스토리 라인에 있는데. 그게 실제로 그녀 개인사와 관계있든 없든 그녀는 두 주인공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완성과 해피엔딩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그런 그녀의 욕망은 마루야마 신부 (마르틴 신부)의 마지막 대사인 "사랑의 힘을 믿을지어다"에 응축되어 있죠. 리츠코가 메어리제인이 되고 사건 배경이 뉴욕이나 시카고로 바뀌든지, 토라조가 우주비행사 맥도날드가 되어도 버틸 수 있었고, 자신의 원고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너덜너덜하게 가위질당해 작가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지만, 두 주인공이 영원한 이별을 하는 엔딩으로까지 치닫자 결국 오디오 케이블을 다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맙니다.


영화는 미야코 작가와 그녀의 작품이 나쁜 방송국 놈들에 의해 잔인하게 유린당한 희생자의 위치에,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나 볼 것만 같은) 카디건을 어깨에 두른 패션 스타 쿠도를 히어로 위치로 해석하도록 관객을 유도하지만, 이걸 단순히 가해자-피해자-구원자의 구도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아직 방송시스템을 잘 모르는 초보작가로서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 많이 나왔던 것뿐이죠. 이 라디오 드라마 생방송 자체가 센본 놋코의 존재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스튜디오 녹음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서 센본 놋코가 생방으로 가자고 제안했다는 후문도 있잖아요. 자신의 작품에 왜 이렇게 함부로 손을 댔냐고, 왜 오리지널 설정으로 가는 게 안 되냐고 투정하는 미야코 작가에게 우시지마 PD는 딱 잘라 말합니다. "그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센본 놋코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렇다면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끗발이 딸리는 신인 작가로서 선택할 길은 그리 많지 않죠. 타협하고 타협하면서 자신의 욕망의 일부분 만이라도 실현되도록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할 것인지, 이 두 가지입니다. 물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자가 더 바람직합니다만, 그런 내공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기도 하죠. 어쩌면 타 방송 구성작가로서 원작을 훼손하는 1등 공신이었던 버키와 원작자인 스즈키 미야코의 차이는 여기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버키 역시 라디오 드라마에 폭력미학을 담는 자신의 욕망을 발현하려 했을 뿐이거든요. (물론 그걸 남의 작품을 고쳐 가며 했다는 건 업계 도의상 문제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절한 타협과, 방송을 무사히 끝마치기 위해 그때그때 아이디어를 낸 것 밖에 없죠. 모든 혼란과 헛소동의 원흉은 센본 놋코가 여주인공 직업을 파칭코 종업원 대신 뉴욕 변호사로 하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타츠미가 아무 생각 없이 기관총이라면 뉴욕보다 시카고라고 주장한 것이었는데, 이런 무리한 요구상항들을 아귀가 꽉 들어맞게 수습한 건 온전히 버키의 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야코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크레디트에서 빼달라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크레디트는 자기 작품이 온전한 상태로 존재했을 때만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동창작에서 사실상 그런 상황은 거의 존재하지 않죠. 작품이 자기 손에서 떠날 때가 창작의 완성이 아니라, 그게 공식적으로 배급이 되고 수용자가 작품을 감상하고 소통하는 단계까지가 창작입니다. 때문에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중간에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절대로 양보하고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말이죠. 여기서는 사랑의 완성과 해피엔딩만이 미야코 작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게 되겠지만요.


결국 우시지마 PD가 본인 감정이 섞인 울분을 토해내고 맙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우리라고 작품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게 자랑스러운 줄 알아요? 당신뿐만 아니라, 나 역시 가끔은 내 이름을 빼고 싶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못 한 건 나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거지 같은 작품이라도 내 이름을 걸고 만든 작품이다, 거기서 달아날 수는 없어요.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든다는 게 그렇게 만만한 것 같아요? 타협을 하고 또 하고 자기를 죽여가면서 만드는 겁니다. 그렇지만, 언젠가,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행복하고 관객이나 청취자들 모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겠죠. 단지 그냥 지금은 그때가 아닌 것뿐입니다. 그냥 그런 거라구요. 유감입니다만, 당신 이름은 그대로 올라갈 겁니다. 이건 당신 작품이에요. 그것만은 분명합니다. "


이래도 녹음부스 안에서 울고 있는 미야코에게 "울 거면 복도에 나가서 우세요. 여기선 마이크에 들어가니까."라고 일침을 놓는 우시지마 PD가 냉혈한으로 보이시나요?








이제 지난 5개월 동안의 <오직 사랑하는 영화만이 살아남는다> 팟캐스트 제작의 장정은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갑니다. 이걸 한번 해보자고 처음 주창했던 제 욕망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지난해에 이연 작가님과 같이 출간했던 책의 홍보 목적이 처음에는 가장 컸었던 것 같아요. 그간 친분이 있었던 폴폴 작가님께 <아끼는 마음>의 홍보도 같이 하자고 꼬드겼죠.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그런 마음이 있었던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 이 사람들과 같이 놀고 싶다. 재미난 걸 또 한 번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 하는 마음 있잖아요. 오랜만에 공동 작업을 하고 있자니 조금 덜컥거리기도 하고, 또 제가 아무래도 17시간 시차가 떨어진 곳에 살다가 보니까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기도 했어요. 그래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글로벌 대기업의 서버에 한 공간을 차지해서 발행을 하고, 또 방송을 들어달라고 매번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청취자들에게 요구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보니, 기왕이면 우리 방송이 좀 더 존재의미가, 어떤 사회적 역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어릴 적에도 어딘가 여행을 가면 그냥 규모가 큰 쇼핑이다 생각하지 못하고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런 걸 보면 인간의 성격은 참... 쉽게 고쳐지지를 않아요. 집에서 녹음을 하느라 같이 사는 사람에게 정숙을 요구한다거나, 장시간 편집 작업 때문에 가정에 소흘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심은 더 커져갔던 것 같습니다.


지난 에피소드 5.3 녹음 당시, 위에서 언급한 우시지마의 저 얘기, 저 대사에 대해 말을 하는데 (편집에서 걷어냈지만) 갑자기 울컥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비단 창작일 뿐만 아니라 살면서 겪는 많은 일들이 결국 타협하고 타협하고 그렇게 만들어 내고, 또 그렇게 만들고 만들고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공이 쌓이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뜩"하고 어깨에 힘이 빠지게 되면, 만드는 사람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작품을 만들게 되지 않을까? 처음 봤을 때는 현란한 후까시와 오글거리는 설정들로만 가득해서, 무슨 대학교 영화 동아리 워크숍 작품 같았던 <중경삼림>이, 잠시 남는 시간에 짬을 내어 친한 배우와 스텝들끼리 어깨의 힘을 빼고 만들어 낸 그 영화가, 결국 시대의 한 조류를 만들 정도로 각광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죠.



다시 한번, 저랑 같이 놀아 주신 이연 작가님, 폴폴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어요.

게다가 편집권한을 전적으로 보장해 주셔서 작품 결과물에 대한 이견 때문에 골머리 썩을 걱정을 깔끔하게 덜어주셨습니다. 덕분에 무척 신나게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혹여라도 방송에 이연 작가님과 폴폴 작가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나왔다면, 그건 다 제 몹쓸 연출이었다는 걸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이미지를 깎아내려서라도 어떻게든 유튜브 조회수를 높여보려는 얄팍한 상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저희 방송을 들어주신, 모든 영우님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다음 시즌에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아니, 그전에,

녹음은 잠시 쉬더라도,

사정상 방송에 나가지 못했던 몇 가지 클립과 각 에피소드의 풀버전이 천천히 공개될 예정입니다. 헤헤.







유튜브와 애플 팟캐스트,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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