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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선 Jul 30. 2021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예전에 한국의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당시 영어 몰입 교육을 풍자하는 꼭지를 하나 한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한 출연자가 말하길; “전에 미국에 한 번 간 적이 있었거든요. 미국에서 미국 거지를 만났는데.. 그 거지가.. 영어를 잘해.. 그러니까.. 영어를 잘해도 거지인 거야”라고 했다. 뭐 영어를 아무리 잘해도 거지가 될 수 있다는 말에는 100% 동감하고, 그 출연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 거지가 과연 영어를 잘했을지는 의문이 든다.   


이민 초기 슈퍼마켓 등 고객을 상대하는 일을 많이 했는데, 그러다 보면 정말(각 나라에서 건너온) 별에 별 진상들을 만나곤 했는데, 현지에서 태어났고 영어를 모국어로 유창하게 사용하더라도, 딱 한눈에 봤을 때 정서적으로 이상이 있거나 뭔가 독특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손님들도 (특히 비디오 게임을 취급하는 쪽에서 일하다 보니) 많이 보게 되었다. 근데 그들의 유창한 영어라는 것이 자세히 말하는 걸 들어보면 정말 50 단어 내외를 사용해서 문장을 만드는데, 대개 “So”, “Cool”, “Crap”, “Fuck”, “Totally”, “Damn”, “Guys” 등이 문장마다 꼬박꼬박 한 번씩 들어가 준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예전에 한번 한국에서 버스를 타다가 하굣길의 여중생들 대화를 듣게 되었을 때 “아 씨발 그 선생 절라 짱나지 않냐? 아 절라 재수 없어”처럼 몇 가지 단어만 반복적으로 들렸는데 딱 그 짝이다.   


물론 언어라는 것은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고, 결국 어찌 되었든 말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사실 “논문”이나 “소설”, "시" 같은 글들도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고, “대화”나 “설득” 같은 것도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슈퍼에서 물건 살 때는 이거 얼마예요? 하나 주세요. 뭐 이런 말만 쓰면 되겠지만, 세상 살면서 인간관계를 만들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감동을 받는다는 게 어디 그런가?   


얼마 전 한국 영화판에서 일을 하는 친구와 얘기를 하는 도중, 해외 영화제 가면 꼭 영어로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 한국 감독들이 있는데,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기도 적어도 그 감독들만큼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영화제 인터뷰도 영화 찍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생각을 공들여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러기엔 자신에게 영어가 좋은 전달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들려고 할 때 가장 답답했던 게 그런 거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리 재미있는 사람 축에 속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그 흔한 썰렁한 농담 하나 적절하게 타이밍 맞춰서 할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법 오랜 기간 이민생활을 해 왔고, 그것도 대부분 현지 회사에서 원어민이나 다른 이민자들과 영어로 소통하면서 직장생활을 해왔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이제껏 해온 일 - 소매업, 고객 서비스, 컴퓨터, 냉동공조, 시설 관리 등 - 에 대해선 그래도 할 말을 하고 사는 편이지만, 이곳 친구들과 조금이나마 더 깊고 다양한 주제 (사회, 문화, 정치 등)에 얘기를 나누다 보면, 당장 내 의견 전달이 힘들어서 답답한 상황이 턱턱 생기게 되니 더 이상 “난 이제 영어는 됐어” 하면서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뭣 보다 이민 처음 왔을 때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함없이 참 재미없게 말을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어를 주 언어로 쓰는 생활을 하는 어느 시점에서는, 결국 단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한 영어 공부, 그중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한 것이 단어 암기였지만, 막상 영어로 먹고사는 상황에서 그리 기억나는 단어가 많지가 않고 정말이지 그런 시간 낭비가 어디 있었나 싶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Voca 22000, 또는 33000을 공부한 것도 아니지만, 영어와 한국어 의미를 일대일로 대입해서 (딱히 사용하지도 않을 것을) 그저 시험공부를 위해 달달달 외워야 했으니, 그게 어디 몇 년이나 머릿속에 남아있을 수 있었을까. 결국 어느 단어를 알고 제대로 써먹기 위해선, 그 단어가 사용되는 문장과, 그 문장의 맥락 전체를 이해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뭐 단어 몇 개를 더 안다고 해서 순식간에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말을 한다거나, 풍부한 유어 감각을 인정받게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씨발”과 “절라”로 점철하던 버스 안의 그 여중생들 보다는, 더듬거리고 발음이 확실하지 않더라도 듣는 사람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외국인들이 훨씬 한국말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어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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