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보는 장소를 알아두려고
인터넷으로 거리 사진을 찾았을 때
사진 밑에 ‘작년 10월 촬영’이라는
글이 떴습니다.
봄이 시작되는 날이 궁금해져
작년 봄의 그 길 사진을 찾았습니다.
겨우내 저장한 빛과 물을
혈관 끝까지 실어 나르느라
기지개를 켜는 나무들이 거기 있었어요.
한 해를 더 겪은 풍경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집은 이사를 가고,
어떤 집은 나무를 심었겠죠.
새로 생긴 창에 커튼이 드리워지면
동네 터줏대감인 고양이는
숨을 곳을 찾았을 거예요.
사진으로 보면
달라진 부분을 알아채기 힘듭니다.
우리도 그럴 거예요.
지난해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닮았지만,
지난봄엔 우리가 함께 둘러앉은
자리가 없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길이 하나 생긴 거예요.
우주에 별이 태어나면 누군가 그 별을 발견해서
이름을 붙여주는 것처럼
여러분이 이 길에 이름을 달아 주었습니다.
나라별 시간으로는 달라도
우주에서 지구를 본 시간으로는 같은 때
마이크 앞에 앉아
하나, 둘, 셋! 외치고
동시에 박수를 쳤습니다.
한 사람이 다녀간 곳에
다른 사람이 다른 날 가보기도 했습니다.
방송을 위한 암호도 있었어요.
“딸기!” 라고 외치면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했죠.
그런 암호가 필요할 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방송이 끝나면 바다에 가기도 했어요.
한낮의 해가 데운 모래 위를 걷다가
파도가 종아리를 간지럽히는 데까지
들어가 보기도 했어요.
밤에는 해변에 누워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허공에 쓰는
폭죽을 보기도 했습니다.
폭죽 소리가 다 사라지면 아침이 왔어요.
아침의 바다는
밤의 바다나 낮의 바다와는 달라서
바다 끝까지 밤새 걸어온 얼굴 같았습니다.
새 표정이 되려고
모든 표정을 한 번씩 다 지어본 얼굴처럼요.
누군가 반드시 올 걸 알고 있는 문이 열리면
다독이고, 쓰다듬고, 껴안고, 휘감는
손이고 싶었어요.
말없이 말을 거는 파도처럼
곁에 있고 싶었어요.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도
눈물을 말려주는 바람처럼
시작을 모르게 나타나서
끝을 모르게 머물고 싶었어요.
기울이면 기울이는 쪽으로 흐르는 물처럼
그쪽으로 엎어지고 싶었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또 만나요.
오직 우리.
.
.
.
오직 당신.
https://youtu.be/0SpmvBw_RgA?si=OH39nxdvI9H8qrI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